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삼 년 그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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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 삼 년 그 끝자락에서
  • 신승규 부편집장
  • 승인 2010.11.29 0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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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사진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나면, 세상에는 사진기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시커멓고 묵직한 쇳덩어리를 들고, 거기에 난 작은 유리창에 코를 박고 들여다보는 일이 뭐 그리 재미있는지는 아는 사람만 아는 일이다.

저마다의 이유야 있겠다만, 사진을 찍는 것은 내게 ‘보는’ 일이다. 우리는 세상을 보되 늘 의식하며 보지는 않는다. 보고 싶던 영화를 ‘보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는’ 몇몇 대상을 제하면 나머지는 건성으로 스쳐 볼 뿐이다.

하지만, 손에 사진기가 들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뷰파인더로 세상을 보는 순간, 일상적이던 ‘보는’ 행위에는 찍는 이의 의지가 개입된다. 보려고 해서 보는 것이 되고, 대상에 관심을 투사할 적극적인 마음의 준비를 한 상태가 된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가 나와 상관없는 것이 아니게 된다. 나의 의지로 그것을 ‘보려’하는 이유에서다.

학보사 기자 활동도 그랬다. 학내 전반의 사안을 다루는 취재부를 거치며 나는 대부분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순간순간 에너지의 흐름이 급변하는 그곳에서 부실한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정보와 현장 분위기를 입력해야 했다. 시의성(時宜性)이 최선의 과제인지라 학내 어느 것도 소홀해서는 안 되었고 어느 순간에는 눈에 뵈는 모든 대상을 기사와 연결 짓는 나를 발견했다. 활자와 씨름하며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삼 년, 학보가 생활을 지배한 듯하다.

떠날 때가 되어 나를 추스르고서야 여유가 생겨 지난 삼 년을 되돌아본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것을 보았고, 많은 것을 배웠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흥미롭고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식을 배워 뿌듯하다. 관념으로알고 있던 기자의 길은 실제와는 많이 차이가 있음을 알았고,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좋았다.

물론 학보사 일은 늘 녹록지 않았다. 쓰고 고치고를 반복해 너덜너덜 해지고도 제자리를 맴도는 글만 보면 답답해 울컥한다. 속으로 아는 온갖 종류의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나중에 굶어 죽어도 글 쓰는 일은 안 하리라 다짐한 적이 부지기수다. 그리 쓰인 기사가 사랑받으면 위로라도 되련만, 응당 나와야 할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거나 글에 기자의식이 보이지 않는다는 식의 평가는 늘 쓰라렸다. 만만한 게 신문지라고 벌건 라면국물을 온몸으로 받아 내거나 돗자리로 둔갑한 신문의 모양새도 그랬다. 박수받지 못하는 배역으로 동지라고는 함께 하는 학보사 기자들뿐이었지만 그래도 기자라는 사실에 항상 행복했다.

열정의 방향과 종류는 달라도 현재 학보를 만드는 기자들에게는 남들은 볼 수 없는 열정이 있다. 남은 기자들은 그 열정을 원 없이 불사르길 바라고 독자분들께는 조금은 그 열정을 알아주십사 욕심을 부려본다. 마지막 신문, 날이 희뿌옇게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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