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회 카이스트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 |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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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회 카이스트 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 | 실험
  • 카이스트신문
  • 승인 2019.02.13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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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


새내기과정학부 18

유재혁


“드디어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멕시알 드발랑사는 새로 발견한 땅을 보고 감격의 눈물이 나왔다. 그가 선원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일행을 끌고 접근했다. 멕시알 일행은 경계를 시작했지만, 일행이 우두머리는 안심하라는 말을 꺼냈다.

“진정하십시오. 새로운 땅에서 온 여러분들.”

멕시알은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었다. 분명 교류가 전혀 없었음에도 우두머리는 멕시알의 언어를 분명하게 구사했다.

“아, 제가 여러분의 말을 알고 있어서 당황한 모양이군요. 놀라실 것 없습니다. 이곳은 수많은 부족의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강하고 다양해서 언어와 번역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니 생전 처음 보는 언어로도 번역할 수 있는 번역 시스템이 갖춰줬답니다.”

“아 그렇군요. 당신이 이곳의 책임자입니까? 이곳의 지형과 문화, 기술을 배우고 우리의 것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마케라바치라시아. 이 대륙의 총강의 아들입니다. 우리의 렌즈를 이용한 감시 시스템에 여러분의 배가 감지되었고, 우리의 어느 양식에도 맞지 않는 배의 생김새를 보고 전설 속의 다른 땅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짐작했지요. 제가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쓰고 있는 저 동그란 유리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입니다.”

“아 제 이름은 멕시알 드발랑사입니다. 음, 우리가 쓰고 있는 유리는 빛을 모으고 분산시켜 시력을 보완해주는 것이고, 우리가 들고 있는, 음... 이 책은 기록 매체인데 종이에 글을 써서….”

멕시알은 책을 펼치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세상에!”

그러자 마케라바치라시아가 경악했다.

“그렇게 수준 높은 기록 매체라니! 이 정도 수준의 매체라면 저희 기록 매체인 파챠랴 30kg에 쓸 내용을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유리는 시력이 안 좋다는 이유로 연구를 그만두어야 하는 경험 많은 학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될 것이고요! 렌즈를 물리 연구나 감시에 써 본적은 있지만 시력을 보완하려는 상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 종이라는 물건의 제작법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멕시알은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서로 교류할 것이 많을 것 같군요. 서로의 기술, 모두 쏟아내 봅시다. 우리의 만남이, 세상을 바꾸는 것을 지켜봅시다.”


예언서라고까지 불렸던 ‘에테르고 행성의 두 대륙 이야기’. 2037년 이흐노비치 아파란시스에 의해 쓰인 이 책의 그 비극적인 결말은 아직도 수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준다.


1. 2147/8/25

“머리 아프군.”

박형섭이 말했다.

“수학은 우주 공용어라고 한 게 도대체 누구야? 말도 안 돼!”

“그야, 수학자들이 한 말이죠. 교수님도 수학자잖습니까?”

“물론 그렇지만 나의 사랑하는 조수 지한아, 지금 굳이 그걸 따져야겠니?”

‘박형섭의 사랑하는 조수’ 김지한은 의자에 앉아 등받이를 꺾고 의자를 회전시키고 있는 그의 교수를 쳐다보았다.

“그냥 번역하기 싫다고 말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건 안 될 말이야. 저건 나의 지식욕을 자극하거든.”

“스트레스와 흥미가 선명하게 교수님의 뇌를 핥고 있... 아니 강타하고 있군요. 뭐, 그래서 저건 도대체 무슨 내용입니까?”

박형섭은 의자를 돌리던 작업을 멈추고 김지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있던 문서를 한 부 더 인쇄해서 김지한에게 건넸다.

“읽어봐.”

김지한은 문서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하얀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문자인 것은 확실했지만 그 내용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뭡니까? 라덴 글자는 배워서 이제 해독 정도는 할 수 있어요. 그런데 나머지는요?”

“그게 라덴의 수학 체계야.”

김지한의 물음의 답은 김지한을 오히려 더 당황하게 하였다.

“네? 하지만... 이 기호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논리 방식을 따라간다면 나올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당장 이것만 해도 덧셈 같은 사칙현상은 물론 아닐뿐더러 로그 같은 함수들도 아니고요.”

박형섭은 그것 보라는 듯이 말을 이었다.

“이상하지? 라덴에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등등의 기호가 없어.”

“그럼 어떻게...?”

