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면 속의 선, 세상 밖으로 나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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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 속의 선, 세상 밖으로 나오다
  • 이서은 기자
  • 승인 2010.11.09 2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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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 전시 [Long Live Drawing! 2]

원시시대의 구불구불한 동굴벽화에서도 발견되는 드로잉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화려한 건축 도면부터, 명암에 중점을 두고 그려 흑백사진을 방불케 하는 18세기 프랑스의 정밀 묘사 드로잉을 거쳐, 20세기 미술에서 드로잉은 초현실주의와 결합해 작가의 무의식을 드러내는 통로이자 가장 자유로운 표현방식으로 여겨졌다.

대전시립미술관 대전창작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Long Live Drawing! 2 - Spatial Drawing!>은 다양화된 21세기 현대 드로잉 중, 작은 캔버스나 종이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뻗어 나가는 새로운 드로잉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 대부분이 대전창작센터를 방문해 전시 공간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 주목할 만 하다.

<Long Live Drawing! 2>는 지난 2008년 열린 <Long Live Drawing! 1 - 디지털 시대의 드로잉> 전시와 이어진다. 지난 전시가 시간적으로 연속되는 드로잉을 포토샵, 애니메이션 등을 써서 표현했다면, 이번 전시는 선이 공간으로 튀어나오도록 해 바로 그 ‘장소'에서 가능한 드로잉을 보여준다는 점이 다르다. 2차원 평면을 벗어나 3차원 공간 속을 유영하는 선이 만들어내는 작품을 소개한다. (사진 / 대전시립미술관 제공)

 

▲ 김대홍. [오래된 잊혀진 작품과 노란 다락방이 있는 작은 집]. 2010

대전창작센터에 들어서면, 오른편 흰색 공간에 김대홍 작가의 <오래된 잊혀진 작품과 노란 다락방이 있는 작은 집>이 있다. 그는 여행지에서 산 조립식 미니어처 하우스와 대전창작센터 1층의 굴곡과 모양을 찾아내 공간에 직접 선을 그었다. 벽의 모서리는 물론, 의자와 신발의 테두리까지 굴곡이 존재하는 모든 부분을 검은색 선으로 표시했다. 뒤집어 놓은 침대 모양의 작은 부품에는 사람 두 명이 누워있는 모습까지 섬세하게 그려냈다.

1층 전시실 반대편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세 개의 방으로 나뉜 2층 전시실이 있다. 그 중 가장 왼쪽 방에는 이영민 작가의 작품 <플레잉 보이>와 <Sleeping Bag_1, 4>가 전시되어 있다. 두 작품에서 그는 종이에 아주 단순한 형태의 인물을 그린 후, 인물 주위의 배경을 잘라내고 빨간 고무줄로 둘러싸서 인물 주위에 3차원의 입체감을 만들어냈다. 이는 색채를 활용한 원근법만큼 복잡하지는 않지만, 인물이 공간 속에서 뛰쳐나오는 듯한, 혹은 반대로 공간 속으로 숨어 들어가는 듯한 환영을 일으킨다. 이곳에서는 또한 이영민 작가가 제작한 영상 <L 박사의 밀실>과 <bandits>가 재생되고 있다.

▲ 이영민. [플레잉보이] 중 일부. 2010

2층 가운데 방에는 김은주 작가와 허구영 작가의 작품이 양 벽에 전시되어 있다. 오른쪽 벽은 허구영 작가의 작품 두 점이 그려져 있다. <그림자-사건 혹은 파국>은 벽에 실을 건 뒤 나타난 두 개의 그림자를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은 이데아는 하나이지만, 이에 대한 모방은 여러 개일 수 있듯이 실체(실)는 하나이지만 허상(그림자)은 여러 개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이제, 작품은 나를 상처냈다>는 벽에 여러 개의 못을 박아 글씨를 쓴 후에, 조명으로 만든 그림자를 그린 것이다. 가까이에서는 무슨 글인지 알 수 없지만, 멀리서 보면 이 글의 정체가 어렴풋이 드러난다. 허 작가는 이 그림으로 빛이 있는 곳에 언제나 존재하면서도 쉽사리 잡히지 않는 그림자를 잠시나마 붙잡아둔다.

▲ 허구영. [이제, 작품은 나를 상처냈다] 중 일부. 2010

왼쪽 벽은 김은주 작가의 작품인 <무제>가 차지하고 있다. 가로 1,960cm, 세로 260cm의 큰 크기를 자랑하는 이 작품은 연필로 그린 것이다. 그녀는 종이 위에 연필 선을 반복적으로 그어 거대한 인체를 만들었다. 각각의 선은 연약하게 느껴지지만, 오랜 시간과 노동으로 축적된 선들은 거대한 인체군상이 되어 공간을 압도한다. 김 작가는 이 작품으로 연약함이라는 드로잉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을 뒤집었다.

▲ 김은주. [무제]. 2010

2층 전시실의 오른쪽 방에는 조문선 작가의 작품과 라피디우스, 린드프라이쉬 두 작가의 합동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왼쪽 벽에 설치된 조 작가의 작품 <sleep>은 누운 자세에서 거울을 보며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들을 실에 매달아 붙여 놓은 것이다. 설치된 작품의 아래편에는 드로잉으로 제작한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문과 마주 보는 벽면에 설치된 또 다른 작품인 <무제>는 펜과 머리카락으로 작가의 손과 같은 일상적인 대상을 표현한 것이다. 그는 선들을 펜으로 꼼꼼하게 그리거나, 머리카락을 종이에 꿰매어 표현했다.

▲ 조문선. [Sleep] 중 일부. 2010

오른쪽 벽에는 라피디우스 작가와 린드프라이쉬 작가의 합동 작품 <무제>가 있다. 이 작품은 벽면에 생긴 균열의 형태에서 영감을 얻은 드로잉으로, 벽면에서부터 바닥으로 이어지는 균열을 실과 테이프를 이용해 시각화했다. 또한, 출입문 쪽 벽에서는 분수의 물줄기와 춤추는 사람의 인체, 나뭇가지, 도로, 벽면의 균열을 드로잉한 작품들도 전시하고 있다.

▲ 라피디우스, 린드프라이쉬. [무제] 중 일부. 2010

2층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대전창작센터의 건물 외부를 보면, 녹색 정원용 호스와 잡동사니들이 건물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이는 요타로 니와 작가의 <불확실한 것으로부터 - 그래서 더욱 정확한 관계성>이라는 작품이다. 요타로 니와 작가는 대전창작센터 외벽을 드로잉 용지 삼고, 녹색 정원용 호스를 펜 삼아 자유로운 곡선을 그려냈다. 또한, 중앙시장에서 산 양은 주전자, 물뿌리개, 휴지통 등 일상적인 사물들을 비일상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선사한다. 특히 꺾여 있어 한 번에 다 보지 못하는 ‘ㄴ'자 형태의 대전창작센터 건물의 면들을 호스의 선으로 연결지어, 분절되어 보이는 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요타로 니와. [불확실한 것으로부터 - 그래서 더욱 정확한 관계성] 중 일부. 2010

※ 대전창작센터 소개
대전창작센터는 시립미술관 소속 특별 전시관으로, 실험적인 작품 전시를 많이 시도한다.
▶ 위치 : 대전시 중구 은행동 161번지
▶ 정기 휴관일 : 매주 월요일
▶ 관람료 : 무료
▶ 관람시간
- 3월~10월 : 오전 10시 ~ 오후 7시
- 11월~2월 : 오전 10시 ~ 오후 6시
▶ 대표전화 : 042-602-3200
▶ 홈페이지 : www.dm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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