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전의 포화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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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의 포화 속으로
  • 박진현 기자
  • 승인 2010.06.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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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60주년 기념특별전 ‘아! 6·25’를 다녀오다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 놓아 버린다” 6ㆍ25 전쟁 당시 종군을 했던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 8 - 적군 묘지 앞에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화자가 애도하던 그 무덤도 벌써 60년의 나이를 먹었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60년,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는 특별전이 서울 도심 한복판 용산의 전쟁기념관에서 열렸다. 피비린내나던 60년 전의 포화 속 이야기를 들어보자

6ㆍ25 전쟁 가슴 아픈 60년 사를 보다
주말이라 그런지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으로 나온 가족들이 많이 보였다. 아이들의 아장걸음을 따라 특별전 관람을 시작했다.
특별전은 크게 4가지 주제로 전시되어 있다. ▲ 6ㆍ25 전쟁 - 전쟁 발발부터 휴전협정에 이르는 기간의 전쟁사 ▲ 한강의 기적 - 한국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 과정 ▲ 오늘의 북한 - 북한의 생활상 ▲ Inside the DMZ - 조선일보 취재진이 찍은 DMZ (demilitarized zone) 내부의 사진과 영상 등의 주제다.
6ㆍ25 전쟁 전시장은 시간 순서대로 사진과 관련 설명을 배치해 놓았으며, 한강의 기적 전시장은 포스터를 통해 전체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오늘의 북한 전시장은 실제 북한의 사회 모습을 재현한 모형을 전시해 놓았으며, Inside the DMZ 전시는 사진전으로 구성되었다.
60년 전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을 따라가 보았다.

Zone 1 : 누가 일으킨 전쟁인가
입구에 들어서자 국내 기술로 개발된 K2 전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차의 포구는 한 문구를 겨누고 있었다. ‘누가 일으킨 전쟁인가’ 그 문구를 따라가니 익숙한 세 명의 얼굴이 보였다. 중국의 주석 모택동, 소비에트 연방(이하 소련)의 수상 스탈린, 그리고 북한의 국방위원장 김일성이었다. 미국의 전쟁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던 남한의 ‘북침설’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를 반박이라도 하듯 전시장에는 남한 침략에 대한 소련의 일급 기밀문서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북한군 군사배치도와 소련의 외교문서에서 발췌한 구문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전쟁의 서막, 그리고 상처
전쟁 초기의 사진들은 전투의 상황이 불리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6ㆍ25 전쟁의 판국을 뒤바꿔 놓은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8개국 함정 261척으로 구성된 연합함대와 지상군 75,000여 명의 병력이 동원된 대규모 작전’,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때 진행되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최대 규모의 병력’ 이 두 수식어구만으로도 중요한 전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9월 28일 서울의 중앙청에 태극기가 다시 오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옆으로 눈을 돌리니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의 사진이 보였다. 학살된 시신이 9천5백여 구에 이르렀으며, 서울의 가옥 1만8천여 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상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긴 원한과 미움이었을 것이다. 사진으로 본 당시의 서울은 참혹했다.

통일을 눈앞에서 놓치고
‘국군 38선 통과’, ‘평양 탈환’이라는 말과 함께 북진하는 국군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통일이 되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통일의 희망은 ‘중공군의 개입’이란 문구와 함께 사라졌다. ‘사람 떼’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숫자의 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수류탄과 소총만으로 무장하고 개미떼처럼 몰려오는 중공군의 인해전술이었다. 그 사진 옆으로 중공군이 파놓은 땅굴의 모습이 보였다. 중공군은 낮에는 유엔군의 공습을 피하고자 엄청난 규모의 땅굴을 파고 낮에 숨어서 생활하다가 밤에 기습적인 진격을 했다. 땅굴의 총 길이는 경부고속도로의 약 3배 정도에 달했다고 한다.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위해 땅까지 파며 치고받고 싸워야 했는지 생각하며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밀고 밀리는 공방전이 계속되다
엄동설한의 피난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모습을 담은 아이들의 사진이 보였다. 미 8군이 포기한 서울을 떠나 1ㆍ4 후퇴를 하는 피난길의 아이들이었다. 이들이 지금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생각하니 가슴 한구석이 미어졌다. 조금 더 걸어가니 휴전회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고지쟁탈전을 하는 국군 병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전쟁은 38선 부근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치열한 고지쟁탈전을 보여주는 사진들은 피비린내나는 전쟁터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지독했던 전쟁, 잠시 멈추다
조금 더 걸어가니 휴전협정을 하고 있는 사진이 있었다. 개성에서 처음 시작된 휴전회담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 까지 만 2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이렇게 휴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남과 북의 첨예하고 지독했던 3년간의 전쟁은 월드컵이 열리는 지금 이 순간까지 소강상태로 지속되고 있다.

Zone 2 : 한강의 기적
흑백사진으로만 가득했던 전시실이 점차 색조를 띠기 시작했다. 제2전시실은 전쟁 후의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료를 원조받던 나라.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는 나라. 꽁보리밥을 먹으며 포장지 한 조각조차 버리지 않는 그런 우리나라의 60년대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70년대 새마을 운동,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희망 하나로 이뤄낸 경제성장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이뤄낸 한강의 기적. 88 서울올림픽 개최, 2002 한일월드컵 개최, 얼마 후 열릴 G20 정상회의를 기념하는 사진들이 우뚝 서 있었다. 잊고 있던 전후 60년 동안의 성공 신화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분단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족 간의 화해를 통한 평화 통일을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세대가 기필코 이끌어내야 할 또 다른 한강의 기적이라 생각하며 다음 전시실로 향했다.

Zone 3 : 오늘의 북한
제3전시실에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수용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용소는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들어갈 정도의 너비로, 수용자는 그곳에서 온종일 서있어야 한다. 탈북하거나 간첩행위를 했던 정치범들을 수용했다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북한 사회의 암담한 사진들이 있었다.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밀거래를 하는 ‘장마당’과 ‘꽃제비’라고 불리는 집 없는 청년들이 역전이나 다리 밑에서 노숙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른 체제 하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들려왔다.
                       
Zone 4 : Inside the DMZ
이번 특별전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전시장이다. 시간을 붙잡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난 57년간 갇힌 DMZ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사진들을 보았을 때, 비무장 지대의 의미와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최첨단 무기를 겨누고 있는 음산한 곳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곧 이곳도 사람 사는 곳과 어느 하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단의 현장, 이 침묵의 장소도 세상 여느 장소와 같이 인간과 동식물이 살고 있고, 산과 강이 존재하며 하루 24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물론 오랜 전쟁의 기운은 이 모든 것들에 특별한 양면적 특성을 부여하고 있었다. DMZ의 때 묻지 않은 풍경을 내손으로 직접 찍는 날이 오길 바라며 전시장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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