“이성적 성향은 라덴이 상당히 혁신적이야. 우리는 사물을 세다가 숫자를 발명했고 그 때의 잔재로 십진법이며 육십진법을 쓰고 있지? 라덴은 그런 거 없어. 관습보다는 언제나 능률이 최선이야. 가장 최적화된 계산 방식과 논리 구조만을 만들어나가서 우리의 수학같은 잔재가 없단 말이야. 실질적인 현상과는 동떨어진 논리들이지만 저기, 그 문단 맨 아래를 봐라. 어쨌든 답은 제대로 나오지? 요즘 교육계에서 강조하는 ‘다른 풀이’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군. 나도 상상조차 못 한 접근이야. 아니, 아직도 무슨 접근인지 모르겠어. 지구의 수학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서 그런지 아예 막힌 기분이야... 적어도 어릴 때부터 라덴 계열의 수학을 접해야 접근할 수 있겠군.”

“음... 그 말은 교수님은 번역 못 한다는 거죠?”

박형섭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다가 약 3초 뒤에 김지한에서 소리쳤다.

“난 된다, 이놈아! 이것도 못 해석해서야 세계 최고의 수학자란 소리를 들을 순 없지! 그리고”

박형섭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이건 지구에 소개된 최초의 외계 수학이야. 이런 기회를 남에게 넘겨줄 순 없지.”

그리고는 박형섭은 다시 분필을 잡고 칠판에 수식들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김지한 역시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어떻게 정체불명의 문서에서 저런 아름다운 결과가 튀어나오는지에 대해 놀라워했다. 그는 이미 식어버린 차 한 잔을 교수의 책상 옆에 두고 방에서 나왔다.

‘역시 교수님이시군.’

그가 평소에 어떤 모습을 보이든지, 박형섭이 천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 (ⓒ노제일 기자)

 

2. 175/3/32

“흐음... 이해가 잘 안 되는군.”

라덴의 행성 정부 세르겔의 의지에서 근무하는 야 핌 렉실저는 갸웃거렸다.

“루, 지구인이나 우리나 모두 지적 생명체이며, 도구를 사용해서 행성을 지배한 것이겠지?”

야는 옆의 동료 루 후프 렉실저에게 말했다. 야 옆의 책상에서 근무 중이던 루는 홀로그램을 구경하다가 야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럼. 당연한 걸 물어보네.”

“그럼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팔이나 손의 수를 늘리는 게 당연하겠지?”

“그렇긴 하지만 몸의 균형도 생각해야지. 어깨 위아래 정도에 하나씩 정도가 몸 균형을 생각했을 때 최적이야. 그 이상 붙여버리면 상체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서 하체의 근육을 강화하는 것만으로는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무게 균형이 깨져버린다고.”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런데 이 자료에 의하면 지구인의 팔의 수는 두 개래.”

루는 잠시 의아해하더니 다시 질문했다.

“지구인의 기술이 그렇게 낮아? 그 정도 유전자공학도 못해?”

“그건 아닐 텐데, 기다려봐. 음, 원인 분석 결과 보기에 징그럽고 종교적, 관습적 문제 때문이래. 어... 윤리는 알겠는데, ‘종교’는 또 뭐고 ‘징그럽다’는 게 뭐지?”

“‘징그럽다’는 말은 알아. 어디서 들었는데 정신질환이나 증후군의 일종이래. 극소수의 사람들이 라치쳐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라더라. 움직임이 이상하고, 다리가 너무 많은 게 무섭다나 뭐라나.”

이번엔 야가 반문할 차례였다.

“그게 뭐가 무서워? 다리가 좌우 50쌍 달려서 재빠르게 기어 다니는 것은... 음, 굳이 말하면  특이하다? 정도일 텐데 말이야. 혹시 종족적 공포증일까? 산화황 대신에 물 마셔서 그러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공포감 때문에 그런 이점을 포기해? 완전히 비합리적이야. 우리는 300년 전쯤에 팔과 손의 수를 늘려서 일의 효율성을 거의 2배로 증가시켰잖아.”

“아아, 그렇지. 언제였더라? 어디 보자, 정확히... 297년 전이군. 그때는 혁명이었다고 하지. 사실 정말 획기적이었잖아. ‘인간 효율성 개량 프로젝트’.”

야의 말에 루도 공감했다. 전 행성에 걸쳐 절대적인 존경을 받는 위인 렌도 스카라 플레이폼은 그 누구도 싫어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만큼 사람들의 의식에 각인된 위인이었다.

