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조민홍 학우의 선택은 우리 학생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파문을 일으켰다. ARA에 ‘우리, KAIST, 지금, 무엇이 문제입니까’라는 쟁점 게시판이 만들어지고, 공청회가 열리는 등 추모와 함께 그 원인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다. 외부 매체에서도 이번 사건을 크게 보도해, 학생 사회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관심이 쏠렸다. 다만, 안타까운 죽음을 다룬 그 매체들의 책임감 없는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미·적분에 막혀 스러진 ‘세계 로봇王’의 꿈’ 한 주요 일간지의 사설 제목이다. 이 사설은 “1학년 1·2학기 ‘미·적분' 과목에서 연이어 F 학점을 받은 데 낙담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고 단정 지으며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우리 학교의 상황을 개탄했다.

故조 학우가 겪은 괴로움의 원인은 그 자신만이 알고 있다. 미·적분일수도 있지만, 학생 사회 부적응일 수도 있고, 연애 문제일 수도 있다. 누구도 그가 무엇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수많은 매체의 단정적인 보도로, 故조 학우는 사건 하루 만에 섣불리 시행한 입학사정관제의 피해자이고, 영어강의가 어렵지 않은(?) 과학고 출신 학우들 틈바구니에서 적응하지 못한 채 지고만 청춘으로 ‘만들어져’ 버렸다.

물론 故조 학우의 선택에 결정적인 요소가 무엇이었든, 정황상 그가 우리 학교에서 생활하면서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므로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에 많은 시사점을 주었고, 이에 대한 논의가 지금도 온라인, 오프라인을 오가며 뜨겁게 진행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매체들의 편협하고 무책임한 보도로 주요 쟁점은 ‘입학사정관제, 이대로 괜찮은가’ 등 사회와 학내 분위기 등 본질적 문제가 아닌 제도상 문제로 좁혀졌다.

제도가 문제라면, 그 제도를 대폭 개선하거나 아예 없애면 될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문제인가. 입학사정관제가 있기 전부터, 차등 등록금 제도가 있기 전부터 우리 학교에서는 왕왕 학우들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다시 안타까운 일이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넓은 폭에서 현재 상황을 살펴보면서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문제를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

위의 사설은 “조민홍 군의 꿈이 미·적분 학점의 굴레에 걸려 좌절해버린 사정에 가슴 한편이 메어온다”라고 끝맺는다. 조 학우가 던진 수많은 시사점이 그들의 편협한 굴레에 걸려 더 큰 논의로 진행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이 메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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