마르크 샤갈은 20세기 색채 회화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화가다. 그는 연인, 꿈, 성경 등 다양한 주제를 화려한 색채로 표현했다. ‘색채의 마술사: 샤갈’ 전은 샤갈의 평생에 걸친 걸작 164점을 선보여 샤갈의 작품세계 전체를 조명한다.   


우리 인생에서 삶과 예술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바로 사랑의 색깔이다

연인 한 쌍이 도시를 내려다보며 하늘을 난다. 마치 사랑이 그들을 더 멋진 세계로 데려가고 있는 것처럼 유유히 날아간다. ‘도시 위에서’는 샤갈의 대표작으로, 샤갈의 회화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인 사랑이 훌륭하게 표현되었다고 평가된다. 샤갈의 작품에는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작품은 결혼 직후의 샤갈과 그의 아내 벨라를 모델로 하고 있다.

▲ 도시위에서, 1914-1918, 국립트레티아코프 갤러리, 모스크바, 러시아

 날아 가는 것 자체가 나의 환상향이다

샤갈이 좋아하는 두 번째 주제는 비행이다. 샤갈의 작품을 살펴보면, 땅에 발을 붙인 사람보다 공중에 떠서 하늘을 나는 사람을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것은 샤갈이 염원하던 모습이기도 했다. 샤갈은 자신의 이름에도 비행을 집어넣었다. 원래 샤갈의 이름은 샤갈로프로, 러시아식이라 프랑스 사람들이 발음하기 힘들어했다. 때문에 이름을 발음하기 좋은 ‘샤갈’로 개명했는데, 이때 이름 속에 알파벳 L 두 개를 넣어 날개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자신의 이름 속에 집어넣었다.

샤갈이 좋아하는 세 번째 주제는 작품 하단에 도시가 깔리는 형식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도시는 유대인이 모여 살았던 그의 고향 비테프스크다. 작품 하단의 작은 사람들처럼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티브를 두고 샤갈은 ‘모든 것이 추억이고 일상이다’라고 했다.

‘도시 위에서’와 거의 비슷한 작품이 ‘산책’이다. 샤갈이 땅에 다리를 딛고 서 있다는 점에서 샤갈의 자부심을 찾을 수 있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은 소수민족이었기 때문에 시민권조차 받지 못했다. 농사조차 짓지 못한 유대인들이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통해 시민권자가 되기 시작했다. 샤갈도 이때 시민권을 얻었는데, 러시아인이 되어 느끼게 된 당당함이 이 작품에 표현되었다.
 

샤갈 예술세계의 정수와 유대인 사회

3층에 전시된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는 샤갈이 원했던 모든 예술적 혼을 불태우고자 만든 작품으로, 샤갈의 예술 철학이 모두 담겨 있는 미적 선언문으로 활용되고 있다. 샤갈이 1917년 러시아 시민권을 얻은 후 모스크바로 건너와 의뢰받았던 작품이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다. 가로 8m에 이르는 이 작품에서는 구상주의에 대한 예찬, 절대주의에 대한 풍자, 그리고 유대문화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유대인 예술극장 소개, 1920, 국립트레디아코프갤러이, 모스크바, 러시아

이상의 세 작품은 샤갈의 대표작으로, 모두 러시아 시기(1910-1922)에 그려진 작품이다. 샤갈 예술의 출발이자 철학의 근본이 되고, 최고의 걸작이 탄생한 시기다. 러시아 유대 마을에서 보낸 이 시기는 샤갈의 기억 속에 남아 훗날 수많은 작품의 소재로 부활했다. 러시아 시기에서 빼놓지 않고 확인해야 하는 것은 유대문화다. 1917년 이후 유대인 사이에 계층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흔들리는 유대 사회를 작품 속에 표현하고는 했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들겠네

프랑스 시기(1950-1980)는 샤갈의 안정기라 할 수 있다. 이즈음 샤갈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가 다시 프랑스로 망명하고, 결국에는 프랑스인으로 귀화한다. 2차대전 이후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탄압을 받기도 했다. 샤갈은 이러한 정치적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에는 안정된 지역, 예술가들이 많이 실험하고 있던 프랑스에 가게 된다.

샤갈의 작품은 프랑스에서 인기를 끌어 그에게 사회적, 재정적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이에 가정적인 안정감까지 더해져 마음껏 색채실험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오게 된다. 많은 사람이 샤갈의 작품은 공상적, 몽환적, 동화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샤갈의 고민이 끝난 시점부터 비로소 그런 작품이 탄생했다. 심리적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작품의 색채가 굉장히 따뜻해졌다. 샤갈은 지중해 연안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완벽한 안정상태를 맛보며 색조실험을 활발하게 펼쳤다.

샤갈은 98세 일생 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작품활동을 했다. 판화가로 활동했으며, 스테인드글라스도 만들었다. 도자기도 만들었고,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화를 그려 ‘20세기의 미켈란젤로’라는 말도 들었다. 음악을 좋아해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전 무대의상과 장식을 디자인했다.
그럼에도, 샤갈이 꾸준히 그렸던 것은 성서삽화와 이야기삽화였다. 샤갈은 구상주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좋아했다. 실험주의, 추상주의가 성행했던 20세기에 이는 굉장히 고전적이고 독특한 행보였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서 존재한다

샤갈을 두고 피카소는 ‘마티스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색채화가’라고 극찬했다. 샤갈은 예술세계 자체를 ‘사랑의 색’이라 표현했다. 작품 속의 추상성과 동화적인 모습을 통해 사랑의 색깔이 어떤 것이고, 샤갈이 어떤 색채실험을 했는지 느낄 좋은 기회다.




이미지 제공 / 샤갈 전시 본부
ⓒMarc Chagall/ADAGP
Paris-SACK, Seoul, 2010 Chagall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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