“정말 훌륭한 분이었지. ‘전 행성 효율성 2배 향상’ 이게 얼마나 큰 건데. 이 일로 플레이폼 작위를 받으셨지. 물론 그때 라흐마께서 통이 크긴 하셨지만. 아 그리고 그때 말이야...”

그 뒤로 야와 루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그러다 대략 20분이 지났을까, 둘을 발견한 사하드 테프리커 라슬라가 자신의 홀로그램을 쏘아 보내고 소리쳤다.

“야! 그리고 루! 지구 교류 진행으로 한창 바쁜데 퇴근하고 놀아라.”

“저희는 지구인의 감정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고요!”

루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사하드가 속아 넘어갈 만한 주제를 던졌다. 사실 거짓말은 아니었다. 지구인의 감정에 대해 말을 나눈 건 사실이니까.

“정말이냐? 호오, 이거 미안하군. 잘들 연구하도록.”

“네?”

그들의 라슬라는 당황해하는 야와 루를 남겨둔 채로 그 말을 남기고 홀로그램을 껐다.

“...? 그게 그렇게 좋은 연구주제였나?”

야는 골똘히 생각하다 말했다.

“생각해보니, 상당히 좋은 주제인걸. 말 나온 김에 지구인들만이 느끼는 감정을 조사해보는 거 어때? 여기 보고서에 적혀있는 적개심이나 동정심이나 증오, 그리고 징그러움 같은.”

“그 까다로운 라슬라가 괜찮다고 봤으면 좋은 주제라는 건데... 좋아 해보자!”

그 후로 둘은 의기투합해서 보고서와 논물을 쓰기 시작했다.

“지구인은 우리 라덴인과는 다른 특수한 감정이 있다고 생각된다. 라덴인의 감정에는 분노, 사랑, 슬픔, 궁금증 등이 있지만 이 감정이 타인에게 주는 영향은 없는 데 반해, 지구인에게는 이것의 영역을 초월해, 자신을 타인에 대입해서 생각하는, 이른바 ‘공감’이라는 심리가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야, 시끄러워 좀 조용히 써. 집중 안 된다.”

“동정심은 동족, 즉 지구인을 서로 보살펴주면서, 서로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는 감정으로 보인다. 이 감정이 정신적 및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지구인이 위기에서 벗어나는데 실제로 이바지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으며, 이가 확장된 감정인 동병상련은...”

“야, 야!”

‘지구인의 감정 연구서’의 집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3. 2151/3/27

“놀랍군.”

다셀 해방군 총사령관 하리야 심은 눈앞의 소녀를 바라보았다. 라미 손델라, 그것이 그 소녀의 이름이었고, 그는 라덴 계열 수학의 천재였다.

“저 정도면 라프텔리련도 조종할 수 있겠어.”

그는 잠시 고민하다 부하들에게 라프텔리련의 조종기판을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잠시 뒤 희한한 광채를 내는 다각형 물체가 등장했다.

“라미, 그건 이사히실카 좌표 장치야. ‘이좌장’이 일반적인 이름이지만... 뭐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니까. 미사일 개념의 라덴 무기인데, 그쪽 물건이다 보니 라덴의 수학을 알고 있는 자만 작동 가능한 물건이지. 내가 주는 좌표를 변환해, 이 매뉴얼대로 작동시킬 수 있겠니?”

라미는 잠시 망설이다 손을 상자 위에 올렸다. 그러자 홀로그램이 튀어나오더니 반경 3m에 달하는 크기의 홀로그램 조종실이 생성되었다. 라미는 흘러나오는 홀로그램을 조작하면서 열심히 무언가를 계산하더니, 기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10분, 이상한 기계음이 들리며 멀리서 발사음이 들렸다. 그리고 다시 20초 후에, 다셀 해방군 통신망에 무전이 잡혔다.

[총사령관님! 임무에 돌발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오늘 암살하려 했던 이피 아슈테르의 집에 갑자기 미사일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만... 혹시 다른 작전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적의 내분인가... 앗, 죄송합니다, 가디언 헌처크입니다. 들리십니까?]

“훌륭해.”

[네? 무엇 말씀이십니까?]

하리야는 뒤이어지는 가디언의 말을 무시하며 라미에게 다가갔다.

