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로운 하루에 지쳐 모험을 찾아 떠나는 양 뒤로 사람들 틈에 섞여 물놀이를 하는 분홍 코끼리가 보인다. 다른 한편에서는 멀리 떨어져 사는 두 주인을 모두 사랑하는 개가 그들의 집을 왕복하며 계절을 보낸다. 엉뚱한 상상이기도, 우리의 일상이기도 한 모습들이 그림책 안에 담겨있다.

 그림책의 주인공은 이야기만이 아니다. 1658년 얀 아모스 코멘스키가 최초의 그림책 <그림으로 나타낸 세계>를 내놓은 이래 그림책은 다양한 내용과 형식으로 발전해 왔다. 그중 그림이 그림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 오늘날 그림책은 그림이 글과 어우러지거나 그림 단독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책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림책NOW>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이하 안데르센 상), 나미 콩쿠르, 브라티슬라바 일러스트레이션 비엔날레(이하 BIB) 등 그림책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을 모았다. 특히 2018 안데르센 상 수상자인 이고르 올레니코프의 원화 30여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되며, 98개국의 1,844개 작품이 참여한 2019 나미 콩쿠르의 수상작을 처음으로 선보인다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3차원으로 재해석된 상상의 세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이고르 올레니코프가 에드워드 리어의 시를 삽화로 그려낸 <점블리>이다. 주인공이 배를 만들어 모험을 떠나는 장면을 3차원 조형물로 재해석하여 관객들에게 마치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체험을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구아슈 물감을 주로 사용하여 질감이 생생하고 선명하다. <아무나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건 아니야>, <달려라! 마오마오> 등에서도 드러나는 개성 강한 캐릭터와 역동적인 구성이 특징이다.

 생동감 넘치는 모험을 끝내고 나면 어느새 다가온 음산함이 관객을 압도한다. 2019 나미 콩쿠르 수상자인 안드레 레트리아의 <전쟁>은 호세 레트리아의 시가 원작으로,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슬며시 다가오는 전쟁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쟁은 숙주를 찾아다니듯 소리없이 돌아다니다 장교의 마음 속에 깃들어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한다. 구상 단계에서의 스토리보드, 작품 구상 영상이 함께 전시되어 각 그림에 담긴 이야기의 이해를 돕는다.

 공간 디자인, 미디어 아트와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전시 공간을 채운 작품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시골길을 걷던 한 소녀가 그늘에 누워 여름 하늘을 바라본다. 소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천천히 움직인다. <게으를 때 보이는 세상>을 그린 우르슐라 팔루신스카와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 36.7LAB의 협업으로 소녀의 시선이 영상으로 표현되었다. 관객들은 전시장 가운데의 정자에 누워 천장을 가득 메운 여름 풍경을 만끽한다. 정자에서 몸을 일으키면 창문 너머 정체 모를 생명체가 눈에 띈다. 데일 블랭키나르의 <카피캣> 속 집을 재현한 공간이다. <카피캣>은 소년과 외계인의 만남을 그린 작품으로, 외계인의 눈으로 본 지구를 표현하여 사람과 동물이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졌다는 점이 인상 깊다.


새로운 시도: 페이지를 넘기다

 실험적인 작품들도 다수 소개되었다. 아가트 드무아와 뱅상 고도의 <도시 속 숨바꼭질>은 건물을 빨간 선으로, 지하철의 내부 풍경을 파란 선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빨간 셀로판지를 붙인 돋보기로 숨겨진 그림을 찾도록 했다. 가토 히로유키의 <미스터리 기차>는 악령, 용 등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일본 교토 북부를 운행하는 열차의 자취를 그려낸 작품이다. 락카 스프레이, 투명 기름종이 등 일반적인 그림책과 다른 재료를 사용하여 밤길을 달리는 기차와 주변 풍경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로마나 로마니신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를 그려낸 동명의 작품은 반전 포스터 및 그래픽 아트에 영향을 받은 프로젝트로, 우산이 폭탄이 되고 결혼식 꽃다발 리본은 다친 군인을 위한 붕대가 되는 등 일상의 도구와 전쟁의 도구를 대조하여 전쟁의 폭력성을 강조했다.

 2017 나미 콩쿠르 및 BIB 수상자인 김지민 작가의 <하이드와 나>도 전시되었다. <하이드와 나>는 자신 안의 또 다른 자아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책은 아코디언처럼 펼쳐져, 책을 세워 두고 페이지 사이 공간을 늘리거나 줄이며 변화하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그림으로부터 예측할 수 없이 변화하는 내면의 모습이 연상된다. 페이지에 난 구멍에 눈을 가져다 대면 다른 페이지의 내가 나를 관찰하고 있다. 작가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내면의 모습을 미로로 구성하고, 내 안에 있음에도 낯설고 기이한 공간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시는 누구나 자신만의 그림책을 탄생시킬 수 있음을 강조하며, 각자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체험 공간을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그림책을 만들 수 있다. 5월에는 ‘세계의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으로 말하다’라는 주제로 국제 일러스트레이터 초청 세미나를 열어 작품에 관한 작가의 해석을 관객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전시장 가운데에 위치한 그림책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연령층을 위한 그림책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벽에는 국제어린이도서협의회를 조직하고 안데르센 상을 창시한 옐라 레프만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만약 정원사 몇 명이 비행기를 타고 세계 곳곳에 책나무를 심고, 마법의 비료로 나무들을 가꾼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의 상상을 옮긴 것처럼, 그림책으로 가득 찬 커다란 나무 형태의 책꽂이가 관객들을 맞이한다.


 이제 그림책은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섰다. 그림책은 육감을 총동원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감상하고, 나아가 언급되지 않은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다. 전시장을 나서는 관객들은 저마다의 이야기 하나씩을 품는다. 아직 나의 이야기를 찾지 못했다면 그림책들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자. 그림들을 따라 흐르는 수천 갈래의 이야기 중 하나가, 당신을 사로잡을 때까지.


장소 | 갤러리아포레 더 서울라이티움

기간 | 2019.04.12.~2019.07.07.

요금 | 13,000원

시간 | 10:00~19:00

문의 | 02) 736-1249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