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서전농원 대표 김병호 회장이 300억 원 상당의 자산을 우리 학교에 기부해 화제가 되었다.(본지 323호 4면 “KAIST가 내 꿈을 이루어 주리라 믿는다”) 그로부터 아홉 달 만에 다시 1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쾌척한 거액기부자가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김 회장과 이웃사촌인 조천식 회장 내외. 김 회장이 젊은 시절 76원을 들고 상경해 성공한 자수성가형 인물이었다면 조 회장은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과 한국은행, 은행감독원을 거치는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인물이다. 여든여섯의 나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그를 경기도 용인의 자택에서 만나보았다

본인의 재산을 기부하기까지
제가 학교를 다니던 일제시대에 제 주변에는 학교에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고, 수업료도 제때 내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저는 이러한 어려움을 그다지 겪지 않았어요. 집안의 경제력도 어느 정도 있었고, 아버지가 근검절약하셔서 생활에 곤란함이 별로 없었습니다. 천안에서 대학을 서울까지 통학하는 것이 힘들어서 아버지가 서울에 집을 사주셨을 정도니까요. 게다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매 학기마다 우등생이 되어서 수업료를 내지 않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덕에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사람은 들어가기 어려웠던 경성제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에 경성제대에서 정치, 경제, 외교를 배우는 문과 ‘갑’에 들어갔는데, 후에 서울대학교로  학교를 옮기면서 학과도 정치학과로 바꾸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경제를 공부해 한국은행 이사와 은행감독원 부원장까지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행운을 받고 살아가면서, 나중에는 제가 받은 것들을 사회에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경제 문제를 포함해 제 주변을 정리할 때가 왔다고 느껴서 아내와 함께 기부를 결정한 것입니다.

KAIST 알게 된 김병호 회장과의 만남
처음에는 모은 재산으로 육영사업이나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하려고 했습니다. 고향이 충청남도 천안인데, 고향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재단을 설립해야 하는 등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절차가 상당히 복잡해서 보류하며 고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김병호 회장이 KAIST에 거액의 재산을 기부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KAIST가 무엇의 약자인지 모를 정도로 관심이 없었는데, 무엇때문에 김 회장이 평생 모은 재산까지 기부했는지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김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앞으로 한국을 짊어질 분야는 과학기술이 아니겠는가. 과학기술이 발전해야 하는데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옳지 않나”라는 말이었습니다. 서남표 총장에 대한 칭찬도 많이 들었습니다. 서 총장이 취임한 뒤 개혁을 통해 KAIST의 대학 순위가 높아지고, 여러 성과를 이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언론까지 주목한다고 하더군요. 김 회장은 “서 총장같은 사람이라면 나의 뜻대로 자산을 쓸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서 총장 만나고 바로 기부 결정해
김 회장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KAIST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KAIST에 전화를 걸었더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교무처장이라는 분이 직접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우선 대전에 내려가서 학교를 한 번 보려고 했는데 당시 서울에 있었던 서 총장을 먼저 만나볼 것을 권유하더군요. 그렇게 서울에서 서 총장을 처음으로 만났는데 괜찮은 분이었습니다. 개혁을 통해  KAIST에 보다 나은 교육, 연구 환경을 만들겠다고 하는데 상당히 구체성 있는 계획이라 생각했습니다. 서 총장과의 만남 후 대전에 가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즉시 기부를 결정했습니다. 곧바로 KAIST 관계자에게 연락해 서울과 천안에 땅이 조금 있는데 돈으로 환산하면 100억 원 정도 될 것 같으니 최대한 빨리 명의이전 작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집안의 오랜 땅도 선뜻 기부
서울과 천안의 땅을 기부했는데, 이 중 고향 천안에 있는 땅은 우리 집안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땅입니다. 오래 전부터 대대로 물려받다가 마지막으로 제 사촌이 가지게 된 것이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촌이 그 땅을 싼 값에 팔겠다고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조상 때부터 가지고 있던 땅인데 남에게 넘기는 것이 안타까워서 같은 조건으로 제가 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사촌이 얼마나 처지가 어려우면 그런 땅을 팔겠나”라며 높은 값을 쳐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때 웃돈을 주며 사놓은 땅인데, 세월이 지나 근처에 큰 도로가 생기면서 값이 많이 올랐지 뭡니까. 지금은 꽤 쓸모가 있는 땅인 것 같아서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야 일이든 보람차게 쓰이길
저는 과학기술이나 관련 사업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꼭 필요한 곳에 알아서 써 달라고 했는데 어느날 학장이라는 분이 전화를 걸어서 녹색교통이라는 새로운 연구 분야의 대학원을 만들고자 한다고 하기에 이에 동의했습니다. 사실 어떤 분야의 일에 쓰이든, 그 분야에서 모범이 되는 사람을 배출하고 또 그만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성과를 내는 데 보람차게 쓰이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을 돕고 싶은 것이고, 그런 가운데 KAIST가 발전해서 세계적인 연구기관이 되고 또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기부는 사회 환원의 실현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들어 기부가 많이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긴 하지만, 여전히 외국에 비하면 많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많은 이들이 사회 환원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이 기부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재산을 축적하고 이로 인해 여러 문제가 생긴다면 그야말로 추태를 보이는 일이 될 것입니다. 본인의 재산을 사회에 돌려줘서 좋지 않은 일이 생길 소지도 없애고, 사회 발전에 도움도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특별히 무슨 계기가 있어서 기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돈을 가지고 있다면 좋은 곳에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야 합니다.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1인자가 되어라
요즘 사교육 문제가 심각한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도 부유한 집안 아이들은 가정교사를 붙여서 사교육을 했었는데, 요즘은 너나할 것 없이 사교육을 받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회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사교육을 받는다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KAIST 학생들도 자율적으로 노력하는 학생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목표를 높게 잡으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2인자나 3인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공부하면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1인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을 갖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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