“라미, 너는 이제 또 다른 의미로 다셀의 보물이구나. 이 라프텔리련은 우주 문명 조우 및 상호작용 촉진 위원회의 통신망에서 우연히 잡아낸 병기 설계도로 만든 무기야. 국내의 내로라하는 무기기술자들이 기계는 만들었지만, 라덴 수학자와 프로그래머가 없어서 기초 환경 세팅을 고치고 지구 좌표를 라덴 좌표로 수정할 수가 없었지. 이걸 이용한다면 우리 동족의 복수를 이룰 수 있을 거야. 다만... 이런 살인 병기를 개조하는 역할을 어린 너에게 주어도 되는지 나는 모르겠구나. 할 수 있겠니?”

라미는 하리야의 얼굴을 쳐다보다 답했다.

“예. 어리다는 이유로, 우리 동족의 복수의 책임을 피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도... 함께하고 싶습니다, 삼촌.”

하리야는 등을 돌려 연설 단으로 걸어 올라갔다. 

“...고맙구나.”

이 말을 속삭인 하리야는 다셀 해방군의 총병력을 내려다보았고 연설대의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복수의 때가 왔다, 제군들. 하지만 결전에 앞서 해야 할 말이 있다.”

병사들은 의아해했다. 보통 하리야의 연설은 ‘제군들! 나는 제군들을 믿는다.’ 하며 10초 이내에 끝나곤 했던 것이다.

“다들 알고 있듯이 내 이름은 하리야 심이다. 왜 심 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다셀을 위해 싸우고 있는지 혹시 궁금하지 않나?”

몇몇 병사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그러게, 지금까지 자연스러워서 몰랐어.’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약 100여 년 전 심 씨 가문은 다셀의 군사고문으로 초청받았다. 1대 군사고문을 할아버지가, 2대 군사고문을 내 부모님이 맡으셨고, 3대로 내가 내정되어있었지.”

하리야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사건이 일어났지. 다셀인이라면 잊을 수 없고, 또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사건이!”

하리야는 주먹으로 연설 단을 내리쳤다. 연결된 마이크에 그 소리가 고스란히 울려 퍼졌다.

“군사고문이셨던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우리의 진실한 지도자인 라오코스님께서 세상을 뜨셨다, 우리의 자랑스러웠던 다셀이 무너졌다, 바로 저 더러운 이집트 놈들의 손에!”

하리야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고 병사들은 분노에 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외지인이었지. 아무리 가문이 요직을 맡고 있었다 해도 나는 분명 외지인이었다. 하지만 다셀인들은 나를 따돌리지 않고 오히려 신경 써주었다. 나는 그런 다셀이 좋았다. 사람들은 정 많고 성실했으며 아이들은 사랑스러웠고 자연은 아름다웠다. 문화는 다채로웠고, 사업가는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실천했으며, 정치가는 청렴했다. 나는 그 학살 이후로 군사고문으로써 다셀을 다시 새우기로 결심했다. ...세계는 우리의 고통을 모른다. 그 사건 이후로 기사와 역사가들은 이집트에 의해 멸망한 다셀의 참극을 기록했지. 민족독립을 원한 다셀에 대한 이집트의 철저한 응징, 아니 학살을. 그러나 역사가와 기자는 다셀인이 아니야. 우리들이 잃은 것과 우리들만의 고통을 그 얄팍한 글과 말로는 표현할 수 있을 리 없지. 지금까지는 이집트도 그 고통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이집트는 다셀의 분노의 크기를 알게 될 것이다.”

병사들은 동참의 뜻으로 발을 굴렀다.

“하지만 그 전에, 나는 총사령관에 있던 나의 지위를 반납하고 다시 군사고문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하리야는 그렇게 총사령관 은퇴를 선언했다. 이 갑작스러운 은퇴 선언에 병사들은 매우 놀랐고, 일반 시민들과 장교들도 경악했다. 혼란 속에 장교 중 한 명인 알리단 수르크가 소리쳤다.

“안됩니다! 다셀 해방군을 지금껏 이끌어온 것이 누구인데요! 이 다셀 해방군은 하리야 총사령관님이 지켜온 것입니다. 그런 총사령관을 대신할 자가 그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여기 있습니다.”

하리야는 라미 손델라를 단상 앞으로 데려왔다.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저 소녀가 누군데?”

“처음 보는 사람을 어떻게 믿고!”

하지만 알리단 수르크만은 충격에 받은 듯 소녀의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자 소녀는 단상의 마이크를 잡고 소리쳤다.

“그만! 조용히 해주세요.”

순간 술렁임이 사그라들었다.

“자랑스러운 다셀인 여러분, 제 이름은 라미 손델라. 라오코스 손델라의 딸입니다.”

