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욱의 미술이야기(2)

<편집자 주> 서정욱갤러리 대표 서정욱 씨의 두 번째 미술 칼럼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불황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해결 방안을 알아보았다


지난 2월 런던에서 열린 경매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 <걷는 사람 1>이 1억 430만 달러, 한화로 약 1203억 원에 낙찰되며 현대 미술품 중 최고가를 기록했다. 불과 3개월 후, 뉴욕의 한 경매에서는 피카소의 작품 <누드, 녹색 잎과 상반신>이 한화로 약 1250억 원에 팔리며 기록을 갈아치웠다.

비단 서양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6월 3일에는 중국 북경의 한 경매에서 북송시대 황팅젠의 서예작품 ‘지주밍'이 4억 3680만 위안, 한화로 약 770억 원에 낙찰되었다. 중국 미술 시장에서도 조만간 1000억 원대의 낙찰가격이 나올 전망이다.

지난 2006년과 2007년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도 비교적 활황을 맞았다.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에 600억 원이 몰리고, 작품 가격이 평균 33% 이상 오른 것이다. 이러한 미술 시장 활황에 힘입어 미술품을 사고 되팔아 남긴 수익을 투자자에게 배분하는 아트펀드라는 투자상품까지 등장했다.
 

우리 미술 시장, 경기 침체에 무너지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은 급격히 침체되었다. 아트펀드의 초라한 성적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골든브릿지 스타아트사모펀드’에서 100억 원 규모로 출범한 아트펀드는 지난 3년간 수익률이 1.5%에 그쳤다. 주식펀드의 평균 수익률 31.07%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또 다른 아트펀드인 ‘명품아트 사모특별자산 1’은 수익률이 마이너스에서 1%대를 겨우 오가는 정도다.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침체가 미술 시장 축소의 큰 이유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미술품은 생활필수품이 아니라 기호품이기 때문에, 경기가 어려울 때일수록 시장이 큰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해외의 경우 침체기를 극복하고 미술품 경매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미술 시장이 위기를 겪는 이유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즉,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 천민지 기자

낮은 수요, 대중화되지 못한 미술 시장

미술 시장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균형 있게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경우, 작가 수와 비교해 수요층이 너무나 빈약하다. 기업과 기관이 작품 구매에 앞장서는 선진 미술 시장에 비해 우리나라는 개인이 경매 낙찰을 받는 비율이 88%로 압도적이다. 또한, 지난해 경매를 통한 작품 구매자는 고작 900명에 지나지 않는다. 즉, 미술 시장이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미술 시장이 대중화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하게도, 이는 우리나라에서 미술 ‘문화’의 대중화가 아직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술을 즐기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미술품을 사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위기는 미술 ‘문화’의 비활성화라는 근본적 문제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알 기회도, 즐길 기회도 마땅치 않다

요새 들어 대형 전시가 자주 열리고 많은 사람이 전시를 찾기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미술을 즐기는 문화는 낯설다. 학교에서도, 생활 속에서도 미술을 제대로 알고 배우고 접할 기회가 턱없이 적기 때문이다. 현행 우리나라 미술교육은 실기위주와 교과서 중심으로, 실제 미술품을 감상하고 그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현장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술에 대한 전 국민적인 무지를 가져오게 되었다.

미술관의 개수 또한 외국과는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부족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8년에 발표한 ‘미술관운영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미술관은 전국에 걸쳐 총 25곳밖에 없다. 국립 미술관은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 단 한 곳뿐이다. 미국의 공공미술관이 788곳, 영국이 174곳, 프랑스가 155곳이라는 사실에 비추어 봤을 때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미술의 대중화

미술을 제대로 접하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미술 시장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미국, 프랑스 등 미술 문화 선진국의 경우, 직업미술인의 절반가량이 주요 수입을 작품의 판매로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예술인 중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생계유지를 위한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작의 질적 경쟁력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뻔한 이치이다. 그림을 파는 화상 역시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위해, 상품성이 보장된 기성 작가들의 작품만을 내세우고 있으며, 수요자 또한 미술에 대한 안목 부족으로 기성작가의 작품을 선호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어 새로운 작가가 시장에 발을 붙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이러한 악순환 역시 근본적으로는 시장 자체의 부실함에서 비롯하며, 이는 결국 또다시 미술 문화가 대중화되지 못했다는 문제로 귀결된다.


정부와 대중의 노력이 필요하다

결국, 우리나라 미술 시장의 발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은 미술 문화의 대중적 확산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대중 양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로 미술의 대중화를 선도해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외에도 더 많은 공공미술관이 다양한 미술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해야 하며, 일반 대중들이 더욱 쉽게 미술문화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대중의 미술 소양을 증진하기 위한 미술 교육 개선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기존의 이론 중심 교육을 탈피하고, 미술이 대중의 실생활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 있도록 해야 비로소 대중이 미술문화와 친근해질 수 있을 것이다.

미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대중의 노력도 중요하다. 대중은 미술을 자주 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미술 시장 불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대중이다. 대중이 미술에 관심을 두고, 이에 따라 미술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면 침체된 국내의 미술시장은 머지않아 활기를 띨 것이다.
 

글 / 서정욱갤러리 대표 서정욱


서정욱 대표는 미술을 쉽게 소개해 미술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 세계일보, 아시아투데이에서 미술칼럼을 연재한 바 있다. 작년 12월부터는 조선일보에서 <서정욱 미술토크>를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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