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과,과학기술정책대학원프로그램 조교수 김소영

혁신, 기발, 신제품, 개혁 등 새로움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단순하고 반복되는 것은 왠지 지루하고 고루하다. 여러 나라에 살아본 적이 있는 선배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달리 처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었는데 정말 우리말의 쓰임새를 보면 첫 경험, 첫눈, 첫사랑, 첫날밤, 첫 금메달 등 “처음”이 왜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새것이 늘 우월한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의 하루는 무수한 반복의 연속이다. 하루를 시작하면 똑같은 사람(배우자, 자녀, 학생, 교수, 친구 등)을 만나고, 얼추 비슷한 시간에 대체로 같은 곳에서 밥을 먹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늘 하는 종목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것이 궁극적으로 위대함을 만든다고 믿는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반복은 우리에게 집중의 능력을 길러준다. 20세기 전설적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누구나 잠재적으로 다 예술가이지만 진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감수성 말고도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으로서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는 타고난 예술가지만 진짜로 예술가가 되는 경우는 창의력이나 상상력만 풍부한 애들이 아니라 거기에 집중력이 덧붙여진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 흥미나 관심을 두기는 쉽지만, 그것을 지속하기는 어렵고 무엇보다 그 흥미가 왜 지속 되어야 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찾기란 더 어렵다.

그리고 반복은 ‘성공’의 전제다. 이 짧은 문장은 그야말로 진부한 말인데 그게 그렇지 않음을 최근에 깨달았다. 어떤 스님의 책을 읽다 발견한 것인데 성공과 실패의 차이는 어떤 일을 계속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볼 것이다. 그러다 성공하면 더는 그 일을 안 해도 된다는 것이고, 실패하면 아직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으니까 계속 그 일을 하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실패했다는 것은 앞으로 그 문제를 더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풀어볼 기회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실 성공이든 실패이든 반복이 전제되어 있다.

며칠 전 어떤 신문의 칼럼을 읽다가 김연아 선수의 장래에 대해 재미있는 해석을 하나 보았다. 많은 걸 성취한 김연아 선수가 대학으로 돌아갔을 때 정말 힘든 것은 운동만 하다 낯선 공부를 하면서 높은 학점을 따는 것이 아니라 (김연아 선수는 이미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고 성취를 이루었기 때문에 시험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하는 것 정도는 그에 비하면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대학 생활의 ‘지루하고 시들한 것’의 진수를 깨달을 만큼 평범히 사는 일이다. 그러다 보면 당장 돈도 명예도 업적도 될 수 없는 것들에 ‘턱없이 진지하게 매달려 있는’ 사람들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평범한 일상의 속성은 언뜻 까닭 없이 무수히 이어지는 반복일 터이다.

반복이 위대함을 이루는 또 하나의 이유는 ‘단순함’에 있다. 음악을 자주 듣지는 않지만 훌륭한 음악일수록 주제선율이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이 변주에 변주를 거듭해서 커다란 음들을 이루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는 시작한 선율로 다시 돌아가고, 음악을 다 듣고 난 후에는 명징하게 몇몇 선율만이 남아있다. 좋은 영화도 좋은 소설도 왠지 그렇다. 어쩌면 진리나 아름다움은 궁극적으로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주변에 폐해를 끼칠 걸 각오하고 4월 말에 핸드폰 약정 기간이 끝나면 핸드폰을 끊기로 했다. 나중에 스마트폰을 살 수도 있겠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엉클어진 것 같은 나의 생활을 단순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났다. 그리하여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주변을 돌보고 더 많이 운동하고 더 많이 건강해지는 단순한 삶을 살고 싶다. 거기에 생활이 단순해짐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일을 벌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이겠다.

늘 달리는 북대전 IC 길에 요즘 목련이 피기 시작했다. 매번 뛰는 길이지만 참으로 이상하게 운동화 끈을 가다듬고 첫발을 디딜 때마다 늘 두근거린다. 그런데 이건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는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오래된 애인 같은 길인데, 말 그대로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연초에 어깨 근육이 결려 의사에게 갔더니 무리하게 팔을 올리거나 늘이는 동작을 하지 말라고 해서 수영을 잠시 쉬기로 했다. 대신 수영장이 내려다보이는 체력단련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수영하는 걸 지켜보았는데 이제 막 수영을 배우는 학생이 보였다. 킥보드를 잡고 물 위아래도 머리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숨쉬기를 연습하는 그를 보다가 가슴 깊이 존경심이 솟아났다. 앞으로 얼마나 더 저 동작을 반복해야 폼 나게 수영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 대단히 지겨울 수도 있는 반복의 첫 걸음을 디뎠고, 또 한 번 반복할 때마다 조금이라도 더 잘 해보려고 애쓰는 그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시절과 국면을 거쳐 나비처럼 수영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간만에 자찬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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