“뭐라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들의 하나뿐인 지도자, 라오코스 손델라의 딸은 이미 죽었던 것으로 알려졌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어렸고, 위험이 있기에 생존 사실을 숨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생존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은 오로지 하리야 심 총사령관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술렁임은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커져만 갔다.

“그 말을 어떻게 믿나!”

“증명할 수 있나?”

“사리아 손델라님의 어릴 적 사진과 닮긴 했는데.”

이 술렁임은 충격에 빠져있던 알리단이 단상 위로 올라가서야 점차 사그라들었다. 알리단은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 라미. 살아있었구나. 나에게까지 숨긴 건 너무하잖니?”

“죄송합니다. 알리단 삼촌.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어요.”

둘은 손을 맞잡고 재회했고 그 상황을 지켜보던 병사들은 소녀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환호했다.

“우리의 지도자가 돌아오셨다!”

병사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리야 심은 외쳤다.

“지금부터 다셀 해방군 총사령관은 라오코스 손델라님의 유일한 후계자이신 라미 손델라님이시다! 모두 라미님의 지시를 따른다!”

“예!”

병사들, 장교들은 충성을 맹세했고, 그 맹세를 뒤이어 라미 손델라의 첫 명령이 시작되었다.

“모두 진군합니다! 이집트에게 빼앗긴 것을 되찾아 옵시다!”

함성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환호로 가득 찬 다셀은 정신적 지도자를 되찾고 완전한 단결을 이루었으며, 이 소문이 퍼지자 자진 입대한 수만 명의 사람으로 인해 더욱 강해졌다. 라프텔리련으로 이집트 주요 기지를 요격하는 동시에 다셀 해방군은 바로 이집트로 진격했다. 그러자 이집트를 아프리카의 교두보로 삼았던 유럽 연합은 유럽-이집트 군사협정에 의거해 바로 군대를 파병했고, 한국은 유럽 연합의 아프리카 및 아시아 진출을 억제하기 위해 다셀을 지원했다. 거기에 싸움을 말린다는 명목으로 미국까지 참전했다. 라프텔리련, 그 무기 하나 때문에, 억눌려왔던 억압이 풀려나와 유럽과 이집트 연합군과 한국과 다셀 연합군, 거기에 미국이 모인 국제전이 시작된 것이다.


 

▲ (ⓒ노제일 기자)

 

4. 178/6/23

“루! 이리로 와봐. 지구에서 전쟁이 났어.”

야는 뉴스를 보다 루에게 말했다.

“뭐? 왜?”

“으음, 잠시만, 좀 복잡한걸. 아 일단 직접적 원인은 다셀의 소녀가 라프텔리련을 가동해서라는데. 한국과 유럽 연합, 미국이 참전한 국제전이 되어 버렸는데. 잠시만! 라프텔리련이 왜 저기에 가 있어! 그건 아직 지구에는 과분한 기술이라고!”

“...어, 그러네. 그건 일단 조사해봐야 할 것 같고. 지구 빅 3이 모두 참전하다니 큰 전쟁이군. 세계대전이라도 일어나려나. 간접적인 원인은 뭔데?”

“아, 그건... 이걸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야는 루에게 파일을 넘겼다.

“와, 많다.”

루는 방대한 자료에 압도되었다.

“일단 여기 요약만 읽어. 현재 지구의 세력 구도에 관해 설명해줄게. 원래 한국은 작은 나라였는데, 미국이 중국의 성장을 경계해 침략할 때 교두보로 쓰여서 굉장한 무기 개발 권한과 기술력을 지원받았데. 전시상황이라는 핑계로 핵무기를 제조했다는데... 왜 이런 핑계가 필요했을까? 아, 핵무기 협약이 있었군.”

“무슨 협약?”

“그거 읽어봐. 어쨌든 미국은 북한이 걸리적거린다고 북한 주요 기지를 박살내는 특수팀을 파견함과 동시에 김 씨 일가를 암살한 후 남한에 흡수 통일시키고 중국과 전쟁했어. 북한을 식민지로 삼을 수는 있었지만, 한국과 동시 전쟁하는 것이 껄끄러워서 영토 양도 조건으로 참전을 요구했다는군. 어찌어찌 중국은 망했다는데, 티베트 공하국의 협공과 내부 분열이 겹쳤다나 봐. 그 후 미국과 중국을 나누어가졌어. 이때 몽골은 중국편에 섰다가 같이 점령되었구나. 사실 미국은 중국의 땅을 모두 점령하고 간도와 북한 정도만 한국에서 주려고 했지만, 중국과의 싸움에서 너무 지쳐서 한국의 군사력을 무시하기 힘들었나봐.”

