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파도 속에서 꽃피워낸 우리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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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파도 속에서 꽃피워낸 우리의 아름다움
  • 류제승 기자
  • 승인 2019.05.2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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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화미술회합작도, 안중식 등 10인, 1917년

 19세기 말, 새로운 100년의 시작을 앞두고 조선은 격동하고 있었다. 1876년 개항 이후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쏟아져 들어왔고, 1897년에는 낡은 이름을 지우고 대한 제국이 세워졌다. 제국주의의 파도가 한반도로 밀려오며 검은 속내를 드러내던 시기이기도 하다. 전통과 변화, 이념과 야욕이 뒤섞이던 시기, 조선의 서화가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붓을 들었다. 그 변화와 재창조를 이끌며 수많은 후학을 남긴 심전 안중식의 서거 100주기를 맞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대 한국 서화의 흐름을 조명하는 <근대서화, 봄 새벽을 깨우다>가 열렸다.

 

변화하는 시대의 지식인들

 쇄국주의 정책이 폐기되면서 서양의 사상과 기술이 조선으로 유입되었다. 일본, 미국 등지로 향했던 지식인들은 서양 문물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조선으로 돌아와 사회 각 분야에 변화의 물결을 퍼뜨렸다. 대표적인 사회 개혁 운동인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박영효 등은 그들의 정체성과 사상이 담긴 서화를 남겼다. 자신을 조선 유객이라 칭하며 김옥균 등과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지운영은 은둔 생활을 하며 그의 생각을 담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영선사로 청에 파견되었던 안중식과 조석진은 중국과 일본의 미학을 접하며 그만의 화풍을 만들어낸다. 안중식은 전통적인 소재를 그만의 섬세한 표현으로 그려내며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화조도>와 같은 안중식의 초기 작품에서는 그의 스승으로 알려진 장승업과의 교류, 중국 화풍의 영향 등이 드러난다. 1902년, 안중식은 조석진과 함께 고종 즉위 40년을 기념한 어진 제작에 참여한 이후 20세기 초까지 화단을 이끄는 중심이 된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인쇄 매체의 도래는 서화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주었다. 당시 서화가들은 신문, 잡지 등에 그림을 싣는 것을 미술의 새로운 형태로 인식하였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지식과 사상을 전파하고자 했다. 1906년 만세보를 창간한 오세창은 신문의 역할과 교육, 계몽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안중식을 포함한 많은 지식인이 이에 동참한다. 안중식과 그의 제자, 고희동과 이도영 등은 신문에 만평을 싣거나 계몽 잡지의 표지를 그리며 계몽운동과 매체의 변화를 주도한다.

 계몽과 개혁을 꿈꿨던 서화가들의 활동은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시련을 맞이한다. 그들에게 서화는 민족의 정체성을 담은 정수이자 굳은 저항 의지를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이전까지 계몽운동의 중심에 섰던 오세창은 이후 민족대표 33인으로 다시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 은거하며 조선의 서화사를 집대성하는데 몰두한다. 상해 임시정부에도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김진우의 <묵죽도>에서는 독립을 향한 그의 열망과 날 선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하다. 많은 서화가가 저항의 수단으로 붓을 택했고, 나라를 잃은 슬픔과 민족의식을 작품 속에 담아냈다.

 

시련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무단통치가 시작되었다. 누군가는 무너진 하늘을 등지고 은거를, 또 다른 누군가는 저항을 택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 근대서화 화단은 활기를 잃지 않고 오히려 크게 번성한다. 서화를 통해 민족의 얼과 전통을 보존하려는 서화가들이 모여 단체를 이루었고,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세대교체가 활발하게 이뤄졌다. 여러 갈래로 분산되어있던 서화 단체들은 1918년 서화협회의 결성으로 이어진다. 서화가들은 단체활동을 통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한국 근대 서화의 발전을 이뤄낸다. 서화 단체들은 강습소를 운영하고 합작도, 서화첩 등을 만들어내면서 서화의 대중화, 근대화를 이끈다.

 20세기 초까지 화단의 중심에 있던 안중식은 서화미술회와 서화협회를 이끌며 작품 활동과 후학양성에 힘쓴다. 안중식을 포함해 10명의 스승과 제자가 함께 제작한 <서화미술회합작도>를 통해 근대 서화의 세대교체 과정과 안중식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섬세한 화풍은 서화미술회와 서화협회에서 재능 있는 신예들에게 전달되었다. 안중식 사후까지 화단을 주도한 그 제자들은 스승의 화법을 전승하면서 서양의 사실주의적인 표현을 받아들여 근대 서화의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낸다.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근대적 시선으로 재창조한 당시의 작품들은 이후 새로운 세대가 이끌 미학적 혁신의 밑바탕이 된다.

 

 글과 그림에는 작가의 영혼이 담겨 있다. 혼란의 시대를 살아갔던 지식인, 서화가들에게 작품은 세상을 향한 외침이자 전통과 미학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였다. 그들의 삶과 사상이 곧은 필체와 수려한 선으로 작품에 녹아 들어가 있다. 옛것을 지키면서도 변화하는 세상에 발맞추려 했던 서화가들의 영혼은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었고, 그들의 발자취는 지금까지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간 | 2019.04.16. ~ 2019.06.02.

요금 | 6,000원

시간 | 10:00 ~ 18:00

문의 | 1688-0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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