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사회의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낸 것은
학부 교육 개혁 이후 [PLUS+]가 처음

서남표 총장은 2006년 9월 취임 직후부터 등록금 인상, 연차초과자 등록금 부과, 전면 영어강의 시행 등을 제시하면서 학부 교육에 지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학사 과정 학우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이러한 변화에 학생사회의 목소리는 얼마나 반영되었을까? 학부총학생회(이하 총학) 선거가 오는 24일로 다가온 이때, 제20대 총학 <스무살>부터 제24대 총학 <PLUS+>까지 지난 5년간의 학생사회에서 총학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2006년 제20대 <스무살>

서 총장을 처음 맞이한 총학은 박찬 회장과 최성림 부회장으로 구성된 제20대 총학 <스무살>이었다.

<스무살>은 학교가 학부 교육 개혁안을 발표하자 보직교수와의 간담회, 학우 토론회, 본관 앞 집회 등을 여는 등 학우의 목소리를 전달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개혁안에 대한 정보를 학우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대자보에 개혁의 목적과 시행대상이 명시되지 않는 등 학교-학우 간 대화의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스무살>은 확대 중앙운영위원회와 확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를 개최하는 등 학우에게 다가가려 노력했으나 대의원의 참여 저조로 애초 목표했던 바를 이루지는 못했다.

선거 출마 때부터 특히 사회, 정치적인 공약의 비중이 높았던 <스무살>은 21세기 한국 대학생 연합회(이하 한대련) 가입을 시도했으나, 학우와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또한, 정치색을 띠는 사업에 치중하느라 학우 복지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갑작스러운 학부 교육 개혁에 반대해 학우들이 본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 카이스트신문사

2007년 제21대 <Let's go>

김준우 회장과 배가영 부회장으로 구성된 제21대 총학 <Let's go>는 인수인계 과정부터 삐걱거렸다. <Let`s go>와 <스무살> 간부로 구성된 <비타민> 선거본부는 ARA 게시판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결국 당선 후에도 <스무살>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았고, <스무살>이 총학 사무실 의 컴퓨터를 포맷하고 문서를 유실하는 등 인수인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내부적인 갈등 때문인지 전면 영어강의 시행, 재수강 제한 등 학부 교육 혁신이 2007년 신입생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었음에도 당시 총학이었던 <Let's go>는 학교와의 협상에서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결국 학교의 어떤 정책도 학우의 입장을 반영해 변화되거나, 유예되지 않았다.

<Let's go>는 선거운동 때부터 학내 패스트푸드점 입점 공약을 내세웠고 임기 말에 매점 건물에 버거킹을 유치했다. 그러나 다른 공약이었던 인터넷 자치언론 구성이나 대학생활협동조합 등은 성과가 없어 선거 당시 전국 최초로 매니페스토(예산, 목적, 기한을 유권자에게 밝힌 공약) 선언을 해 주목을 받았던 것을 무색하게 했다.

2008년 제22대 <공감>

전 총학이 학우 대표로서 학교와 협상하는 데 어떠한 구체적인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버거킹 총학’으로 비아냥을 들으며 임기를 마치자 총학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되었다. 이때 전 총학에서 KAIST-POSTECH 학생대제전 기획단장을 맡았던 안재우 회장과 김민선 부회장으로 구성된 <공감> 총학이 학교의 정책에 학우가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겠다며 단독 출마해 당선되었다.

<공감>은 <Let’s go>의 학부교육정책학생대책위원회 사업을 이어받은 학부교육위원회를 구성해 학교와 협상했다. 그러나 합의한 내용도 계절학기 등 일부였고, 그나마도 <공감> 임기가 끝나자 무위로 돌아가는 등 실직적인 성과는 없었다. 이후 학부 교육 개혁에 대해 학생처, 본지와 공동으로 총장-학생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나 서 총장과 학우 간 상호 이해의 부족을 재확인했을 뿐 실효성 있는 대화의 진전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공감> 총학은 무엇보다 사무 회계의 부정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다음 총학인 <두드림>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의 사무 감사에 따르면 <공감>은 한 해 학생회비의 10%에 달하는 5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집행부 회식비로 지출했다. 또한, 영수증 없이 집행된 회계가 6,000만 원에 달했다. 총학 비품 중에서도 USB와 외장 하드디스크, 컴퓨터 모니터 등을 분실했다. 총학에 감사기구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하는 대목이다.

2009년 제23대 <두드림>

제23대 총학 선거에서는 단독 출마한 <두드림> 선거 본부의 김선재 정후보가 연차초과 예정자라는 이유로 학생처에서 선거인 명부를 주지 않는 등 학교가 선거를 방해했고, 선거가 무기한 연기되었다. 결국, 선거를 치르지 못하고 2009년 봄 전학대회를 거쳐 <두드림> 김선재 정후보를 위원장으로, 한재현 부후보를 부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로 출범하게 되었다.

<두드림>은 학생활동지침 전면 삭제, 학교의 규제 위주 기조 전환, 학생 대표의 정책 결정 과정 참여 등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고, 학교와 자주 면담하며 의견을 전달했다. 그러나 비대위로 선출된 탓에 출범이 늦었고, 정식 선거를 거쳐 선출된 회장단이 아닌 점이 학교와의 협의 과정에서 약점으로 작용하는 등 학교와의 견해 차를 좁히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전 총학 <공감>의 회계 감사를 면밀히 수행했던 <두드림>은 더 나아가 자치단체의 예산실행 현황을 분류하고 보고를 정례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체계적인 회계 개선안을 마련해 총학 회칙 내 ‘사무재정시행세칙’으로 제정했다.

2010년 제24대 <PLUS+>

<두드림>에서 간부로 일했던 박승 회장과 이병찬 부회장으로 구성된 제24대 총학 <PLUS+>는 단독 출마해 당선되었다. <PLUS+>는 꾸준히 학교의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자 노력한 <두드림>의 철학을 이어가되 늦은 출범으로 촉박했던 일정과 비대위라는 한계로 미처 진행하지 못한 사업 또한 이루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먼저 <PLUS+>는 “등록금은 반드시 내리겠습니다”라며 등록금 인하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등록금인하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등록금 인하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거는 등 학생 사회의 관심을 끄는 한편, 등록금 인하, 차등 수업료 폐지와 연차초과자 수업료 부담 경감에 대해 전체학생총투표를 진행해 투표자(투표율 68.97%) 중 95.8%의 찬성을 받았다. <PLUS+>는 이를 토대로 학교와 등록금 인하 협상을 진행하며 등록금인하 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학부 교육 개혁이 시작된 이래 몇 년 만에 학생 사회가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었다.

또한, <PLUS+>는 총학 대의 체계를 정비하고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제도를 마련하는 등의 내용으로 지난달 3일 총학 학생회칙을 전면 개정했다. 이번 개정으로 마련된 자치단체 감시 시스템은 <두드림>의 사무재정 투명화 정책의 기조를 이어 사무재정 감사를 전담할 기구를 구체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2011년 제25대?

2010년 서 총장이 연임하면서 2011년에도 서 총장 개혁의 기조는 이어질 것이다. 그 개혁에 학생사회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반영할 수 있는 소통과 협상에 능한 총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또한, 앞선 총학의 문제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제25대 총학선거에서는 학우를 위한 깨끗한 정책 선거전을 펼치고, 당선 이후에는 투명한 인수인계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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