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문
조애리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올해 대학 문학상 시 부문에 응모한 학생은 모두 열두 명이었으나 아쉽게도 당선작이나 가작을 내지 못했다. 다른 부문에 탁월한 발전에 비하여 올해 시 부문은 이상할 정도로 저조했다. 시는 틀에 박힌 일상으로부터의 탈주와 일상을 넘어선 고양된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만, 구체성에 기반을 둔 탈주이고 고양이어야 한다. 우리가 시에서 기대하는 것은 구체적인 적확한 순간, 대상, 관계에서 출발하되 일상의 딱딱한 외피를 깨트리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새로운 세계의 펼져짐이다. 투고된 대부분의 시에서도 일상을 벗어나려는 시도는 있으나 안타깝게도 추상적인 개념이나 단순한 비유에 그치고 진정한 탈주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탐색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을 높이 사서 박준혁의 「골방 속의 라디오」를 가작으로 선정할지에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커다란 라디오 소리가 점점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런 느낌을 너에 대한 아련함과 연관시키는 지점에서 단순한 비유에 그쳐 맥이 풀려버리고 만다. 이 두 지점의 연결을 어떻게 할지 좀 더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기형도의 「빈 집」을 읽을 때 만나는 낯선 새로운 세계를 곰곰이 되짚어 보길 바란다. 또 하나는 여러 투고자가 자신의 감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같은 구절을 반복하는 기법을 쓰고 있는데 그것이 기계적 반복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때로 반복은 이영광의 최근 시 「높새바람같이는」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의 절절함을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예상 밖의 큰 울림을 가져올 수도 있다. 투고자들은 이런 시를 모범으로 반복의 문제를 다시 숙고해보기 바란다. 맹수연의 시는 투고된 시들 가운데 단연 탁월했으나 이전에 본인이 수상한 시의 수준을 크게 넘어서지 못해 수상에서 제외했다.


소설 부문
이상경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10명이 11편의 작품을 낸 올해가 예년과 비교해서 응모작품의 수가 늘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작품의 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우선, ‘어설픈’ 에스에프 소설이 응모작 중 단 한 편뿐이었다. 에스에프가 소설로서 성립하려면 최소한의 개연성과 작자 자신의 문명비판적 시각이 어떤 식으로든 들어 있어야 한다.

‘문명비판’이란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최소한 사태를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 목소리로 바꾸어 보자. 그런 소재와 구성을 취해서 그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카이스트 문학상 응모작의 반 이상을 차지하곤 했던 이런 종류의 소품들은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둘째 응모작 모두가 어느 정도의 완성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완성도란 소설로서 성립할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 즉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구성과 표현에 대해서 고민하고 연습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야말로 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실은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앞의 두 문제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할 터이다.

학생들이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만큼 자기와 상황을 성찰하게 되었고 글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쌓인 게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소설을 심사하는 과정은 현재 카이스트에서 과학과 인생의 앞날을 헤쳐나가느라 고투하고 있는 10여 명의 청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누구의 상처를 골라야 할지 망설이는 고민까지 해가면서 그 중 완성도가 높은 작품 세 편을 뽑았다.

