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을 피하려는 시도는 항상 있어왔지만,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었다. 죽음뿐 아니라 질병, 노화와 같은 인간의 수많은 문제는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필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인간을 이루는 성질로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는 죽음을 잠시 늦추고 일부 질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언젠가 이들 문제가 인간의 필연적 성질이 아니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이 피어났다. 그 희망 속에서 탄생한 트랜스휴머니즘은 기술을 통해 인간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고자 하는 사상을 말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1957년 출간된 생물학자 줄리안 헉슬리의 에세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헉슬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삶은 토마스 홉스가 말한 것처럼 역겹고, 야만적이고, 짧았지만 인류는 인간임을 유지하며 인간임을 초월할 수 있다”고 트랜스휴머니즘의 근간을 닦았다. 60년이 넘게 지난 지금, 인류의 평균 수명은 눈에 띄게 연장되었으며 수많은 질병이 더는 인류에게 위협을 주지 못한다. 지금 이뤄낸 성과도 넓은 의미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인류의 부정적 성질 제거’라는 트랜스휴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하는 과정일 뿐이다.


기술을 통한 인간의 진화를 꿈꾸다

 1998년, 트랜스휴머니즘을 과학적 방법론을 따르는 정통적 분야이자 합당한 사회적 논제로 인식시키는 것을 목표로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 연합이 창설되었다. 그들이 2002년에 발표한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에 따르면, 트랜스휴머니즘은 ▲노화를 완전히 제거하고 인간의 지적, 물리적, 인지적 능력을 큰 폭으로 증진하는 방향으로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지적, 사회적 운동 ▲인간의 근본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의 위험과 영향, 그리고 관련된 윤리 문제의 연구로 정의된다. 

질병과 장애로 고통받거나 노화와 죽음이 두려운 사람들에게 트랜스휴머니즘의 약속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과학의 발전은 앞서 설명한 부정적 성질의 정도를 약화시키는 데 그쳤지만, 트랜스휴머니즘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지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초기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예견했던 것처럼, 트랜스휴머니즘은 아직 완전히 실천할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음에도 많은 논쟁을 낳았다.


불평등의 정당화로 이어질 수 있어

 저서 <역사의 종말>로 유명한 철학자 프란시스 유쿠하마는 트랜스휴머니즘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 평가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 사회가 공유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철학은 피부색을 비롯한 외모, 심지어는 지능의 차이까지 초월하는 기본권에 대한 이해이다. 또한, 모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특정 가치를 소유한다 볼 수 있으며 모든 인간이 선천적 가치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정치적 자유주의의 중심 사상이다. 하지만 이들 가치를 수정하는 것이 트랜스휴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다. 질병, 죽음, 그리고 잠재적 장애는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부정적인 특성이다. 어떤 인간은 이를 가지고 어떤 인간은 가지지 않게 된다면, 더 이상 모든 인간은 공평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머지않아 과학기술은 부정적 가치의 제거를 가능하게 할지도 모른다. 가장 기본적인 의약품인 해열 진통제 아스피린은 1899년 특허가 등록되었고, 이는 인류 최초의 합성 의약품이다. 10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인간이 기초 의약품의 부재로 고통받는 것을 생각해보면, 앞으로의 기술 역시 모두에게 밝은 미래를 안기지 못할 것은 명백하다. 

 헉슬리는 생물학자인 동시에 우생학자였다. 우생학은 열등하다고 여겨지는 인간의 유전자를 격리시킴으로써 인간 유전자풀에서 우월한 유전자의 비율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형질에 가치 판단을 부여하는 행위는 현대 민주사회의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전제를 뿌리째 부정한다. 유대인을 열등한 민족으로 규정하고 인류의 유전적 발전을 명목으로 그들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는 우생학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시기에는 장애를 가진 독일인 역시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어 마찬가지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트랜스휴머니즘과 우생학은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우생학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형질을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한다. 유쿠하마가 경고했던 것처럼, 죽음과 질병이 더 이상 공통적 형질이 되지 못할 때 인류 사회의 차별은 정당화될 위험을 가진다.

