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일반적으로, 경기가 불황일때 명품 매출은 오히려 증가한다. 같은 제품이어도 비싸게 팔 때, 더 잘 팔리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소비자의 행동에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다양한 심리관계가 얽혀있다. 건국대학교 김시월 교수가 말하는 소비 심리에 대해 알아보자.

2002년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다. 당시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로, 물가상승, 소비의 양극화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동경 시내 한복판에 한 명품브랜드의 새로운 매장이 오픈하게 되었다. 경제 불황에도 이 소식을 들은 소비자들은 개점 3일 전부터 텐트를 치고서 입장 순서를 기다리기도 하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대신 줄은 서게 하는 등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러한 와중에 한 50대 중반 여인의 사례가 방송에 소개되었다.

여인은 남편과 단둘이 동경 근교의 자그마한 이층집에서 1층을 식당으로 운영하며, 2층의 가정집에서 살고 있었다. 여인은 식당에 손님이 없는 한가한 시간에는 늘 2층 방에 머물러 있곤 했다. 그 방에는 약 50여 가지의 명품 브랜드 제품이 진열되어 있었다. 외출할 시간이 없는 여인은 늘 이 제품들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많은 제품을 가지고 있음에도 여인은 다른 제품의 구매를 기대하며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늘 새로운 매장의 오픈을 주시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다면 식당일을 잠시 제쳐놓고, 구매한 명품 중 한 가지라도 들고 외출을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했을 것이다. 왜 여인은 힘들게 구한 명품들을 방안에 두고 들여다보기만 했을까.

 / 천민지 기자
소비 행위엔 정형화된 심리 경향이 있어

이러한 기현상은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이라면 나도 가지고 싶어하는 소비성향 때문에 나타난다. 소비자 대부분은 대중적인 집단에 소속되고 싶어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집단과 어느 정도 차별화를 두고자 한다. 이렇게 집단내 소속감이 우선시 되는 것이 바로 소비자의 심리다.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소비는 결국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되고 그 궁극적인 목적은 소비자 개인의 만족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행동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소비자다. 소비자의 경향은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과거에는 단순히 갖고 싶어 하는 소유의식이었던 것이 나중에는 상품이 지닌 성능을 중시하는 기능적인 성향으로 변화했다. 최근에는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상징적 의미의 수단으로 소비 경향이 바뀌고 있다.

기존 경제에서 고려되지 않았던 소비자

옛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써라”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처럼, 사람들은 소득을 늘리는 일에 모든 관심을 쏟는다. 기업은 생산을 중심으로 더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에만 집중했다. 그 결과,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소득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세상은 온통 생산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애덤 스미스의 말이 있다. 그는 “소비자의 이익은 다만 생산자의 이익을 확인하는 데 필요한 범위에서 고려될 뿐이다. 중상주의에서 생산자의 이익은 소비자의 희생에 의존한다. 따라서 생산자는 소비자가 아니어도 생산을 하며, 이는 생산 및 상업의 궁극적인 목표 및 목적을 고려한 것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당시 생산은 증가했지만, 그 과정에서 소비자는 고려되지 않았다.

개인 생산자는 산업혁명을 거쳐 자본주의가 확립되면서 기업이라는 생산조직으로 바뀌었다. 생산은 기업 간 경쟁을 일으켰고, 세계 시장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논리에 물들어갔다. 하지만, 기술혁신이 가져온 변혁의 물결은 곧 시장을 확대하는데 한계를 맞이했고, 생산자들은 지금까지 무시해온 소비자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제품을 구매하고 상점을 선택하는가 하는 문제가 소비자 행동 이론의 핵심적 과제가 되었다.

소비자의 선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모든 소비의 시작은 소비자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따라 기업의 경쟁률과 시장의 경쟁구도가 바뀐다. 소비자의 선택이 중요해진 까닭은 바로 소비자의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며, 그들이 감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성적으로 정보를 얻고 합리적으로 거래하려 해도, 구매의 순간에는 감성적인 존재가 되기 쉽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소비재는 활용성보다는 의미 전달을 위한 매개체로서의 역할이 더 커진다’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공감 이상의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소비자가 소비를 할 때 경제적인 합리성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개성 표출을 위한 기호의 도구를 사들이며, 상품을 일차적인 소비 욕구를 뛰어넘어서 자기의 표현을 위한 소통의 수단으로서 구매하기 때문이다.

욕구충족의 한 단면, 소비문화

이 과정에서 ‘기호 가치가 곧 고가품’이라는 잘못된 소비문화가 나타나 사회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소비는 극히 개인적인 선택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반향이 일시적 유행, 경향을 넘어 문화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한, 소비문화의 문제는 이러한 소비자의 소비 행위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모두가 이를 모방하고 동참함으로써 대중에게 확산된다는 점에 있다. 즉, 소비문화에는 급속한 전염성이 있다.

소비는 결국 한 사회의 문화적 가치관과 제도, 규범 등이 어떤 형태로든 제품의 속성, 생산방식, 사용방법과 관련되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사회 문화적 행위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비문화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날 것인가를 숙고하는 일은 모든 소비자에게 주어지는 과제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모여 현명한 소비문화를 만든다

이러한 소비문화의 현실을 바로 잡고, 미래의 바람직한 소비문화의 정착을 위해 무엇보다도 소비의 주체인 소비자 개개인의 의식전환이 가장 시급하다.

특히 대학생 소비자는 지금은 소비의 주체일 뿐이지만 곧 생산과 소비를 함께 할 주체이며, 미래 사회의 건전한 소비문화를 주도할 소비자다. 지금부터 자신의 형편에 맞는 소비, 그리고 공동체 및 환경 지향적인 현명한 소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글 / 건국대학교 소비자정보학과 김시월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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