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째 연재, 와인은 막걸리에 무너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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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째 연재, 와인은 막걸리에 무너졌나?
  • 이효나 기자
  • 승인 2010.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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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문화에 비친 문화 기호의 심리

막걸리, 와인을 무너뜨리다

최근 한 대형 유통점에서 ‘세계 400종 와인 최대 80% 싸게’라는 슬로건을 걸고 와인장터를 열었다. 5만 병 가운데 2만 병은 만 원에 팔고 있다. 10만 원 이상 구매고객 가운데 2,000명에게는 이탈리아 생수를 증정하는데, 그 생수의 가격이 무려 만 원이 넘는다. 심지어 원산지인 프랑스보다 한국에서 파는 와인의 가격이 더 싼 경우도 있다. 재고물량을 털어버리려는 인상이 짙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은, 시장에 대한 잘못된 예측으로 대량의 와인을 수입했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분간 와인이 한국 시장을 석권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고 대부분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와인의 판매부진에 여러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겠지만, 막걸리의 예상치 못한 성장이 와인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가설이 주목할 만하다. 사실, 막걸리와 와인의 문화적 분위기는 비교할 수가 없으므로 비슷한 주류임에도 같은 범주에 묶기 어렵다. 그런데 어떻게 와인이 막걸리에 무너진 것일까?

 

와인 열풍의 주력, 여성

애초에 와인 열풍의 주도층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여성의 사회참여가 증가하면서 회식문화에 변화가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존의 삼겹살 회식문화에서 벗어나 와인이 곁들여진 회식문화가 각광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육지책으로 와인 삼겹살이 나온 것과 소주의 알코올 도수가 낮아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나아진 경제 상황도 와인의 소비를 증가시켰다. 여성들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다는 의미는 경제적 여력이 향상되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분명 소주나 맥주보다 와인은 비싸다.

와인 열풍을 몰고 온 개인의 문화생활 증가

개인의 문화생활 증가 역시 와인 열풍을 설명하는 한 가지 근거가 될 수 있다. 와인을 회식자리에서만 마시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와인에 가정용이라는 라벨이 붙어있다. 와인 바의 본격적인 등장은 회식문화보다 개인적 취향의 문화가 우세해졌다는 것을 설명한다.

 

교환가치로서의 와인, 알코올이 다가 아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이 개념들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하나의 판단기준으로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용가치는 우리가 실제로 일상의 삶에 사용할 때 얻게 되는 가치를 말한다. 교환가치는 사용가치와는 관계없이 값을 치를 만한 가치를 말한다. 다시 말해,  교환가치는 실제 쓰임에 관계없이 일정한 가격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비되는 것이다.

와인은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의 대상으로 보아야 한다. 대다수의 한국 남성들은 술을 문화적 기호로 본다기 보다는 아니라 빨리 취하는 알코올로 본다. 그러나 와인은 이러한 술 문화에 대해 여성들이 부드러운 문화적 봉기를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문화기호로서의 와인, 분위기를 마신다

와인을 단지 술이라는 물질적 상품으로만 볼 수는 없다. 알코올 주입에 급급한 일부 남성들에게는 낯설겠지만, 와인은 하나의 문화기호라고 보아야 한다. 와인을 배경으로 삼는 문화권이 갖는 차별성은 소비에서 우월한 지위를 갖는다. 이러한 점에서 와인은 공간적 의미가 중요하다. 여기에서 ‘공간’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문화적 취향을 한껏 높여주는 곳이다. 이로써 사람들은 와인을 통해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기호’를 마시는 것이다. 나아가 와인은 차별화된 문화적 기호 소비의 상징이 된다. 이를 백로 효과라고 하는데, 이는 기존의 문화적 정체성에서 자신을 분리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다른 이들보다 더 높게 설정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많은 종류의 와인 중에서도 유럽산이 각광받는다. 유럽은 칠레나 미국보다 전통이 앞서 있고 문화적 분위기를 한껏 품고 있는 곳으로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와인이 아프리카의 열대 우림지역에서 만들어진 제품이라면 지금과 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가 일찍부터 와인을 문화적 기호로 만들어 상품화에 성공한 것은 프랑스가 가지는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천덕꾸러기에서 고급 술로, 막걸리의 반란

이러한 와인이 막걸리에 무너진다는 사실은 경천동지할 일인지도 모른다. 막걸리의 문화 기호 심리는 와인과 비교 불가능하게 서민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서민적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이 서민의 술이 언제부턴가 일본의 고급 바에서 팔리기 시작했다. 사실 막걸리가 와인을 무너뜨리기 시작한 시초는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었다. 한국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막걸리가 일본에서는 고급의 술로 탈바꿈했다. 어느 순간 막걸리는 남과 차별화되는 문화적 기호의 소비품목이 되었다.

지금 소비하는 막걸리는 과거 한국인들이 즐겨 먹던 그 술은 아니다. 그동안 수많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막걸리는 탈바꿈했다. 그러한 실체적인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문화적 기호로 각광을 받는 것이다. 숙취를 줄이고 다양한 영양성분을 함유한 막걸리는 여성들의 다이어트와 변비해소에 좋은 유산균 술이 되었다.

한동안 외면받았던 막걸리는 언제나 국민 애용주였다는 점에서는 지속성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물리적 토대에 주목할 만하다. 막걸리가 와인보다 더 몸에 좋다는 물리적 사실이 막걸리의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과거 와인 열풍에는 와인의 심장병 예방 효과가 그 역할을 했다. 인간은 문화적 존재로 끊임없이 자신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하고 우월적 도취를 구가한다. 그러나 막걸리의 부활은 인간이 건강이라는 물리적 주제에 민감한 생물학적인 존재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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