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는 나의 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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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드는 나의 종교다
  • 조민지 기자
  • 승인 2010.06.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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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을 빚어낸 신의 손 로댕

조각은 몰라도 생각하는 사람을 아는 사람은 많다. 조각의 거장 미켈란젤로에 비견되는 로댕의 대표작이다. 오는 8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천재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의 회고전을 소개한다. 여유로운 방학을 맞아 로댕의 예술세계에 취해보는 것은 어떨까

근대 조각의 선구자, 로댕을 조명하다
이번 전시는 파리 로댕미술관의 소장품 중 대중에 널리 알려진 대표작을 중심으로 청동, 대리석, 석고, 드로잉 등 180여 점에 달하는 로댕의 작품을 그대로 옮겨왔다. 1916년 로댕미술관 개관 이래 단 한 번도 외부에 반출된 적 없는 작품들로, 이번 전시를 위해 최초로 로댕미술관을 떠나왔다.
특히 이번 회고전은 조형 틀에서 생산되어 여러 에디션이 있는 청동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석고작품을 다량 엄선해 관람객이 로댕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작품은 총 9개의 전시실에서 연대기적 주제 구성에 따라 전시된다.

0. 신의 손

‘신의 손’은 이 대리석작품의 이름이자 작가의 또 다른 이름이다.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며 로댕 회고전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언뜻 대리석 덩어리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과 매끄러운 부분의 오묘한 질감 차로 완성된 걸작이다. 커다란 오른손이 아담과 이브를 담고 있는 모습이다.

1. 청동시대

“살아 있는 모델에 석고를 씌워 만든 것이 아닌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선보인 로댕의 초기작 청동시대를 놓고 빚어진 논란이다. 지나치리만큼 생생한 표현과 사실적인 묘사 덕분에 당시 평론가 사이에서는 청동시대를 두고 ‘모델의 몸에서 주물을 뜬 작품’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로댕은 모델의 사진과 모델에서 직접 뜬 석고상으로 결백을 주장했지만, 열띤 논란이 계속되어 한 차례 홍역을 치르게 된다. 일대의 스캔들 덕에 로댕은 조각가로서 처음 주목받게 된다.

2. 지옥문

전시실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강렬한 빨간색이 눈을 찌른다. 지옥문의 각 부분은 붉은 벽으로 된 전시실에서 그 위용을 자랑한다. 지옥문은 단테의 ‘신곡’을 바탕으로 인간의 모든 정념, 쾌락, 고통을 분출하는 군상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서로 뒤엉킨 모습을 표현한다. 흔히 로댕 예술의 집합체라 일컬어지는 이 작품은 인물상 하나하나가 개별 작품으로서 가치를 가진다. 아담과 이브, 추락하는 사람 등 각 부분의 인물상이 개별 작품으로 있으며, 로댕은 후에 지옥문의 인물상을 발전시켜 독립 작품으로 만들기도 했다. 생각하는 사람도 그 중 하나다.
생각하는 사람은 본래 지옥문에서 지옥세계를 관찰하는 단테를 표현한 작품이다. 이는 단순히 사색하는 자가 아닌, 비록 육체는 지옥에서 몸부림칠지언정 영혼만은 자유로워 고통을 초월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전시되는 작품은 로댕이 생전에 직접 빚어낸 대형 채색석고작품으로, 대중에게 익숙한 청동작품과 달리 색다른 감상의 기회를 제공한다.

3. 깔레의 시민

14세기, 영국 군대가 깔레 시를 포위했다. 11개월에 걸친 저항 끝에 시민들이 학살될 위기에 처하자, 깔레 시는 영국 왕에 사자를 보내 항복을 전하며 시민들을 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왕은 그 대가로 시 대표자 여섯 명의 목숨을 요구했다. 그러자 깔레 시의 시장과 최고 부자를 포함한 귀족들이 망설이지 않고 나섰다. 그들은 항복의 표시로 교수형에 쓸 밧줄을 목에 매단 채 맨발로 걸었다. 마지막 처형의 순간, 왕의 관용으로 여섯 시민은 목숨을 건진다.
깔레 시는 이 사건을 기념하고자 로댕에게 동상 제작을 의뢰했다. 인물의 영웅적인 면모를 강조하던 기존의 기념 동상과 달리, 로댕은 여섯 영웅의 동상에 죽음을 앞둔 인간이 느끼는 절망, 회한, 고통 등의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얼굴의 주름과 표정, 머리를 감싸거나 아래로 늘어뜨린 손의 표현은 이러한 로댕의 의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4. 사랑으로 빚은 조각

전시실의 차분한 인디언 핑크빛 배경이 여성적 에로티시즘을 추구한 로댕의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인간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던 로댕에게 인간의 육체를 해방하는 황홀감은 죽음과 더불어 더없이 좋은 소재였다. 입맞춤은 에로스의 표현에 욕망과 순결을 더한 작품이다. 작품의 인물들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파울로와 프란체스카로, 사랑을 나누다 프란체스카의 남편이자 파울로의 형인 조반니에게 살해된다. 이 선정적이고 도발적인 작품은 로댕이 제자 까미유 클로델과 사랑에 빠지면서 등장한 에로스라는 주제의 대표작이다.
이외에도 안드로메다, 영원한 우상, 나는 아름답다 등의 여러 조각작품과 함께 수십 장의 여성 모델 누드 크로키가 전시되어 있다.

