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및환경공학과 박지영 교수 기고

<편집자 주> 새벽 3시에도 꺼지지 않는 연구실과 도서관의 불빛. 대학 캠퍼스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공허한 시험기간의 거리. 다소 삭막하면서도 이질적이다라는 느낌이 우리가 생각하는 캠퍼스의 모습이다. 우리가 진정 바라는 캠퍼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건축학을 전공한 건설및환경공학과 박지영 교수가 우리 학교 캠퍼스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한다

IMAGINING KAIST

최근 KI 빌딩, 스포츠 컴플렉스, 인터내셔널 센터 등 새로운 건물들이 하나둘씩 자리 잡으면서 캠퍼스의 모습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활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니지 않던 길로 다니게 되고, 카페, 작은 모임장소, 영아 탁아소, 모성 보호실 등 신축 건물을 중심으로 공공성이 강한 새로운 공간들이 구성된다. 또, 그곳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신축건물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목을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아쉬움은 남지만, 캠퍼스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고, 무엇보다 많은 사람이 캠퍼스의 건축물에 관심을 두어, 그에 대한 욕구와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캠퍼스는 공공성과 진보성을 담아내야

대학 캠퍼스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마치 작은 도시 같아서, 연구 및 교육시설뿐 아니라 주거, 식당, 도서관, 박물관, 체육시설, 주차장, 우체국, 창고 등 수많은 공간과 거대한 외부로 이루어져 있다. 담 안의 캠퍼스뿐만 아니라, 대학 관련 산업만으로 이뤄진 대학 단지(Campus-town)가 있을 정도로 대학 캠퍼스는 지역과 도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Privately owned, publicly accessible’(사적으로 소유되지만, 공공의 접근이 가능한)이란 문구에 나타나듯, 대학은 소유주체와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공공성’을 가진다. 이와 더불어 대학이 추구하는 학문적, 사회적 ‘진보성’은 공공성과 더불어 건축가에게 중요한 디자인 키워드가 된다. 이러한 점 때문에 건축가에게 대학 캠퍼스와 건축물은 흥미롭고 매력적인 연구 대상이다. 건축사적으로 중요한 많은 건물이 캠퍼스에 남아 있고 새롭고 진보적인 수많은 건물 또한 대학에 지어진다.

반면, 국내에서 대학 캠퍼스는 사회적 ‘공공성’보다는 오히려 세속 사회로부터 고립된 상아탑으로서의 이미지가 강조되었고, ‘진보성’보다는 대학의 역사와 위엄을 세울 수 있는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디자인이 주를 이뤘다. 또한, 행정적으로도 캠퍼스를 가꾸는 데 일반 사람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는 길이 차단되었고, 그 결과 캠퍼스 디자인은 위축되었다. 국내의 다른 대학에 비해서 ‘공공성’, ‘진보성’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우리 학교도 아직 이러한 면을 충분히 캠퍼스에 담아내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작은 변화들이 곳곳에서 감지되듯 국내의 대학 캠퍼스도 갇힌 틀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다.

▲ 세계 유수 대학의 캠퍼스 / 박지영 교수 제공
오른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대학교, 스위스 로잔 공과대학교, 우리나라 이화여자대학교,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이다

우리 학교 캠퍼스는 매력적인가

신촌, 대학로 등 하루종일 사람들로 북적이고 상업 활동이 왕성한 우리나라의 다른 대학가 주변과 비교한다면 우리 학교는 ‘섬’에 가깝다. 하지만, 처음의 무미건조하고 삭막한 이미지와는 달리 잘 살펴보면 나름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다.

학생 대부분이 캠퍼스에서 생활해서인지, 일상의 평안함과 편리함이 캠퍼스 곳곳에 은연히 녹아있다. 문제는 ‘은연히’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학생과 교직원을 대상으로 캠퍼스에 대한 이미지를 조사해 보니, ‘한적함’, ‘지루함’, ‘조용’, ‘우울’, ‘폐쇄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을 많이 꼽았다.

더 높은 단계의 건축을 지향해야 한다

사람들은 우리 학교의 무미건조한 건물을 부정적 이미지의 원인으로 꼽는다. 우리 학교의 건물들은 ‘form follows function’(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에 충실한 건물들로 채워져 있다. 건축은 다음과 같이 3개의 단계로 나누어 구상할 수 있다. 우리 학교의 건물은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자.

