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의 개척자, 육태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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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아트의 개척자, 육태진을 만나다
  • 이서은 기자
  • 승인 2010.11.28 2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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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 미디어아티스트 육태진 회고전

지난 2008년 간암으로 타계한 미디어아티스트 육태진. 그의 회고전이 지난 10일부터 다음달 10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육 작가의 작품을 초기부터 말년까지 연대기 순으로 소개한다. 우리나라 미디어아트의 선구자인 그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나봤다


1. 새로운 감수성의 출현

제1전시실의 한가운데, 소녀처럼 연약한 모습의 한 여인의 입상이 있다. [Moonlight]라는 이 작품은 1984년에 제작한 것으로,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작가의 학생 시절 작품 중 유일하게 이번에 전시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는 대학 시절, 조소보다는 당시의 대중문화를 비롯한 새로운 매체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 Moonlight

1991년 제1회 개인전에 소개된 그의 초기 작품들은 주로 투명한 아크릴 뚜껑이 씌워진 상자나 고가구에 특정한 글을 기입한 오브제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우편엽서를 이용한 작품들이 있는데, 그 중 [우편엽서 56매]는 언뜻 한 장처럼 보이지만, 소형 나무 상자 속에 같은 규격의 우편엽서 56장을 쌓아서 만든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지도 속의 등고선이 위로 솟아나듯 평면에서 입체로 변형된 모양을 볼 수 있다.

▲ 우편엽서 56매

작가는 이 작품을 아크릴판이 씌워진 나무 상자 안에 넣은 뒤 동그랗게 구멍을 내고 ‘LIKE TALKING THE PULSE'라는 글귀를 집어넣었다. 육 작가의 오브제 작품에서 공통되는 것이 바로 이 중간에 있는 원형의 구멍이다. 구멍과 그 주위에 있는 알쏭달쏭한 문구는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상자 안으로 손을 넣어보도록 관람자를 이끈다.


2. 상업문화에 대한 호기심 어린 관찰자

[롯데월드] 연작은 당시의 상업적인 자본주의 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서울로 간 육 작가는 롯데월드 분수 조형물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 경험이 이 작품으로 연결되었다. 새로운 감수성과 문화를 감각적으로 감지하고, 이에 대해 이해하는 작가의 관심이 [롯데월드 Ⅰ]과 [롯데월드 Ⅱ]에 담겨 있다.

▲ 롯데월드

이 작품에서 작가는 아크릴 상자에 광고를 붙이고 조명을 쏘아 광고가 벽에 크게 확대되어 보이도록 했다. 이때 사용된 회전 환등기는 작가가 작품 의도에 맞추어 직접 제작한 것이라, 전시 관계자는 이러한 기기를 재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애국자 게임

[애국자 게임]과 [베트남 관광]은 제작된 당시의 특징적인 사회현상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다. 1992년도 대통령 선거를 풍자하는 작품인 [애국자 게임]은 빨강, 노랑, 초록 신호등 속에 세 명의 인물(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나타냈다. [베트남 관광]은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의 수교 이후 등장한 관광패키지 광고문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광고에서는 ‘전적지 탐방’이라는 이름으로 과거 월남전쟁에 참가했던 부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그곳으로 가자고 권유한다. 인간의 감성을 파괴하고 뒤집는 참전의 체험이 온천, 문화, 휴양과 함께 ‘관광’의 대상으로 변모한 그 지점을 작가는 신문의 작은 광고에서 발견해낸 것이다.

▲ 베트남 관광


3. 테크놀로지의 시학

1995년 [유령가구]를 시작으로 육태진의 작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유령가구]는 동력장치를 이용해 가구에 있는 두 개의 서랍이 번갈아 열리면서 계단을 오르는 남자의 뒷모습이 담긴 영상이 보이는 작품이다.

▲ 유령가구

[배회1]과 [배회2]는 고가구 위에 모니터가 교차해 이동하도록 설치한 후, 어딘가로 걸어가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비춰준다. 쓸쓸하지만 묵묵하게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은 이 시기 그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마치 고행하듯 반복해서 걸어가는 이를 보여주는 이 담담한 영상은 명상에 빠지듯 성찰의 시간을 갖게끔 유도한다.

▲ [배회1]과 [배회2]

이 시기의 작품들은 이질적인 요소를 이물감 없이 조화해내는 작가의 감각과 표현력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고가구 혹은 오래된 오브제와 첨단 기술을 조화롭게 결합해내는데 성공했다. 이는 각 작품을 제작하고자 여러 번 실험을 반복했고,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마다 오브제를 변화시켰던 작가의 치밀한 성격에서 기인한다. 보통 미디어아트 전시는 산만한 경우가 많은데, 그는 최대한 깔끔한 처리를 위해서 영상을 오브제 속으로 숨기거나 별도의 틀을 씌우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배회], [거울], [유령가구]에서 차가운 금속 기계가 온기가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고가구 속으로 들어간 것이 좋은 예이다. 이 고가구와 영상을 결합한 일련의 작품은 1990년대 미술에서 새로운 영역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전시회 측에서는 당초에 기존 작품에서 사용했던 방식인 VHS(video home system)를 활용해 영상을 재현할 계획을 세웠으나, 생전의 작가가 미디어의 변화에 발맞춰 작품을 새롭게 변환했던 점을 고려해 DVD 형태로 영상을 변환해 전시했다.


4. 인간존재의 고독, 명상의 공간

제3전시관에는 [터널], [튜브], [숨] 등이 전시되고 있다. [터널]은 10m의 긴 터널 속 좌우로 흔들리는 남자의 모습을 기차 소리와 함께 담은 작품이다. 어두운 터널 안을 들어가면 영상 속 남자와 가까워지면서 중압감마저 느껴진다. [튜브]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알루미늄관 끝에 영상이 재생된다.

숨소리와 함께 인물(작가 자신)이 커졌다가 숨을 내쉬면서 인물도 점점 작아지는 영상으로 이루어진 작품 [숨]은 반복과 순환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 보행자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거울]과 [보행자]는 제4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작가는 넓은 공간을 위한 대형 비디오 인스톨레이션을 여러 점 발표했다. 걸어가는 남자의 옆모습을 보여주는 [보행자]는 [롯데월드]에 사용되는 것과 같이 이미지를 회전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소장 중인 [거울]에는 아들과 작가 자신의 얼굴이 번갈아 가면서 나온다. 거울 밑의 서랍 속에는 나비가 날아가는데, 그 위에는 머리카락과 먼지가 있어 현실감과 쓸쓸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 거울

그 옆에서는 그의 생전 인터뷰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영상은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을 만들 때의 생각, 작업실의 모습 등을 보여준다. 또한, 이곳에는 작가 관련 자료들, 작품 [터널]과 [숨]의 구상도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 /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소개

육태진 전 외에도 시립미술관 1층에서 백남준 작가의 비디오 아트 작품 <프랙탈 거북선>을 관람할 수 있다.
▶ 위치 : 대전시 서구 만년동 396번지
▶ 대표전화 : 042-602-3225
▶ 관람료
- 25~64세 : 500원, 6세~25세 : 300원
▶ 관람시간 (매주 월요일 정기 휴관)
- 3월~10월 : 오전 10시 ~ 오후 7시
- 11월~2월 : 오전 10시 ~ 오후 6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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