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전문가 서형욱 해설위원 인터뷰

지난 6월,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많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2010 남아공 월드컵도 그 끝이 보이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우리나라 축구계의 행보가 어떻게 될 것인지 주목받고 있다. MBC 소속 서형욱 해설위원을 만나 축구계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우리나라가 사상 첫 원정 16강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까지 진출하면서 얻은 자신감과 경험이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2002년 전까지 한국 축구가 기술은 좋았지만 서양에 대한 패배주의도 있었고 자신감도 부족했다. 하지만 2002년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2002년 좋은 성적을 내면서 많은 선수가 해외 진출을 하고 각자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수들을 보면서 후배 선수들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박지성 선수의 경우, 히딩크 감독이 발굴하기 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지만 지금은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다. 이처럼 똑같은 환경에서 축구를 배우고, 비슷한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가 큰 무대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선수들뿐만 아니라 팬들에게도 자신감을 주면서 경기장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한국 축구의 판도는 어떻게 예상하십니까
지금과 크게 차이가 날 정도로 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월드컵에는 꾸준히 진출하면서 잘하면 16강에도 올라가고 운이 좋으면 8강까지도 기대할 수 있는 정도일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국내 리그의 사정도 좋지 않고, 외국과 비교했을 때 축구에 투자하는 비용도 적기 때문에 브라질, 독일, 스페인처럼 언제나 우승을 기대할 수 있는 최강팀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양궁처럼 외국에 프로 선수가 없고 비교적 층이 얇은 종목은 우리가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훈련으로 세계적인 수준을 유지할 수 있지만 해외 축구는 이미 층이 너무 두텁고, 기반이 잘 다져져 있다. 그렇다고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 사람들과 비교해서 운동을 하기에 신체적으로 유리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축구 선수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K리그의 인기가 높아지는 등 국내 축구 환경이 크게 변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 축구는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는 WBC와 올림픽의 영향을 받아 국민 스포츠로 발전했는데 K리그의 인기에도 변화가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월드컵과 프로축구는 다른 스포츠라고 생각해야 한다. 월드컵의 영향이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매번 그랬듯이 K리그의 인기에 큰 변화는 없을 것 이다. 게다가 K리그 출신 선수들의 큰 활약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K리그의 인기가 많아지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또한, 프로야구는 출범할 당시부터 축구보다 훨씬 인기가 많은 스포츠였다. 대부분의 사람이 프로야구팀의 개수는 알아도 K리그 축구팀의 개수는 모를 것이다.
또한, 관전 방식에서 야구와 축구는 많은 차이가 난다. 야구는 소풍 가듯이 음식을 싸가서 즐기면 되지만, 축구는 경기시간도 짧고 좀 더 몰입해서 봐야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는 K리그 응원 문화가 잘못 형성되어 서포터들이 텃새를 부리는 등 배타적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즐기기 힘든 면도 있다.

월드컵이 큰 즐거움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월드컵의 여러 문제점 중 가장 큰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역시 오심 판정 문제가 가장 심한 것 같다. 스포츠는 정해진 규정 안에서 공정하게 경쟁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축구의 규정에 따르면 공이 골라인을 넘어가면 골인데, 실제로는 그 여부에 상관없이 심판이 그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에 따라 판정이 달라진다. 기술적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인데 계속 내버려두고 있다. 반드시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비디오 판독을 도입하거나 심판 수를 좀 더 늘리는 등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이 있다. 현재로서는 경기규칙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심판이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상황이 종종 나오기 마련이다. 이번 월드컵 16강 독일과 잉글랜드의 경기에서 프랭크 램파드 선수가 찬 공은 골라인을 넘어갔기 때문에 골로 인정되어야 했는데 심판이 정확히 판단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에 골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를 최소화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월드컵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국가대표 선수들의 병역 면제에 관해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십니까
병역을 흔히 국방의 의무라고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병역을 당연히 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 안 하면 좋은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을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지만, 공식적으로 이러한 인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포상의 개념으로 병역 혜택을 준다는 것은 병역을 안 좋은 것이라고 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병역 특례에 대한 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만약 병역 문제에 있어 혜택을 주게 되면 이미 군대를 다녀온 선수나 면제를 받은 선수들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병역 특례가 필요하다면 사전에 원칙을 세워두었어야 한다. 국민 정서에 기대서 무리하게 밀어붙이던 것이 2006년까지는 통했지만, 이런 예외가 자꾸 발생하게 되면 다른 분야나 종목과의 형평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다른 종목은 1등 아니면 알아주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축구에 관해서는 유독 관대한 경향이 있다. 물론 16강 진출이 어려운 것이고 국민에게 감동도 줬지만, 엄밀히 따지면 단지 세계 16등 안에 들었을 뿐이다.

남아공 월드컵 SBS 독점중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결과적으로 SBS 입장에서는 그다지 손해를 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축구계 입장에서는 손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여러 채널에서 월드컵을 중계하게 되면, 경기뿐만 아니라 축구와 관련된 부가적인 프로그램도 방영하게 되고 축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그러한 프로그램을 보며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 결국에는 방송국끼리의 싸움이지만, 우리나라 축구계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3사가 공동중계를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모든 국민이 반드시 축구를 볼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일부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실수를 하거나 부진한 모습을 보인 선수들의 개인 홈페이지에 욕설을 하는 등 심하게 비난하는데 이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 월드컵을 통해 느낀 것이 우리나라 사람은 정말 축구를 안 본다는 것이다. 이번 대회 그리스전에서 화제가 되었던 ‘잔디남’의 경우, 축구를 보다 보면 흔히 발생하는 상황인데 축구를 안 보던 사람들은 신기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슈가 되었던 것이다. 선수들을 비난할 때도, 한 번만 실수를 하거나 골을 못 넣으면 심하게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일반인뿐만 아니라 언론도 마찬가지다. 월드컵 때는 축구 기사를 많이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기사를 쓰던 기자들도 축구 관련 기사를 쓴다. 그러하다 보니 이들도 전문가라기 보다 일반인의 처지에서 기사를 쓰기 때문에 여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근거 없는 비판이 심해지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에서 월드컵과 국내 리그 간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월드컵에는 관심이 많지만, 축구는 잘 보지 않기 때문에 비판의 논리가 맞지 않거나 너무 심하게 비난을 하는 경향이 있다. 김남일 선수의 실수도, 물론 아쉬운 장면이었지만 그 선수가 죽을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너무 과하게 비판을 하는 것 같다. 언론은 경기를 분석하는 차원에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결과만을 놓고 대중적인 분위기에 휩쓸려서 무차별적인 비난을 한다. 이러한 부분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쳐야 할 부분이며, 이 역시 우리나라 축구가 발전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