▲ 1단계: 기능적으로 문제가 없도록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능적 수준의 건축
▲ 2단계: 시대정신을 잘 반영하며 범인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시각의 전환을 제시하는 지적인 수준의 건축
▲ 3단계: 시대를 초월해 인간의 실존적인 물음에 공간으로 답하는 영적인 수준의 건축

우리 학교의 많은 건물이 시설 확충과 현대화를 위해 재건축 혹은 증축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기능적 단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신축된 건물은 세련된 외관으로 ‘진보성’과 ‘공공성’의 정신을 뽐내지만, 화려한 외관만큼 건물 내부는 그 정신에 충실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좋은 건물은 건물의 내외부 전체가 하나의 디자인으로 일체화되어야 하는데, 건물 내부는 외부만큼 세심하고 진보적인 고민을 한 흔적이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KI 빌딩의 반짝이는 유리 큐브는 건물의 상징물이 되고, 그 아래 사방으로 뻗은 계단은 건물의 개방적인 공공성을 상징한다. 하지만, 막상 건물에 다가가 보면 규모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거대하고, 계단은 가파르며, 주변의 환경들과 연속성이 부족하다. 주변에서 시작해 내부의 아트리움(현대식 건물의 중앙 높은 곳에 유리로 지붕을 한 넓은 공간)까지 연결해 학문의 융합을 이루는 장을 표현하고자 했던 애초의 디자인 의도와는 달리, 독립된 거대한 플랫폼으로 부유하고 있다. 캠퍼스의 아이콘으로서는 성공했지만, 인간적 소통에서는 아쉬움이 있다.

장기적으로 계획하는 캠퍼스 디자인

우리 학교 캠퍼스가 삭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건축물과 사람의 밀도의 문제뿐만 아니라, 건물의 축적과 프로그래밍의 문제도 있다. 캠퍼스 가득 건물이 들어선다고 하더라도 캠퍼스는 여전히 삭막하다는 인상을 줄 수 밖에 없다.

캠퍼스에서 중요한 구심축이 되는 중앙도로를 생각해 보자. 학교의 활기를 불어넣어야 할 중앙도로를 사람은 별로 이용하지 않는다. 보행자나 자전거를 위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앙도로는 차를 위한 규모이며, 근처 주차장은 사람의 길을 끊으며 차로 접근하기 편하게 되어있다. 최근 발표된 캠퍼스 디자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차를 위한 도로를 외곽으로 돌리고 중앙도로를 과감하게 자전거와 사람들 그리고 외부공간으로 내어주도록 설계한다.

우리 학교는 중앙도로를 중심으로 식당, 도서관, 본관 등 학교의 중요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주변 건물들은 중앙도로와 적극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있고, 공간에 적당한 긴장감이나 리듬감이 없다. 넓은 외부공간에 건물만 덩그러니 놓기보다는, 같은 구역 건물들이 군집(cluster)을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군집된 건물과 외부공간에 분명한 성격(재료나 공간의 크기 조절)을 부여하고, 외부공간에 여러 겹의 위계를 두어 특성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사람들이 한가로이 거닐고 싶도록 사람의 눈높이, 걸음 속도와 리듬에 맞추어 주차장의 위치, 도로의 폭, 나무의 크기, 바닥의 재질, 벤치 등이 연관성과 일관성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기능적으로 필요한 것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을 넘어, 이들 사이의 일관성과 연결성을 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역할이다. 각각의 건물도 중요하지만, 그 요소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공동체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지역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까지 계획하고 목표를 세우는 것은 더 높은 차원의 고민일 것이다. 이를 위해 캠퍼스 전체의 디자인에 대한 마스터 플랜(Master Plan)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학교의 장기적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이것이 캠퍼스 디자인에 잘 반영될 수 있게 고민해야 한다.

친환경적인 캠퍼스를 꿈꾸다

마지막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모든 분야에서 이슈가 되는 친환경성(Sustainable Design)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다. 국외에서는 친환경인증제도를 보편화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많은 대학이 높은 수준의 친환경 인증을 받고 있다. 즉, 얼마나 친환경적인가를 평가할 수 있는 지표에 따라 건물과 캠퍼스가 설계된다. 물론 초기에 추가 비용이 있으나, 건물이 지어져서 해체될 때까지의 생애주기를 보면, 전체 비용은 절감된다. 대학은 ‘공공성’과 ‘진보성’과 함께 다음 세대에 대한 ‘교육적’ 의미도 커서, 다른 어떤 건물보다도 높은 수준의 친환경을 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친환경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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