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정재승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연구실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다 보면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줄 좋은 아이디어가 항상 필요하다. 학부생도 마찬가지. 기말 프로젝트를 위해, 개별연구를 위해, 혹은 동아리 공연을 위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창의적인 생각이 용솟음치는 공간은 과연 어디일까? 
이와 관련된 일화 하나. 미국의 면역학자 조너스 솔크(Jonas Edward Salk)는 어린이의 척수신경에 폴리오바이러스가 침범해 수족마비 증세를 일으키는 전염병 ‘척수성 소아마비’의 백신을 개발한 과학영웅. 그는 수년간 소아마비 백신연구를 위해 밤 12시까지 실험을 하고 주말에도 연구실에 나와 논문을 뒤적이며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매진했지만, 폴리오 바이러스의 활동이 너무 강력해 백신으로 적절한 수준의 활동으로 억제할 방안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 무렵, 그는 불현듯 가방 하나만 메고 연구실을 나와 2주간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다 보니, 해결책도 안 나오고 삶도 황폐해지는 것 같아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13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들을 방문하면서 몸과 마음에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그는 원숭이의 신장세포에서 얻은 폴리오 바이러스의 활동을 줄일 방안을 생각해낸다. 그는 여행을 중단하고 바로 돌아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동물실험을 통해 테스트해 본다. 결과는 대성공! 결국, 그는 이 아이디어로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다.
이를 기념해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샌디에고에 그의 이름을 딴 연구소를 지어준다. 솔크는 당시 최고의 건축가인 예일대 건축학과 루이스 칸 교수에게 건물 디자인을 의뢰하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자신이 수년간 씨름하던 소아마비 백신 아이디어가 연구실에선 안 나오더니 13세기 고성당 안에서 불현듯 떠오른 것으로 보아, 천장이 높은 곳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솔크 연구소의 모든 연구실은 천장의 높이를 3미터 정도로 해달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집들을 포함해 대개 실내 공간의 천장 높이는 2미터 40센티미터 정도.)
1965년 설립된 솔크연구소는 생명과학과 생명공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로, 현재 700여 명의 연구원들과 300여 명의 스태프들이 상주하는 작은 연구소지만 노벨상 수상자만 5명이 나오고 수십 명의 수상자가 거쳐 간 세계 최고의 생명과학 연구기관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곳에서 연구하는 과학자들 사이에선 오랫동안 ‘그들만의 미신’(urban myth)이 있었는데, 이곳 연구실에선 하버드나 MIT에 있을 때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더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천장의 높이가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들의 미신이었다.
그러자 과학자들이 이를 테스트해보기로 결정. 미네소타대 경영학과 조운 메이어스-레비 교수와 그 동료들은 천장의 높이를 달리하면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문제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얼마나 잘 푸는지를 테스트해보았다. 실험결과, 3미터 천장 높이의 방안에서 문제를 풀 때 창의적인 문제를 두 배 이상 더 잘 풀었으며, 2미터 40센티미터 높이에선 창의적인 문제는 잘 못 풀었지만,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잘 푸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8월 세계적인 과학저널 소비자 행동 저널(Journal of Consumer Behavior)에 실린 이 연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천장의 높이가 사람들의 창의적인 사고와 집중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넘어, 건축물이 그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인지 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교훈은? 카이스트 학생들이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면, 천장이 높은 강의실에 들어가 사색에 잠겨보시라. 편히 기댈 수 있는 의자에 앉아, 뇌를 각성시키는 커피나 홍차를 한잔 마시며 생각에 침잠해 들어가 보시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고양이의 낮잠처럼 무심히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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