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달린다, 어디를 향해 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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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달린다, 어디를 향해 달리나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0.11.29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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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문송천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누구나 음미해 볼 가치가 있는 말이다. 흔히 인생을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에 비유한다. 하지만, 마라톤에는 항상 결승점이라는 종점이 표시되어 있지만, 인생은 지금 내가 어딜 향해서 가야 하는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스포츠 분야를 비롯한 몇 분야에는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마라톤계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으나 조만간 도입된다면 거기에 헌액될 자격이 있는 이는 아마도 손기정, 황영조, 이봉주 선수 정도일 것이다. 만약 인생에도 명예의 전당이 존재한다면 그 자리에는 과연 누가 들어갈 자격이 있을까.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불후의 명작을 남긴 예술가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생전에 종사한 직업이 무엇이었던 간에 인생을 예술처럼 깊이 있게 ‘그리고’ 또는 ‘연주하고’ 간 사람들 전체에게 해당한다고 본다. 자신이 어느 직종에 있든지 이웃에게 펼치는 그 무엇이 나 자신에게 과연 있느냐를 봐야 한다. 무릇 공정 사회라는 것은 이렇듯 각성한 이들의 노력이 합쳐져 비로소 이뤄질 수 있다.

학창시절은 인생의 중반부와 후반부를 준비하는 기간이다. 베풂도 의미 있게 하려면 적어도 인생의 40대에는 들어서야 비로소 방향이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일에 사전 연습이 선행되듯이 젊은 시절에는 베풂을 위한 작은 연습 또는 마음의 준비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연구와 학업이 생명줄이다. 다만, 연구와 학업을 제대로 다 하고 그것을 넘어서서 할 수 있는 각자의 활동의 하나로서 베풂을 회자하는 것이다.

긴 세월 동안 일반인을 위해 매주 과학기술 시사해설 활동을 줄곧 해왔다. 방송계에서 프로그램을 개편할 때마다 운 좋게 살아남은 덕이다. 지금까지 생방송 출연도 8백 회 정도 했다. 방송활동을 하면서 사회 각계각층의 인물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외부인의 우리 학교에 대한 시각은 대개 편향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 학교가 주로 받기만 하지 베풀기에는 인색한 집단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리 학교에 입학하려면 국가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 꽤 있을 텐데 학생들이 재학 중이나 졸업 후에 사회를 향해 일종의 자선 행사 같은 것을 한 일을 본 적이 없다는 지적이 날카롭다.

이러한 지적은 우리 학교의 모든 식구가 허심탄회하게 한번 돌아다 봐야 할 대목이다. 베푸는 노력은 처음에만 하기가 어렵지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그다음에는 별 무리 없이 하기 쉬워진다. 베풂의 의미와 철학에 대해 소신을 갖기까지는 누구나 좀 시간이 걸린다. 몸과 정신에 친숙해질 때까지 약간의 연습 과정이 추가될 뿐이다.

장차 사회 각 분야에서 자리 잡아 대략 불혹의 나이로 돌입하는 40대 초반이 바로 나의 인생이 명예의 전당으로 향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짓는 주요 시기이다. 그때부터 꾸준히 적금 부어 나가듯이 내 이웃에게 베풀 수 있는 것을 조심스럽게 쌓아나가야 한다. 학창 시절에는 훗날 그런 시기를 대비하는 마음이 싹틀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른 삶의 자세 중 하나다.

필자를 ‘마스터스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최근 연락받았다.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마라토너에게 주어진 것이라 일종의 영예라면 영예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장차 인생의 명예전당에 헌액될 수 있을는지는 현재로서는 스스로도 미지수다. “예술이 길기는 길다. 그러나 인생은 더 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나 자신에게 늘 다짐하며 살아나가는 자세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후보다운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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