5. 로댕의 작업실

전시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생전 로댕의 사진과 작업실 전경이 눈에 띈다. 로댕은 형태의 핵심에 도달하고자 작품의 불필요한 부분을 해체하고 제거했다. 가장 효율적인 형태를 찾는 과정에서 해체된 일부분들은 서로 조합되어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여러 아상블라주(assemblage, 여러 물체를 모아 제작한 작품)가 이번 전시실의 핵심이다.
굴곡진 윤곽으로 시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를 표현한 ‘팔 없는 <명상>’은 기념상에 삽입하기 위해 두 팔과 다리 일부가 잘린 상태다. 이 때문에 대중에게 미완성 작품이라는 오해를 사지만,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면에서 제 몸을 감싸려는 이 육체에는 팔이 속하지 않는다”라는 릴케의 해석과 함께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6. 춤, 생동하는 인체

활기찬 춤은 로댕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유명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 역시 자유로운 춤으로 로댕의 모델이 되곤 했다. 로댕은 캄보디아 무용수의 움직임을 모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단숨에 그려내는 크로키로 포착했다. 춤을 추면서 변화하는 무용수의 움직임, 표정, 분위기를 모두 살펴 모델을 있는 그대로 작품에 담아냈다.
이 전시실의 유명작 신들의 전령 아이리스는 역동적인 춤 동작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다리를 찢는 동작을 떠올리게 하는 이 자세는 선정적인 동시에 여성성을 발산한다.

7. 까미유 클로델

까미유 클로델은 19세의 어린 나이에 43세 로댕의 제자가 되었다. 로댕은 까미유의 천부적인 재능과 발랄한 착상, 아름다운 미모와 뛰어난 지성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까미유와 불 같은 사랑을 나누면서 로댕의 작품에서 여자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사색, 오로라 등 여러 작품에 까미유의 얼굴과 육체가 나타나며, 입맞춤을 비롯한 에로스라는 주제 역시 까미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이상적인 여인과 사랑에 빠진 로댕에게 있어 까미유는 연인이자 동료였고, 창작의 원천이었다.
회복은 까미유의 강박증과 피해망상으로 둘의 관계가 끝난 뒤에 까미유 클로델의 얼굴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리석작품이다. 그녀의 얼굴은 로댕의 뇌리에 끊임없이 맴돌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작품이었기에 거의 전시되지 않았다는 회복은 까미유가 평생에 걸쳐 로댕의 작품 세계에 미친 영향을 반증한다.
로댕에게 미친 영향과는 별개로, 까미유 클로델은 로댕도 인정한 독창적인 재능을 가진 조각가였다. 풍부한 신체와 얼굴 표현은 까미유 작품의 핵심이다. 로댕과 영감을 주고받으며 그녀의 작품 세계는 날로 풍성해져 갔다. 그러나 까미유는 로댕의 평생 반려자인 로즈 뵈레라는 여인의 존재와 그의 여성 편력, 그리고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로댕의 제자’라는 꼬리표에 시달리며 괴로워했다. 결국 로댕과 이별하는 그녀는 로댕 때문에 자신의 창조적 재능이 고갈되었다고 믿기 시작했고, 점차 착란 증세를 보이며 자신의 작품을 전부 부수기에 이르렀다. 뛰어난 여류 조각가였던 까미유 클로델은 정신병원에 수용된 뒤 보호소에서 숨을 거둔다.

8. 로댕, 알마관 개인전

로댕은 1900년 국제박람회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참신한 방법으로 작품을 배치하고, 자신이 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해 그의 작품과 더불어 자신의 미학을 한껏 드러냈다. 이 개인전으로 로댕의 명성은 국제적으로도 높아졌다.
전시실은 당시 알마관에 전시된 작품 중 일부를 그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진열해두었다. 기둥 위의 <걷는 사람>은 토르소와 두 다리의 습작을 결합한 결과물을 모든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2m가 넘는 기둥 위에 얹은 작품이다. 로댕은 신체의 일정 부분을 강조함으로써 완전한 형태가 아니더라도 걷는 움직임을 온전히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9. 공공기념물 - 발자크와 빅토리 위고

로댕의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공공기념상 의뢰가 줄을 이었다. 소설가 발자크의 기념상은 로댕 자신이 ‘필생의 역작’이라 칭한 작품이다. 의뢰 마감 기한이 지나도록 작품의 마무리를 이유로 발자크 상에 매달렸지만, 정작 완성된 석고상은 문인협회에서 거부당한다. 수많은 습작을 만들며 발자크를 완성한 로댕은 이를 두고 “우리가 여전히 논하고 있고 또한 앞으로도 논쟁을 이어갈 교훈과 명제에 대해 해답을 제시해주고 있다”라며 만족을 표했다.
이 전시실에는 빅토르 위고 상도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주로 야외에 설치되던 공공기념물의 특성상 전시실 내벽은 녹색으로 꾸며졌다.

로댕 이전의 조각은 단순히 기념상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로댕은 인간의 육체와 본질에 대한 치열한 표현으로 ‘현대의 미켈란젤로’라는 별칭을 얻었고, 작품에 창작자의 주관을 투영해 조각을 순수 창작 예술의 반열로 끌어올렸다. 이번 전시회에서 차가운 조각에 인간의 고뇌와 정열을 담은 ‘신의 손’ 로댕의 진수를 엿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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