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루 산텔라 - <미루기의 천재들>

 

 시험 하루 전, 또는 과제 제출 몇 시간 전. 초조함에 가슴 졸이면서도 펜을 잡은 손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잠시 검색을 위해 집어 든 스마트폰에 빠지거나 아무 생각 없이 침대 위로 몸을 던지기도 한다. 일을 미루는 것은 의욕을 잃은 사람에게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유혹적이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을 뒤로 미룬다. 그리고 실천하는 미덕을 배우며 자란 우리는, 일을 미룬 자신을 자책하곤 한다. 그런데 여기, 일을 미루는 것이 정말로 그렇게 나쁜 것이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은 진화론의 발표를 20년간 미뤘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과학계를 뿌리째 뒤흔들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따개비를 연구하느라 이를 발표하지 않았다고 한다. 후일 다윈은 따개비에 엄청난 열정을 쏟았던 과거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또한 작업기한을 맞추지 못 하는 일이 많았다. 다 빈치의 그림 <암굴의 성모>는 의뢰주인 예배당 벽에 걸리기까지 25년이 걸렸고, 거대한 청동 조각상 <그린 카발로>는 기다리다 지친 의뢰인에 의해 완성되기도 전에 녹여지고 말았다. 당시 다 빈치에게 작업을 맡긴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그의 천재성이 아닌, 그가 과연 제시간에 완성할 수 있을지였다.

 일을 미루는 행위가 나태함과 반드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완벽주의자들은 주어진 과제에 실패했을 때의 변명과 자기 위로를 위해 일을 미룬다. 창조적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영감을 바탕으로 한 창작만이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목표에 마침표를 찍는 그 순간의 허무감과 쏟아질 타인의 평가가 두려워 일의 완수를 미루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에게 일률적인 시간 관리는 되려 비능률적이고, 의욕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된다.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의 말처럼, 그들은 지나치게 나태하지만 가끔 놀라울 정도로 부지런해진다.

 우리는 때때로 주어진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할 때 지나치게 열정적이고, 유능해진다. 몇몇 사람들은 그 ‘딴짓’을 통해 놀라운 성취를 얻어내기도 한다. 목표에 대한 부담감이나 압박감 없이 자의적으로 행해지는 딴짓은 나에게 주어진 일보다 더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주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들은 딴짓을 책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은 게으른 것이 아니라 창의적인 일들로 바쁠 뿐이라고 답한다.

 이 책은 일을 미루는 저자 자신에 대한 긴 변명과도 같다. 그는 일을 미루는 행위를 미화하거나 권장하지 않는다. 일을 미뤄온 자신에 대한 환멸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저자는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속도가 있다고 말한다. 성실하게 실천하는 것도, 일을 미루며 여유를 즐기는 것도 삶의 방식일 뿐이다. 저자는 효율 지상주의 사회에서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들에게 자신을 긍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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