그 뒤로는 루가 읽었다.

“아하, 그다음에 한국은 넓어진 영토와 국민을 규합하는 데 성공했고 늘어난 자원들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해 원래 악감정이 많았던 일본까지 멸망시키며 동아시아 최강국 지위에 올랐다. 이거군. 무역,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였던 탓도 있고? 그리고 이제 한국과 미국은 동맹 관계가 아니라 경쟁 관계가 되었구나.”

야는 동의했다.

“맞아. 그리고 이 자료를 보면 한국이 강대국이 되기 40여 년 정도 전에 인도와 파키스탄의 종교로 인한 카슈미르 갈등이 극한에 다다라서 인도가 파키스탄에 핵미사일을 퍼부으려 했어.”

“헐... 핵은 좋지 않아. 우리도 핵 써서 영토가 유실된 게 얼마야? 그나저나 종교라, 우리가 종교에 관해 연구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은 왜 그런 것 가지고 전쟁을 하는지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를 거야.”

“음, 그렇지. 그런데... 헉?”

야는 자료를 읽던 중에 충격으로 숨과 말을 멈췄다. 루는 그런 야를 보고 놀랐다.

“어이, 야, 왜 그래?”

“...이거 좀 읽어봐.”

야는 루에게 파일을 보여줬다.


[......이때 인도 군대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실수가 발생한다. 인도의 주요 적국이 유럽에 있던 탓에 핵미사일의 기본 설정이 유럽 연합을 향했는데, 실수로 이 설정을 바꾸지 않고 핵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실수로 인도는 유럽에 선전포고도 없이 전쟁을 일으켰다는 전범 불명예를 얻었고, 미사일 발사 책임자는 즉시 공개 처형되었다. 도시들이 무너져 내린 유럽은 연합하여 인도에 총공세를 펼치며 진군했는데, 이는 유럽 연합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인도의 몰락의 시작을 이끌어냈다.....]


“......”

야는 황당한 표정으로 다시 한 번 읽었다.

“이거 말이 돼?”

루도 동의했다.

“아니, 안 되는 거 같은데... 세상에, 멍청한 지구인들. 뭐, 어쨌든 이 전쟁 이후로 유럽 연합은 단결하여 합중국 체제가 되었어. 각 나라의 주요 도시가 파괴되어 더 긴밀한 협력이 필요해졌거든. 그리고 아프리카의 교두보로써 이집트를 삼고 군사, 경제적 지원을 하며 수교했지.”

“음, 이해했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유럽 연합의 힘을 업은 이집트가 다셀을 공격했어. 정부 요직을 모두 죽이고 학살했지.”

“흠... 이럴 때는 ‘동정심’이란 감정을 쓸 때인가?”

“그렇겠지? 같은 민족과 국민 간의 ‘동병상련’의 감정이 ‘분노’를 일으킨 것이고, 쌓아왔던 감정이 터졌다는 말이네.”

“그리고 그다음은 강대국 간의 이해관계에 얽힌 거다?”

“그렇지! 유럽 연합은 다셀을 견제하고 한국은 유럽 연합을 견제하고 미국은 한국을 견제한 거야. 그나저나 우리가 지구인의 감정을 연구한 게 이 사건을 개연성 있게 설명하는 데 효과적인데! 야! 이거 진지하게 써서 논문을 한번 써보자. ‘지구의 전쟁과 지구인의 감정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같은 제목을 붙여서.”

“오, 괜찮은데. 근데 일단 퇴근부터 하자.”

루와 야는 갑자기 침울해졌다.


5. 2151/8/27

“세상에... 라덴의 기술력은 정말 대단하군.”

미군 총사령관 잭터 이글아이는 라프텔리련의 위력에 질리고 있었다. 라프텔리련을 피할 방법은 현 지구의 기술력으로는 없었다.

“자체 스텔스에, 초속도 말이 안 되게 빠르고, 크기도 작은 주제에 폭발력은 상상 이상, 발사 궤적이 포물선이 아니라서 요격까지 어렵다니. 이거 너무하잖아.”

전쟁은 종결되었다. 다셀측의 우위로. 다셀군과 한국의 지원군은 유럽 연합의 지원군과 이집트 군대에 비해 적었지만 라프텔리련의 존재감이 너무 컸다. 힘의 균형을 맞추려던 미국군의 노력도 수포로 돌아가 이집트는 멸망했고, 다셀령과 한국령으로 쪼개졌다. 유럽 연합군은 패배를 맞보고 회군했다.

