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에서 나의 뿌리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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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에서 나의 뿌리를 보다
  • 박성윤 기자
  • 승인 2010.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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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보에서 나의 뿌리를 보다

“그러나 한 몸에서 갈라진 몸이 저 길가는 낯모를 사람과 같아질 것이니 식자로서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 의성 김씨보 서문에 적힌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뿌리를 중요히 생각해 ‘근본 없다’라는 말을 큰 모욕으로 여겼다. 이러한 전통이 계속되어 최근 세계에 유례없는 한국 족보박물관이 개관했다.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절로 심어주는 한국 족보박물관을 소개한다               

 

세계 최초의 족보박물관 4월 중 개관해

대전광역시 중구 뿌리공원 근처에 세계 최초의 족보박물관인 ‘한국 족보박물관’이 지난 17일 부분 개관했다. 대전 중구는 효와 성씨를 주제로 만들어진 뿌리공원을 충효의 산 교육장으로 만들기 위해 족보박물관을 조성했다고 밝혔다. 모두 24억 9,700만 원이 투입된 이 박물관은 지상 3층에 전체면적 1,733㎡ 규모로 기획전시실, 상설전시실 5개소, 수장고 등을 갖췄다.

현재 박물관에는 학계에 보고된 족보 중 3번째로 오래된 ‘안동김씨 성보'(1580년)를 비롯해 불에 타지 않는 ‘연산서씨 석보', 휴대용 족보, 내시들의 족보 등 다양한 족보가 전시되어 있다.

족보박물관은 지난 17, 18일 부분 개관을 맞아 전국 130여 개 문중과 시민이 기증ㆍ기탁한 족보 등 2,000여 점의 유물로 준공기념 기증유물 특별전을 개최했다.

 

뿌리공원과 족보박물관, 학술적 자원이자 관광 자원 될 것

뿌리공원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 해 경로효친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레의 자손임을 일깨울 목적으로 1997년 처음 세워졌다. 공원 내에 문중별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우고 효와 성씨를 테마로 공원을 조성한 것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국내의 족보를 한 곳에 모아 전시하는 족보박물관은 무척이나 특별한 예다. 박물관 건립 자문위원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성봉현 교수는 “체계적인 가계 기록이자 역사인 족보는 소중한 인문학적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대전 중구 이은권 구청장은 “136개의 성씨 관련 조형물이 전시된 세계 유일의 성씨 테마공원인 뿌리공원에 족보박물관까지 생기면 국내외에서 많은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가문계대를 알려주는 우리나라의 성명 체계

우리나라의 국조는 기원전 2333년에 고조선을 세운 단군왕검이며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성은 삼국시대 왕족과 일부 귀족 중심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초기부터 귀족은 물론 평민도 성과 본관을 쓰게 되었다. 2000년 통계청 자료를 기준으로 현재 우리나라에는 286개의 성과 4,179개의 본관이 있다.

이때, 본관이란 가문의 맨 처음이 되는 조상인 시조와 쇠퇴한 집안을 다시 일으킨 조상인 중시조의 출신지, 그리고 혈족의 세거지로, 씨족의 고향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씨의 종류가 적어서 같은 혈족의 집안(가족)의 수가 많아지게 되었다. 따라서 성씨만으로는 동족을 구분하기가 곤란한데, 본관을 통해 동족의 여부를 가릴 수 있다.

우리나라 성명체계의 특징은 성명으로 개인의 구별은 물론 가문계대(가문의 대를 이음)까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성과 본관은 가문을 나타내고 이름은 가문의 대수를 나타내는 항렬과 개인을 구별하는 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족보, 한집안의 역사이자 우리나라의 역사

족보는 시조부터 역대 조상의 얼을 담은 한집안의 역사책이다. 예부터 족보는 집안의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했으며, 지금도 많은 문중에서 대를 거듭해 지켜온 족보를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소중히 보관된 각 문중의 족보에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사람이 실려 있어 단순히 한집안의 뿌리로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려주는 사료로서도 가치 있다.

박물관 측은 앞으로 족보 연구자를 위한 열람실도 만들 계획이다. 족보박물관 박상근 관리계장은 “인물연구 중심으로 인문학 메카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라고 말했다.

 

족보 속에는 다양한 사연 가득해

족보를 단순한 역사 사료로 따분하게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족보 박물관에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지닌 족보가 있어 눈길을 끈다.

구한말 을사오적의 한 명인 이완용과 을사늑약으로 국권을 상실하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한 조병세 선생은 인척 관계다. 양주조씨(楊州趙氏)인 조병세 선생의 조카사위가 이완용이다. 이들의 관계는 양주조씨 족보에 잘 나와 있다. 양주조씨 문중은 1743년, 1825년, 1956년, 1980년 네 차례에 걸쳐 족보를 만들었다.

공씨(孔氏) 문중의 역사 또한 흥미롭다. 공자의 54대손인 공소(孔紹)는 고려 공민왕(1315년) 때 중국에서 고려로 넘어왔다. 공민왕은 공소를 창원 백(귀족)으로 봉했다. 이후 공씨의 본관은 창원(경남)이 되었다. 정조 16년(1792년) 창원 공씨 문중에서 4명이 과거에 급제해 조정에서 일하게 됐다. 공씨에 관심을 가진 정조대왕이 “시조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본관을 공자가 태어난 중국 취푸(曲阜)로 바꿔라”라는 명을 내렸다. 창원 공씨는 정조의 명령이 떨어진 지 2∼3년 뒤에 본관을 ‘취푸 공씨’로 바꿨다. 공씨 문중은 ‘창원 공씨’로 기록된 1725년의 족보를 족보박물관에 기증했다.

족보박물관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사연을 가진 족보 이외에도 임금의 교지(사령장) 200여 점, 1700년대 호패 7점, 문집 200여 권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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