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연말~새해 초의 내 최대 관심사는 언제나 ‘다이어리’였다. 마음에 든 표지의 무지 노트, 아버지께서 받아다 주신 다이어리, 카페의 사은품, 큰맘 먹고 산 유명 브랜드 다이어리 등 활용 능력에 비해 거쳐 간 다이어리는 상당했다. 최근에는 태블릿을 활용해 다이어리를 쓰는 걸 보고 태블릿 구매 욕구가 샘솟기도 했다.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큰 데다가, 종이에 사각사각 적어 내리는 그 느낌을 포기할 수 없어 올해도 종이 다이어리를 고수하고 있다.


 일기를 써온 세월은 길지만, 꾸준히 쓰게 된 건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전에는 한 달도 채 쓰지 않고 방치하다가 몇 달이 지나서 겨우 이어 쓰고, 연말이 되어서는 중간이 텅텅 비고 뒷장이 한참 남은 다이어리를 보며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도 새해를 맞아 다이어리를 장만해야만 그 해가 비로소 시작된다는 필자의 지론에 따라 한결같이 그해의 다이어리를 마련했다. 


 일기를 착실히 쓰게 된 계기는 다이어리 꾸미기의 준말인 ‘다꾸’에 대해 알게 된 것이었는데, 각종 SNS나 포탈 사이트에 검색해 보면 꽤 많은 콘텐츠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다이어리를 각자의 개성대로 꾸며 하루를 표현하는 것을 구경하고 따라 하면서, 일기를 쓰는 것은 단순 기록을 넘어 필자의 취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올해의 경우, 3월 중반을 넘어선 현재까지는 거의 매일 일기를 꾸준히 쓰고 있다. 자기 전, 하루를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15분 정도를 들여 일기를 쓴다. ‘이번에는 진짜 꾸준히 써야지’ 하며 기합 넘치게 일기장을 장만했지만 강의실, 기숙사, 도서관을 오가는 단조로운 학기 중의 일상에 기록할 만한 것이 있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도 일기에 어떤 내용을 쓰냐며 궁금해하기도 했고 말이다.


 내 일기장에 특별한 내용은 거의 없다. 그 날 먹은 음식, 잘한 일에 대한 칭찬, 실수에 대한 반성, 그리고 누구나 할 법한 고민 등 시덥잖은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별 거 없는 끼적임이 나중에 읽었을 때는 재미있게 다가오곤 한다. 어느 미세먼지가 심하게 안 좋았던 날, 문장에 불만과 분노가 흘러넘치다가 바로 다음 문단에 침착한 어조로 처음 시켜 본 에이드가 맛있었다고 적혀 있기도 하다. 좋은 ‘글’로서는 한참 자격 미달이겠지만,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주제를 휙휙 바꿔 가며 쓴 나만의 글은 나에게는 충분히 좋은 이야기였다. 


 일기의 가장 큰 장점은 단조로운 하루라도 그날을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사소한 것이라도 상관없다. 마음에 든 가사 한 구절 적어 놓는 것도 나중에는 분명 특별할 테니 말이다. 좋아하는 문장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고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시간 낭비인 짓을 하고 있는데도 당신은 웃고 있군요.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시간 낭비가 아닙니다.” -파울로 코엘료, <마법의 순간> 中

저작권자 © 카이스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