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6일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개최된 제26차 국제 도량형 총회에서는 7개의 국제단위계(The International System of Units, SI) 중 4개의 정의를 새로 채택했다. 단위가 처음 정의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단위의 정의는 여러 번 바뀌어 왔지만, 4개의 단위가 동시에 바뀌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새로 채택된 정의는 오는 5월 20일부터 적용된다고 한다. 단위의 시작과 그 역사에 관해 알아보고, 국제단위계(SI)의 역할과 단위의 정의에 대해 알아보자.


과거에는 신체 부위로 단위를 표현해

 단위란, 길이, 무게, 수효, 시간 따위의 수량을 수치로 나타낼 때 기초가 되는 일정한 기준이다. 길이, 넓이, 부피, 무게, 밝기와 같은 물리량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단위가 만들어져 있으며, 오늘날 이런 단위들은 매우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정교한 정의가 내려진 것은 아니다. 옛날 사람들은 오늘날 사용하는 자 대신 신체의 일부를 길이의 측정 기준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에서는 가운뎃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큐빗’이라고 칭하여 피라미드를 지을 때 사용했으며, 중국에서는 손을 폈을 때 엄지 끝에서 중지 끝까지의 길이를 ‘척’이라고 칭했다. 그러나 신체 부위를 사용할 경우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사회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나라 간의 교류가 증가하면서 물물교환이나 무역을 할 때 불편을 겪게 되어 통일된 단위를 사용할 필요가 생기기 시작했다.


국제단위계의 기원이 된 미터법 제정

 그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단위 체계는 프랑스 대혁명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미터법’이다. 당시 정치가 탈레랑은 도량형을 통일하면서 ‘미래에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단위를 만들자’고 주장했고, 이에 1791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지구 자오선 길이의 40,000,000분의 1’을 1미터로 정하였다. 또한, 질량의 단위는 물의 밀도가 가장 높은 온도인 4 ℃에서 1 입방 데시미터의 질량을 1킬로그램으로 했다. 이 체계는 무게뿐만 아니라 넓이와 용량 등 모든 단위를 길이의 단위인 미터를 기반으로 정했다 하여 ‘미터법’이라고 불린다. 미터법이 만들어진 후, 소결시킨 백금의 미터 단면 표준과 백금 킬로그램 표준을 만들고, 이렇게 확정된 표준을 1799년 6월 22일 파리의 공화국 문서보관소에 보관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표준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채택된 국제단위계의 실질적 시작점이 되었으며, 미터법이 쉽고 우수하다는 점이 인정되어 1875년에는 17개국이 모여 국제적인 미터 협약이 체결되었다.

 현재 국제적인 표준 단위는 SI 단위계이다. SI는 1960년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채택한 단위계로, 현재 미국, 미얀마, 라이베리아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법정 단위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4년 1월 1일 제정된 계량법에 의거하여 이 단위계를 사용한다. 단위계는 초(s, 시간), 미터(m, 길이), 킬로그램(kg, 질량), 암페어(A, 전류), 켈빈(K, 온도), 몰(mol, 물질의 양), 칸델라(cd, 광도) 등 7개를 기본단위로 하고 있다. SI 단위는 킬로그램원기와 같이 인공물을 기준으로 하거나, 자연현상을 정밀하게 측정하여 구현한다. 원기는 측정량의 단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되는 물체로, 국제킬로그램원기의 경우 높이와 지름이 모두 39밀리미터인 원기둥 모양의 백금과 이리듐 합금이며 국제도량형국(BIPM)에 보관되어 있다. 이 원기는 먼지가 묻거나 손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3중으로 밀폐된 유리관에 담겨 특수 금고에 보관 중이다. 각 나라에서는 국제킬로그램원기의 복사본을 질량표준, 즉 국가킬로그램원기로 사용한다.


과학 기술과 함께 발전한 단위의 정의

 단위의 구현 방법과 정의는 과학의 발전이나 새로운 기술의 출현으로 인해 몇 차례 개정되어 왔다. 대표적으로, 미터의 경우도 그 정의가 수차례 바뀌었다. 초기에는 국제미터원기(IPM)을 이용하여 미터를 정의했다. 세계에서 유일한 길이의 기준 잣대이기 때문에 보관과 유지 관리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다. 다른 여러 나라도 길이의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제미터원기의 복제본을 여러 개 만들어 그 당시 미터 협약국에 배포했다. 국제미터원기는 인공물 자체가 단위의 정의인 동시에 단위의 구현이었다. 약 70년 동안 사용되던 국제미터원기는 재난이나 사고 등으로 쉽게 손상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어 다음과 같이 다시 정의되었다. “미터는 크립톤 86 원자의 2p10과 5d5 준위 간의 전이에 대응하는 복사선의 진공에서의 파장의 1,650,763.73배와 같은 길이이다.”

