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한 달여 만에 집에 다녀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기숙사 생활을 해왔기 때문인지 늘 집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특별한 이벤트가 없어도 내 침대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으면 마치 구름 속에 들어 있는 듯 포근함과 편안함을 가슴 가득 느낄 수 있어 집이 너무 좋다.

집에 가는 날이면 엄마는 말이 많아지고 이것저것 질문을 해오기 시작한다. 밥은 잘 먹는지, 기숙사 청소는 잘하는지, 빨래는 밀리지 않고 하는지 등등 내가 생각하기에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일들, 알아서 잘하고 있는 사항들을 매우 궁금해한다. 여기서 자칫 엄마의 페이스에 말려들기라도 한다면 모처럼 편안한 상태에서 휴식을 취하려 집에 갔지만 목적 달성을 못 하고 주절주절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되므로, 가급적 초반에 살짝 인상을 쓰며 피곤함을 어필하곤 한다.

물론 속으로는 약간 미안한 감정이 있지만, 엄마의 성격 특성상 한 가지를 얘기하면 그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미연에 방지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럴 때면 항상 아쉽다는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휴,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유튜브를 보던가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곤 했다. 기숙사에서는 가져보지 못하는 안락함을 만끽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지난주 보았던 엄마의 뒷모습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그 당당하던 우리 엄마의 뒷모습이 아니었다. 어좁이던 엄마의 어깨가 유난히 더 좁아 보였다. 대답을 하지 않아도 속사포처럼 질문을 하고 대꾸를 하지 않아도 방언이 터진 것처럼 시시콜콜 집안 근황과 더불어 새롭다고 느꼈던 여러 사건들을 설명하던 그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말수도 줄어들고 잔소리도 줄어들어 보였다.

순간 내가 어릴때의 젊은 엄마가 아니라 어느새 중년 여성이 된 엄마의 모습이 보였던 것이다. 난 왜 그동안 나만 생각하고 내가 한살 한살 나이를 더해가는 것만 생각했을까. 다른 엄마들처럼 나의 엄마가 늙어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고 늘 투정 부리고 나를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해주지 못한다고만 생각했던 것일까.

며칠 전 어버이날도 엄마가 먼저 카톡을 보냈음에도 바빠서 잊었다는 답장만 보냈었다. 전화도 안하고. 1분의 시간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바빴을까?

2박 3일의 짧은 시간을 보내고 내려오던 날, 기차가 출발을 할 때까지 플랫폼을 벗어나지 못한 채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대는 엄마의 얼굴을 보며 난생처음 눈물이 나려 했다. 입가의 팔자주름, 눈 밑의 지방 처짐, 눈가 주름…….

이제부터 집에 가게 되면 엄마의 궁금증을 모두 해소할 만큼 많은 질문을 받을 것이며, 피곤하다는 핑계로 누워있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내리라 다짐해본다. 아니 내가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버릴 것이다. 지나치리만큼 다정다감해져 버린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런데 언제 서울을 갈 수 있으려나…….

기숙사 창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 위로 몽실몽실 구름이 흐르고 있지만 내 방에서 보았던 그 하늘 속의 구름과 느낌이 다른 이유를 이제서야 깨달았다.

나의 엄마가 곁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