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새로운 시작이 설렜던 3월이 가고 온 사방에 화사함이 완연한 봄날이 찾아왔다. 다들 눈앞의 아름다운 광경들을 보며 지친 마음을 달래고, 속으로 담아두었던 따뜻함을 조금씩 꺼내어 본다. 만개한 꽃들 아래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다, 함께 보고 싶은 사람들이 저절로 떠올랐다.

 고등학교 입시로 바빴던 이후 바로 타지 생활을 시작하게 된 나는 고향에 남아있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한 달에 한 번씩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집에 보낼 때마다 친구와 함께할 수 있었던 공간은 별로 볼거리도 없는, 익숙할 만큼 익숙해져 버린 우리 동네뿐이었다.

 봄에는 아파트 단지 몇 그루 없는 벚나무들을 보며 벤치에 앉던 기억들이 전국 명소로 손꼽히는 벚꽃 축제들보다도 예뻤고, 밤이 되면 시계탑 앞에 켜지는 꼬마전구들을 보며 하루하루가 다른 느낌의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이라고 웃곤 했었다. 하루하루가 바빠 평상시에는 잊고 지내다 혼자 걷고 있는 밤의 벚꽃을 보자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기억들이 잔잔히 흘러간다.

 가끔 카이스트에서 생활하다 보면 나만 친구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리들이 걷고 있는 길은 달라진 지 오래인데, 수도권에 있는 친구들과 아예 분리된 공간에 사는 듯한 기분이 들 때마다 시간이 지금보다 더 흐른 후에도 이전 같을 수 있겠냐는 불안함이 들어오곤 한다. 아마 고등학교를 입학한 순간부터 쭉, 타지 생활이 예견된 나에겐 잊어갈 때마다 다시금 떠오르는 생각인 것 같다.

 다시 조금만 생각해보면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이 당연하다. 우리 자신들도 각각의 환경 속에 동화되어 가고 있는 만큼,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인 채 남을 수 있는 건 그저 추억으로 간직된 기억들밖에 없을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 동화되어 밖에선 빠르게 변해가는 20대 초반이긴 하지만, 서로 만날 때마다 그 시절로 돌아가는 나처럼 너 또한 그렇다면 우리 관계도 편안하게 발맞춰 변해갈 수 있지 않을까?

 벚꽃이 흩날릴 때쯤 봄비가 내려오며, 초록 잎들이 돋아났다. 비록 색깔도 모양도 향도 변해버렸지만, 벚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 서 있으며, 내년이 되면 더 크고 아름답게 만개할 4월이 올 것이다. 우리의 관계도 벚나무와 같다. 겉모습이 어떻게 달라지든 간에 그 본질과 아름다움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이미 커버린 우리들의 나무를 뒤로 한 채 조그마한 묘목들을 가꾸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카이스트에서 친구와 함께 걷던 벚꽃길, 한밤중 어은동산에서 흔들의자를 타며 나누던 비밀 얘기들, 신학 옥상에서의 새벽바람 등등이 새로운 그리움의 대상이 되겠지

 어차피 그리움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떠오르게 될 감정들이라면, 난 너로 인해 일찍 깨달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보고 싶어질 때마다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느끼며, 너도 멀리서 행복하길 바란다.

 벚꽃이 참 아름다웠던 4월이 저물어 간다. 비록 너와 함께 보지는 못했지만, 네가 떠올라 마음이 차올랐었던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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