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 기술 생산은 소비주의 가속시킬 것,
일차 생산자로서 실용의 정의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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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 기술 생산은 소비주의 가속시킬 것,
일차 생산자로서 실용의 정의 고민해야
  • 박성윤 기자
  • 승인 2010.05.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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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계인은 존재할 것, 그러나 그들과의 접촉은 삼가야” 심각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한 와중에도 스티븐 호킹의 말을 인용한 기사가 지난주 높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예나 지금이나 외계 생명체의 존재 여부는 사람들의 큰 관심사다. 이에 관해 1940년대에 엔리코 페르미에 의해 제시된 역설은 아직도 우리를 고민케 한다. 당시 페르미는 계산을 통해 우주에는 100만 개 이상의 문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는데, 이 결과에 대해 "우주에 이처럼 많은 문명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왜 한 번도 그들과 만나지 못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해 사람들을 당혹게 했다. 페르미의 가정을 전면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외계의 고등문명은 핵무기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평화주의자들의 주장까지 지금껏 페르미의 역설을 설명하려는 수많은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해답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아있다. 이 중 흥미로운 가설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는 2006년, ‘질주하는 소비주의, 페르미의 역설을 설명한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통해 페르미의 역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는 인류의 역사를 예로 들어 외계의 문명 발전이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면, 그들은 이미 소비주의와 가상현실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외부에 대한 관심을 끊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외계 문명의 내부로의 도태는 결국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그는 소비주의의 위험을 경고하며 실용주의로의 회복을 주장한다. 인류는 이미 현실 경제로부터 가상 경제로, 물리학에서 심리학으로 옮아갔으며 적응을 위장한 나르시시즘에 빠져들고 있다. 인간은 시간과 자원 대부분을 자신들을 위해 분배하기보다 쾌락을 위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한다면 인간은 그들의 삶 속에서 자멸하게 될 것이다.

 사실, 밀러의 주장은 극단적인 면이 있다. 그가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의도 모호하다. 그는 소비주의의 상징인 컴퓨터 게임의 반례로 로켓 공학을 언급했는데, 따지고 보면 로켓 공학 역시 자원 재분배를 통한 인류 구원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우리는 과학도로서 그의 주장을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인간의 소비주의를 이끄는 여러 물건의 일차 생산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편리, 편의, 첨단, 신기술 따위의 단어를 숭배하며 맹목적으로 기술을 생산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범죄다.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질주하는 이 소비의 시대에서 실용의 정의가 무엇인지, 진정한 가치는 어디 있는지 생각해야만 한다. IT산업이 과연 일자리를 창출하는지, 아이폰이 값비싼 장난감 이상의 기능을 하고 있는지, 엄청난 예산을 들이는 바이오 기술의 대상은 결국 선택받은 소수가 아닌지. 이는 더는 정책 결정자들만의 고민이 되어선 안 된다.

 이는 결코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가치판단은 언제나 갈등을 가져온다. 가장 먼저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실용이라는 말의 대상이 누가 되느냐이다. 상위 10%의 선진국민이 아닌 생존문제에 당면한 대부분의 실재하는 인간 삶에서 순수과학을 탐구하는 지적 유희와 다양한 엔터테인먼트 상품과 관련한 소모적 유희는 비슷한 수준의 하위 가치다. 그렇다고 이런 유희적 가치를 모두 배제하고 생존 문제에 직접 관련한 적정기술 또는 에너지문제만 파고드는 것은 인간만의 문화를 쇠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비록 상위 생활권의 인간에게 국한될지라도 생존과는 관련 없지만,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 기술도 존재해왔다.

 위의 문제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결책은 아마 적정선까지 생존문제를 우선으로 하고 남은 자원을 나머지 가치에 재분배하는 방법일 것이다. 지적 유희, 문화적 유희, 소모적 유희 등 인간 삶의 이면을 풍요하게 하는 나머지 가치 간의 순위를 정하는 것은 개개인의 신념에 따라 다르다. 이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가치의 순위를 설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신념에 따라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를 판단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 많은 소비품을 요구하는 대중의 물결에서도, 이런 대중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자본으로부터도, 그 자본에 맞추어 정책을 수립하는 일부 정책결정자들로부터도 자유로워져 최초 생산자로서 인간 삶의 패턴을 그리는데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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