제일 눈에 뜨인 작품이 김민혜의 ‘자소서에 대한 명상’이었다. 자기소개서를 ‘자소서’로 약칭할 만큼 입학이고 취직이고 간에 그것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된 세대가 취직을 위해 자기소개서의 가정 환경, 취미 및 특기, 지원 동기 같은 정형화된 항목을 채우면서 각 항목에 해당되는 자신의 삶과 사회 상황을 냉정하게 돌아보는 글이다. 자기 소개서의 각 항목이 요구하는 기준을 채우기 위해 썼던 안간힘, 아무리 해도 다다를 수 없었던 자신의 상황, 설령 그 기준에 도달했다고 해도 취업이나 행복을 보장되지 않는 ‘88만원 세대’의 현실로 자기 소개서의 각 항목에 빼곡하게 채웠다. 자칫 푸념에 떨어질 수 있는 이런 상황을 자기소개서의 각 항목으로 담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형식 자체가 끝없이 ‘자소서’를 쓰게 하는 사회에 대한 풍자가 되도록 만든 솜씨가 돋보였다.
원소연의 ‘개미 죽이기’도 주제는 ‘자소서에 대한 명상’과 유사하다. 오빠는 서울의 유수한 고등학교 진학했으나 자살했고, 그 방에 하숙 들어온 명문 여대생은 알고 보니 사기를 치고 도피 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들을 개미와 그 개미를 재미로 죽이는 나의 장난에 겹쳐 보임으로써 문제를 제기했는데, 소설을 이끌어가는 화자가 아직 어린 고등학생으로 설정되어 사태를 피상적으로 제시하였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박성윤의 ‘샤넬217은 없다’는 ‘공대 여학생’이라는 표지 속에 가두어 둔 나의 ‘그녀’가 내가 샤넬217 립스틱을 칠하는 순간 나타나서 나를 일탈로 이끈다고 하는 환상적 형식을 취했다. 일탈에의 욕망과 자아분열이라는 익숙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것이 아무렇게나 걸친 일상복 속에 자극적인 색깔의 매니큐어를 칠한 발톱을 감추고 있는 ‘공대 여자’나 공대 여학생 기숙사 거울을 보며 입술에 샤넬 립스틱을 칠하는 순간 그녀가 나타났다고 하는 설정 등으로 해서 구체성을 가지면서 그들의 갈등이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다만, 일탈 이후 돌아온 자리가 그대로 원래의 출발 지점이라는 것은 잘 다듬어서 제시된 일탈의 의미를 작가가 끝까지 궁구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자소서에 관한 명상’의 세련된 형식과 주제에 대한 좀 더 깊은 시선을 평가해서 망설이지 않고 당선작으로 뽑았다. 그리고 진지한 작품들을 읽은 기쁨으로, 예년과는 달리 가작도 두 편을 내기로 했다. 소설 쓰기를 욕망하는 카이스트 구성원 여러분들께 자기의 자리, 자기의 문제에서 출발하는 글쓰기를 당부드리며, 수상의 기쁨을 안은 이들이 이 자리를 출발점으로 해서 본격적인 소설을 쓰기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필 부문
김영희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올해 수필 부문에는 총 5편이 투고되었다. 편수는 적은 편이나,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현실(자신이 직접 처한 현실이든 주변에서 목도되는 현실이든)에 한결 가까이 육박하는 글들이 많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 2편을 놓고 고심을 한 끝에 송유향의 ‘잊어왔던 삶의 무게’를 가작으로 올린다. 이런저런 사정이 겹쳐 당선작을 내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각각의 글들이 나름의 덕목을 가지고 있어 선자로서도 읽는 보람이 있었다.

이현지의 ‘스무살’은 새내기 대학생으로서 느끼는 고민들을 차분하게 풀어낸 글로 스스로를 반추하는 자세가 진지하다. 현실과 꿈 사이의 갈등을 되짚어나가다가 현재에 충실하겠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으로 끝나는데, 이 같은 마무리가 필자 본인에게나 독자에게 좀 더 힘을 가지려면 고민이 좀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겠다. 어떤 현실이 어떤 꿈과 충돌하는지 더 깊이 따져볼 때 말미의 다짐도 더 확실해질 것이다. 성전의 ‘알면 사랑한다?’는 제목 그대로 ‘알면 사랑한다’는 흔한 ‘진리’를 회의해보는 뚝심이 돋보인다. 그러나 반론을 펴나감에 있어 이것저것 건드리고 지나가는 식이어서 설득력이 약한 점이 흠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겠다. 이창한의 ‘할머니와의 하루’는 이제 성인이 된 필자가 자신을 정성으로 키워주신 할머니의 댁에 들려 하룻밤을 지낸 소회를 잔잔한 필치로 기술한다. 시종 소박한 관찰과 감회로 일관하는 점이 이 글의 강점이자 약점이겠다. 할머니와의 관계에서 필자 자신의 이야기가 좀더 곁들여졌다면, 할머니도 ‘희생하고 헌신하는 할머니’라는 상에 머물지 않는 살아 있는 개인으로 더 실감 나게 전해질 수 있었겠다.