“저건 너무 위험해.”

잭터는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했다.

“뺏어야겠어.”

적의 기밀을 복사하면서 한 번도 들킨 적이 없었던 특수부대가 출동했다. 목표는 라프텔리련 설계도였다.


6. 2151/8/27

“다셀에게는 너무 과분한 무기입니다. 한국도 라프텔리련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군 총사령관 안추국은 작전 회의에서 대통령에게 말했다. 대통령 장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왜 다셀에게 관리하기도 힘든 땅을 받는 대신 그 무기의 설계도를 달라고 요청하지 않은 거지요?”

안추국은 분한 표정을 지었다.

“협상에 이집트에 있는 자원이 필요하다고 경제부와 외교부 놈들이 먼저 끼어들어서 협상이 급격히 진행되었고, 지원군의 피해를 점검하고 귀환시키는 데 신경을 쓰는 바람에... 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작전을 세워서 탈취하는 것에 집중하세요.”

“예!”

미국과 같은 명령을 받은 특수 공작원들이 파견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임무가 전쟁이 다시 시작할 원인 중 하나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7. 2151/8/28

“이런! 다셀 따위가!”

유럽 연합의 총사령관 아이히만 레프로탈츠는 분개했다.

“당장 군대를 재결성해 다셀을 쳐부수고 라프텔리련과 그 설계도를 가져와야 해!”

유럽 연합은 중앙 회의를 거쳐 군대 재파견에 관해 토론했다.

“아이히만, 꼭 또 전쟁을 일으켜야 합니까? 냉철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적인 일로 결정할 게 아니에요.”

“그렇습니다만, 이 결정은 냉철한 결정입니다. 감정적인 일을 떠나서, 라프텔리련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 자체가 이미 큰 문제입니다. 짧은 기간의 혼돈을 끝내면 다셀은 이제 군사력을 바탕으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고,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잇는 무역 요충지이기에 발전할 텐데,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복수하려 들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는 전쟁을 일으켰고, 우리는 패전국이 되었소. 또 전쟁을 벌이기에는 국력 소모도 큽니다.”

유럽 연합 대통령 크사크니츠 아프란시스는 결정을 망설이고 있었다. 악역을 맡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악역입니다. 한국과 미국도 제멋대로 참전했지만, 그쪽에는 명분이 있지 않습니까. ‘독립 지원’과 ‘질서’. 게다가 세계 여론은 탄압정치로 다셀을 억압한 이집트를 악으로 규정했고, 그 이집트를 도운 우리 유럽 연합도 이미 악의 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라프텔리련 설계도 확보가 필요합니다. 각하.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크사크니츠는 눈을 감고 고민했지만 이내 결정을 내렸다.

“좋습니다.”

유럽 연합은 군대를 재편성하면서 한국군과 미국군의 경계가 느슨해지는 시점을 노렸다.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한국이 라프텔리련의 설계도를 빼앗으려 공작을 벌이다 서로에게 발각되어 외교 갈등으로 번졌고, 다셀은 그 둘을 배신자 취급하며 이 사건의 해명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하느님이 우리를 도우시는구나! 다셀의 동맹이 끊긴 지금이 기회다. 기습한다!”

유럽 연합은 다셀을 공격했다. 또 다른 전쟁의 도화선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8. 178/11/16

“루, 지구에 또 전쟁이 났데.”

루는 깃털을 곤두세웠다.

“뭐? 설마... 그거 분명 2주일 전에 종전했을 텐데.”

“그건 맞는데, 지구 빅 3이 라프텔리련을 탈취하려고 붙었어.”

“허어 정말이지... 지구인들은 되게 ‘폭력적'이구만. 맞아! 우리가 쓴 논문을 좀 가져와 줄래?”

“음, 그래... 여기. 난 진짜 우리가 이 논문으로 유명하질 줄은 몰랐어.”

루와 야는 ‘지구 현대 정세 형성의 감정으로써의 접근’이라는 논문으로 라덴 학계의 유명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연구되었던 지구인들의 감정을 집대성했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으며, 그것으로 현재 사회를 분석해냈다는 극찬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새 관점의 해석이 질이 아주 좋아, 야와 루의 논문은 지구인 감정 연구 논문에 관련해 인용횟수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음... 우리가 이 논문에서 도출할 수 있는 건 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가 유럽의 ‘분노’라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아, ‘탐욕’과 ‘시기심’도 세 나라가 움직인 원인이 될 수 있지. 그것도 굉장히 ‘이성적인 탐욕’이야.”