 2014년 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술의 등장으로 인간에게 유전자 단위로 형질을 고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이 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되는 데에는 불과 5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 실험을 감행한 허젠쿠이 교수는 에이즈를 막을 수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지만, 결국 소속 대학에서 해임되었고 연구는 많은 비판에 부딪혔다. 비판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유전자 가위 기술이 완성되지 않은 기술이었다는 점과, 기술이 완성되어 실험이 완벽하게 진행되었더라도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조하는 것은 의도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현재는 기술의 적용 범위가 넓지 않지만, 인간 게놈에 대한 이해가 완벽히 이루어진 후에는 인간의 모든 유전자를 같은 방법으로 수정, 변경할 수 있을 것이다. 에이즈는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기에 인류가 공통으로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피부색이나 눈동자 색과 같은 형질을 임의로 변경한다면, 그것은 변경되기 이전 형질을 에이즈와 같이 극복할 대상으로 간주한 것이며 인간의 평등을 해치는 행위이다. 만약 외모가 사회적 능력의 일환으로 작용한다면 위의 예시 역시 인간을 개선하고자 하는 트랜스휴머니즘적 노력으로 볼 수 있다. 키와 체형 역시 물리적 능력 개선이라는 명목 아래 유전적 수정이 정당화될 수 있다. 윤리적 판단이 결여된 트랜스휴머니즘은 이처럼 인간과 인간 사회의 존엄성을 위협하기에 깊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기술적 특이점, 인간 진화의 종착점

 지금까지 생명과학을 필두로 죽음, 질병, 노화와 맞서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한 면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해결된 인간도 트랜스휴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까지는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인간의 신체는 아직 기계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고, 인간의 두뇌는 컴퓨터보다 턱없이 느린 연산 속도를 보인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기계와 인간의 결합을 통해 인간의 능력을 더욱 끌어올리고자 한다.

 옥스퍼드 인류 미래연구소의 연구원 안데르스 산드베리는 인간이 자신의 정신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사회, 경제적 비용을 계산했다. 한 예시로, 사람들은 종종 집 열쇠를 엉뚱한 곳에 두고 이를 찾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데, 그는 이 때문에 영국 GDP에 연간 2억 5,000만 파운드의 손실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그에게 지능은 문제해결 도구이자 생산성과 경제적 산출의 함수이다. 실수는 자연스러운 인간적 특성이 아닌, 문제해결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착용 가능한 전자기기, 체내에 삽입된 전자 칩, 혹은 인공지능 등의 도움으로 인간은 인지 능력을 증강해야 한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에게 인간의 지능은 비효율적이며 개선할 대상이다.

 최근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은 트랜스휴머니즘에서 인간의 지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게 학습하며 효과적으로 과제를 해결한다. 사람들은 기계의 지능이 인간을 완전히 넘어서는 순간인 특이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존재가 그보다 뛰어난 지능의 다른 존재를 창조한 첫 순간이기도 하며 이 과정을 귀납적으로 반복하면 인류, 혹은 더 이상 인류가 아닐 이 무리의 지능은 비약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기술 리더들은 오히려 이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일론 머스크는 인공지능을 ‘우리 존재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 경고하며 인공지능 개발이 ‘악마를 부르는’ 기술적 수단이라 비난했다. 2014년 그는 SNS를 통해 ‘우리가 디지털 초지능의 생물학적 부트로더(Boot Loader)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빌 게이츠는 ‘일부 사람들이 우려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며 사람들의 낙관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이 러다이트주의자나 종말론자가 아니라, 오히려 기계의 혁신으로 자본주의적 이상을 일궈낸 사람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2008년,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 연합은 휴머니티 플러스로 이름을 바꾸고, 2015년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리고자 트랜스휴머니즘 관련 온라인 백과사전인 에이치플러스페디아를 개설했다. 에이치플러스페디아는 트랜스휴머니즘을 향한 여러 비판에 정돈된 답변을 내놓고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을 향한 대부분의 비판은 기술의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인간성의 상실을 우려한다. 이에 대해 에이치플러스페디아는 트랜스휴머니즘은 그 정의에서부터 기술의 발전이 수반하는 윤리적 문제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고 설명하며, 오히려 새로운 기술이 인간성을 지켜나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 답한다. 지금까지 과학 기술은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기도, 파괴시키기도 했다. 과학 기술을 다루는 모든 사람은 기술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 <트랜스휴머니즘>, 마크 오코널,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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