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린 - <친애하고, 친애하는>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아 휴학한 인아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혼자 사는 할머니를 돌봐드리라는 엄마의 말에 인아는 유배 아닌 유배를 가게 된다. 할머니와 함께 지내던 어느 날, 시골집에 엄마가 찾아오며 단절된 세 모녀의 이야기가 재개된다.

 책의 제목 <친애하고, 친애하는>은 삼대가 서로에게 전하는 말이다. 이들의 관계는 서로에게 품은 기대에 의해 조금씩 엇갈린다. 배우지 못해 평생 무시당한 할머니는 자신의 딸 현옥에게 살림 대신 공부를 시켰으며, 엄마와 달리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인아는 엄마를 실망하게 할까 두려워한다. 인아의 시선에서 풀어나가는 셋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처지도 대신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어색한 모녀 관계를 맺기까지 각자 걸어온 길을 비춰줄 뿐이다.

 인아의 눈에 비친 엄마는 어린 자신을 할머니에게 맡기고 유학을 떠났던,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혼전 임신을 했을 때 위로해준 것도, 다시 학교에 다니려 할 때 응원해준 것도 엄마이다. 둘을 가로막던 벽은 어느덧 무너지고, 둘은 서로를 지켜주는 든든한 아군이 된다. 이들은 인아의 공부를 반대했던 인아의 남편 등에 함께 맞선다.

 소설은 할머니로부터 나의 세대까지 이어지는 여성 차별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이 받은 억압을 전시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서사를 바탕으로 여성들의 역사를 집필했다. 4·19 혁명 참여 군중의 다수가 여성이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머니의 친구처럼,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 위주로 기술되는 역사에 여성의 자리를 만들었다.

 엄마가 된 인아가 회상하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두 세대의 여성이 맺는 관계를 그린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는 알몸으로 바다에 뛰어들며 자유로움을 표현하고, 그 모습을 바라본 엄마는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떠난다. 여성의 자리가 없던 곳에서 인정받기 위해 분투해온 엄마의 삶은 딸이 일과 육아 모두에 도전하는 토대가 되어주었다. 딸은 엄마가 나아간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이제는 할머니로부터 엄마에게, 다시 딸에게 전해진 자유의 바통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할 차례다. 친애하는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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