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계곡이 펼쳐져 있다. 새끼 사자 심바의 울부짖는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고, 난데없이 수많은 누 떼가 심바를 쫓는다. 심바는 누 떼로부터 자신을 구하려던 아버지를 잃게 되고, 그 이후로 심바의 삶은 송두리째 변한다. 누 떼가 돌진하는 이 장면은 1994년 개봉되어 엄청난 흥행에 성공한 애니메이션 영화 <라이온 킹>의 시작을 장엄하게 알렸다. 2분 30초간 이어지는 누 떼의 질주를 묘사하는 데에는 무려 18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마저도 컴퓨터의 도움으로 기초적인 스케치 작업량을 크게 줄일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림 속의 물체를 움직이는 것은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요구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렇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그림들은 관객에게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감각을 선사하며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간다. 지난 100여년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들은 동화 속 주인공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들며 많은 이에게 꿈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여기에는 수많은 애니메이터의 고뇌가 담겨있고, 전시는 그 고뇌의 과정을 시간 순서로 나열하며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작품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그 출발은 미키 마우스에서부터 시작한다.


미키 마우스의 화려한 등장

 1928년, 월트 디즈니는 동료 애니메이터인 어브 아이웍스와 함께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인 <증기선 윌리>를 극장에 선보였다. <증기선 윌리>는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최초로 사운드트랙 방법을 활용하여, 애니메이션 속 장면과 음향 효과가 정확히 일치할 수 있었다. 영화 속 장면에 맞추어 곡을 직접 연주하거나 레코드를 재생하던 이전까지의 방법에 비하면 혁명에 가까운 발전이었다. <증기선 윌리>는 음악뿐 아니라 여러 물체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는 효과음까지도 모두 표현해 내었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전례 없는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었다. 영화가 시작하며, 주인공인 미키마우스는 어빙 카우프만의 ‘증기선 빌’을 휘파람으로 부른다. 관객들은 이제껏 만화 영화에서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생한 소리를 들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미키 마우스의 등장은 당시 애니메이션 영화의 패러다임을 바꾼, 영화계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 <증기선 윌리> 1928년 (©Disney Enterprises, Inc)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영화가 무궁한 발전을 할 수 있으리라 믿었고,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다. 그는 캐릭터들을 최대한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기 위해 독창적인 제작 기법을 활용하여 작품에 자신만의 특색을 입혔다. 캐릭터의 다양한 모습을 그린 뒤 표준으로 삼고, 여러 애니메이터가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하게 함으로써 등장인물의 다양한 움직임을 극 중에 담을 수 있도록 했다. 삼원색의 빛을 합쳐서 색을 재구성하는 테크니컬러 기법을 활용하여 색채를 풍부하게 나타냄과 동시에 배경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만들었다. 10분 이내였던 상영 시간도 1시간 30분 정도로 대폭 늘려 다채로운 스토리를 구성하면서도 등장인물의 내면에 대해 깊고 심오한 표현이 가능해졌다.


역동적인 움직임을 불어넣다

 이러한 시도가 집약된 작품이 바로 1937년 작인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였다. 4년에 걸친 기간 동안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완성된 걸작은 눈부신 흥행을 거두었고, 파산 위기에 처해 있던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게 된다.

 <피노키오>는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뒤이은 장편 애니메이션이었다. <피노키오> 또한 특수효과를 활용한 색다른 시도로 애니메이션의 시각적 깊이를 한층 더했다. 영화가 시작하면, 이야기의 무대가 될 마을의 고요한 밤 풍경이 서서히 확대된다. 그저 종이에 그린 그림을 확대한다면 하늘에 떠 있는 달, 저 멀리 보이는 산도 크기가 함께 커진다. 하지만 <피노키오>의 제작 과정에서는 여러 개의 그림을 일렬로 배열한 뒤 멀티플레인 카메라로 원근을 조절하는 촬영 기법을 활용하여 훨씬 더 사실적인 입체감을 표현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영화의 도입부는 영화 제작 분야에서 길이 남는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게 된다.

 1950년대,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디즈니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제작 기법도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 출발점이 된 것이 바로 제록스 프로세스였다. 어브 아이웍스가 개발한 이 기술은, 애니메이터가 그린 연필 선을 수작업으로 일일이 애니메이션 셀에 옮겨 그린 뒤 채색하는 작업을 컴퓨터로 자동화한 것이었다. 제록스 프로세스로 완성할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였다. 수많은 점박 무늬를 일일이 그리는 데 필요한 노력을 줄임으로써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이미지를 다룰 수 있게 된 것이다.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는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고전적인 방식에서 탈피하였음을 알려주는 시발점이었다.


디즈니만의 세계를 구축하다

 전시의 후반부에 다다르면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다. 이들 작품은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화려한 시각적 효과와, 유명한 음악가들이 작곡한 사운드가 어우러져 한층 더 예술적으로 발전하였다. 이 시기의 디즈니 스튜디오의 대표작이 바로 <라이온 킹>이다. 사실적인 묘사를 위해 애니메이터들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풍경을 직접 스케치하고, 스튜디오에 사자를 데려와 행동을 관찰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표정뿐인 동물 캐릭터의 특성상 표정에 다양한 변화를 그려내어 효과적인 심리 묘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누 떼가 돌진하는 장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누 한 마리의 움직임을 세심히 관찰해 3D 모델로 옮긴다. 그리고 이를 2D 애니메이션으로 바꿈으로써 수많은 누를 그려낼 수 있었다. 이렇듯 세심하게 얻은 특징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과 결합하여 가감 없이 구현되었다. 비록 18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고된 작업이었지만, 컴퓨터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장엄한 사바나의 풍경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 <겨울왕국> 2013년 (©Disney Enterprises, Inc)

 이후로도 <포카혼타스>, <타잔>, <뮬란>, <라푼젤>, <겨울왕국>, <모아나> 등에 이르기까지 여러 작품이 애니메이터들의 헌신적인 노력 끝에 제작되었고, 그 과정 하나하나를 전시에서 맛보게 된다. <겨울왕국> 엘사의 찰랑거리는 머리카락부터, 겨울왕국에 내리는 각양각색의 눈송이가 3D로 구현되기까지의 과정을 보며 관객들은 캐릭터에 담긴 디테일을 다시 한번 새겨 볼 수 있다.


 현실적 제약에서 벗어나 오로지 예술가 자신의 순수한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인간의 창조 본능이 가장 고도로 결정화된 집합체가 아닐까. 디즈니는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의 꿈과 희망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며, 우리를 다음 세대로 인도한다. 전시는 애니메이션이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하는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며 끝마친다.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기간 | 2019.04.19.~2019.08.18.

요금 | 15,000원

시간 | 10:00~20:00

문의 | 02) 325-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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