 원소에서 발생하는 스펙트럼의 파장을 측정하고 분석하는 기술은 19세기 중엽에 분광 분석법이 개발된 이후 지속해서 발전되어 왔다. 크립톤 86 원자가 들어있는 램프에서 발생하는 빛은 주황색을 띠는데, 그 선 스펙트럼을 분광계로 측정하면 중심 파장이 605.7나노미터이다. 따라서 이 파장을 약 165만 배 하면 1미터가 된다. 이런 방법으로 1미터를 구현하는 것이 국제미터원기와 같은 기준 잣대를 이용하는 것보다 더 정밀하고 편리하다. 단위의 정의가 바뀌게 된 더 중요한 이유는 실험 조건을 동일하게 만들어준다면 언제 어디서나 크립톤 86 원자에서 발생하는 파장 605.7나노미터의 빛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터, 빛의 속도를 기반으로 재정의돼

 이렇게 재정의된 미터는 1983년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터의 정의와 같이 진공에서 빛의 속도를 기반한 정의로 다시 바뀐다. 이전 정의와 마찬가지로 빛의 속도를 기반으로 한 정의 또한 빛과 관련된 이론의 발전과 측정 기술의 발전이 뒷받침되었다. 빛의 속도를 측정하는 연구는 17세기 갈릴레오 갈릴레이 이후 약 400년 동안 많은 과학자에 의해 시도되었다. 비교적 최근인 19세기에 마이켈슨(A. Michelson)은 최장 36.8킬로미터의 거리를 빛이 왕복하는 데 걸린 시간을 측정하여 빛의 속도를 구했다.

 1864년 맥스웰(J. Maxwell)이 빛은 전자파이며 그 전파 속력이 일정함을 이론으로 증명했다. 그리고 1905년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통해 진공에서의 빛의 속도는 어느 관성계에서나 일정하다는 사실을 밝혔다. 진공에서 빛의 속도가 항상 일정함이 이론적으로 증명되고, 세계대전을 거치며 레이더 개발을 통해 전자파 기술이 발전하면서 빛의 속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현재 빛의 속도를 기반으로 정의된 1미터의 정의는 빛이 진공 중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이다.


4가지 단위의 정의, 한 번에 재정의해

 지난해 개최된 국제도량형 총회에서 재정의된 기본 단위는 킬로그램(kg), 암페어(A), 켈빈(K), 몰(mol)이다. 1889년에 만든 국제킬로그램원기는 보존을 위해 제작 이후 오직 4번만 금고 밖으로 나왔지만 백 년 이상이 지난 현재, 원기의 질량이 50마이크로그램 정도 변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머리카락 한 가닥 정도의 미세한 질량이지만, 단위 표준이 불안정하다는 것은 일상생활을 포함하여 모든 산업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측정값을 신뢰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기존 단위계의 문제점을 지켜보던 국제도량형위원회(CIPM)는 2005년 킬로그램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세워야 한다고 권고했다. 2017년 10월 회의에서는 SI 개정을 위한 모든 요건이 충족되었음을 확인하여, 2018년 11월 프랑스에서 열린 제26차 국제도량형 총회(CGPM)에서는 국제단위계의 개정을 결정했다. 바뀐 킬로그램은 플랑크 상수를 J·s 단위로 나타낼 때 6.62607015×10-34이 되도록 정의된다. 여기서 J·s는 kg·m2·s-1과 같은 단위이다.

 이번에 재정의된 4가지 단위 모두 킬로그램과 같이 기본 물리 상수를 기초로 재정의되었다. 바뀐 정의는 다음과 같다. 켈빈(K)은 볼츠만 상수로부터 정의되며, 볼츠만 상수는 1.380649×10-23 J·K-1다. 몰(mol)은 아보가드로 상수로부터 정의되며, 아보가드로 상수는 6.02214076×1023mol-1 이다. 암페어(A)는 기본 전하로부터 정의되며 기본 전하는 1.602176634×10-19 C이다. 기본 물리 상수를 기반으로 새로 정의된 국제단위계는 전보다 더 견고한 정의를 갖게 되었다.

 국제도량형 총회는 측정의 동등성 확보를 목표로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위의 정의가 명확하여, 단위 정의를 구현하는 값들이 변하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이다. 발전하는 과학기술로 인해 이전보다 더 정확하고 변하지 않는 측정 표준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기본 물리 상수로 단위 정의 정교화

 이번에 개정되는 국제단위계는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안정성을 유지하며 쓰일 것으로 보인다. 단위의 재정의가 당장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의 알약 안에 정확한 양의 약 성분이 들어가야 하는 제약 분야나, 미세한 변화에도 민감한 반도체 분야 등에서는 마이크로그램 혹은 나노그램 수준의 측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향을 줄 것이며 SI 개정의 목표 또한 이런 미세 측정이 필요한 분야에서 측정의 정확도가 보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단위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매우 큰 변화이다. 따라서 많은 측정과학자들이 논리적이고 정교한 단위를 정의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왔다. 이번에 새롭게 정의된 단위는 오는 5월 20일 세계 측정의 날을 맞이해 발효될 예정이다. 단위를 사용할 때, 단위의 역사를 이해하고 새롭게 바뀐 정의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떨까.


참고문헌 | <SI 기본단위의 재정의: 그 배경과 원리>, 이호성, 한국정밀공학회지   <국제단위계, 그 멈추지 않는 진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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