가작을 놓고 끝까지 경합한 글은 맹수연의 ‘페르소나’였다. ‘동성애자’ 문제에서 출발해 우리 모두가 이런저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쓰게 마련인 ‘가면’과 ‘자아’ 사이의 관계에 대한 성찰로 자연스레 확대해나간다. 동성애자를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을 변호하는 글들이 은연중 이들을 ‘대상화’하기가 쉬운데, 이 글은 이들의 상황을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정체성의 문제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이런 위험에서 벗어난다. 글을 엮어나가는 솜씨나, 발랄한 필치, 분명한 주제의식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있는 글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가면과 자아라는 난제에 대한 성찰에서 상충되는 생각들이 병존하며 평범한 결론에 머무는 듯한 점이다. 이 작품을 가작에서 제외한 것은 그러나 이런 아쉬움 때문은 아니다. 그보다는 필자가 투고한 여러 부문의 작품중 한 작품에 상을 주자면 시나리오 투고작이 가장 적격이겠다는 데 심사위원들이 의견을 같이한 때문이다.

가작으로 뽑힌 송유향의 ‘잊어왔던 삶의 무게’는 심란했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함께 그 시절을 버텨냈던 가족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필치로 담아낸다. 진솔하면서도 담담한 어조가 돋보이며, 과거를 회고할 때 끼어들기 쉬운 미화의 유혹을 어렵사리 버텨냄으로써 20여 년 전 어머니와 필자 자매의 모습이 생생하게 부각된다. 다만, 자신의 과거에 지나치게 밀착한 까닭인지 독자들에게 궁금증을 남기는 대목들이 더러 있는 것이 흠이다. 수필은 자신에 대한 성찰인 동시에 타인인 독자를 향한 말 걸기라는 점에 좀 더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이것은 단순히 독자를 의식하는 차원을 넘어서 자신에 대한 거리 두기에 성공하느냐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아쉬운 대목들도 함께 언급했지만 이번에 투고작을 읽는 경험은 필자들이 감당하는 현실의 무게를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귀중한 기회였다. 투고한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내며, 글과 삶 모두에서 꿋꿋한 정진을 기원한다.
 

시나리오 부문
시정곤 인문사회과학과 교수

이번 문학상에 응모한 시나리오는 총 4편이다. 맹수연의 <오블리비아떼(Obliviate)>, 서예윤의 <봄이 오는 동안>, 정승원의 <사과나무>, 이명은의 <The Secret>이 그것이다. 맹수연의 <오블리비아떼(Obliviate)>는 이별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주인공이 여행지에서 우연히 한 남자와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서예윤의 <봄이 오는 동안>은 대학 캠퍼스에서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정승원의 <사과나무>는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남녀 간의 에피소드를, 이명은의 <The Secret>은 물질만능시대에 비뚤어진 애정관을 대학교 실험실 조교와 학생의 이야기로 풀어가고 있다.

이 가운데 심사자가 주목한 것은 맹수연의 <오블리비아떼(Obliviate)>이다. 나머지 작품은 이야기 전개의 과감성은 높이 사줄 만하지만, 대부분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소재가 대학 캠퍼스로 너무 편협되어 있고 이공계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뇌나 바이러스와 같은 소재에 너무 한정되어 있다는 점 등이 아쉽고, 묘사가 부자연스럽거나 이야기 전개가 매끄럽지 못해 이야기의 내적 구성이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었다.

맹수연의 <오블리비아떼(Obliviate)>는 작품성에서 나머지 작품보다 더 탄탄함을 보였다. 특히 ‘기억을 수정하는 마법주문’이라는 제목처럼 주인공이 이방인과 만나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 유려한 어휘사용과 신화적 모티브의 도입으로 더욱 흥미를 유발하고 작품의 흡인력을 증가시켰다고 본다. 다만, 사랑의 상처와 치유라는 소재의 일반성이 조금 아쉽고, 상처를 치유해 가는 방식이 좀 더 치밀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으나 가능성을 고려하여 가작으로 선정하였다. 앞으로는 더욱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더 참신한 시도를 해본다면 작품성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내년에는 더 많은 작품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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