“맞을 거야. 이제 다셀 국민들은 다시 뭐였더라? 아, ‘동병상련’과 ‘분노’ 감정을 거쳐 ‘증오’라는 감정으로 변해가겠지. 아, ‘배신감’도 한몫하겠다. 이제 다셀은 되찾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민족 독립에 대한 열망’을 불태울 것이겠지.”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만족해했다. 이제 둘은 라덴 최고의 지구인 심리학자다.

“그나저나, 지구인들은 감정도 풍부한 만큼 감정이 담긴 글을 많이 쓰더라고. 그리고 자신을 성찰하는 글도 많이 쓴다고 해. ‘철학’이라고 불린다는데, 우리 다음에는 이런 글을 번역하면서 지구인을 더 잘 분석해보자.”

“좋지! 루, 이것 좀 볼래? 이 책 제목이 평범하지 않아. 음, 지구의 표현으로는 ‘탐구심을 자극한다’라고 해야 하겠네.”

야는 ‘사회계약론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라는 책을 루에게 건넸다.

“그러네. 관련 도서에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발전’ 같은 것이 있네. 이 책들부터 번역해 보자고. 지구인의 생각과 심리를 최대한 라덴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9. 14417/4/33

우주 문명 조우 및 상호작용 촉진 위원장 시허자 유싱스타스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지구에서 라덴의 무기가 등장한 데 이어, 이 여파가 지구의 역사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허자 앞에는 지구-라덴 팀원들과 세퀴리 위커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위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우리의 보안이 왜 지구 따위의 기술에 뚫린 거지? 어쩔 거야? 라프텔리련과 미사일이 얼마나 차원이 다른 무기인 줄 알아? 전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벌써 이런 물물교류가 일어나면 안 된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위커는 떨면서 변명을 늘어놓았다.

“아... 죄송합니다. 그게... 야카리사티트 23.6 버전이 나왔을 때 전 프로그램 os를 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라고 하신 지시 기억하시나요?”

“그게 왜!”

“음... 야카리사티트 시리즈는 업데이트 시 모든 프로그램을 껐다가 켜야 하는데 보안 프로그램이 통신 프로그램보다 먼저 종료됩니다... 그래도 그 간격이 지구 시간으로 5초도 안될 텐데, 껐다 켤 때 합쳐 10초라고 해도 그 순간에... 이건 순전히 운입니다. 운. 불행이었던 겁니다.”

그러자 시허자가 불같이 화를 냈다.

“불행 같은 소리하고 있네! 멍청아, 우리 프로그램 규칙에서는 항상 보안 프로그램 위에 다른 프로그램을 올리는 게 최우선인데 그걸 안 지켜? 내가 그 지시를 내릴 때 나는 당연히 네가 그 지시를 지킨 줄 알았지! 아오, 이자식을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러자 위커의 표정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하지만 시허자는 그것을 무시하고 나머지 팀원들에게 더듬이를 돌렸다.

“그래서... 너희들은 어떤 생각이냐.”

지구-라덴 팀원들, 언 제나진 지한과 디 모타니, 위언서는 침묵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제나진이 침묵을 깼다.

“라덴 무기 설계도를 지구에 제공하는 것은 어떨까요?”

“자네 말은 균형을 맞추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최소한 균형이 맞으면 이런 사태는 없어지겠죠.”

“음... 좋아. 위언서, 라덴의 무기 설계도를 모아서 지구의 각 정부에 보내도록. 그리고 예정보다 교류가 빨라졌으니 라덴에게도 지구의 면모를 보여줘야지. 디, 지구의 문화를 어느 정도까지 추가 공개할 것인지 회의를 잡아줘. 그리고 위커! 정신 차려!”

위커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이 편지, 인사과에 전해.”

“네...”

위커는 슬픈 표정으로 편지를 받았고, 다른 팀원들과 해산했다. 위커는 인사과로 향하면서 생각했다.

‘요즘 시대에 편지라니... 완전 구시대의 유물이잖아.’

하지만 그의 궁시렁은 이내 경악으로 바뀌었다.

“...뭐라고요? 잠깐, 아이 잠깐만. 다시, 다시 한 번만 말해줘요.”

“몇 번을 말합니까? 이 편지를 봐요. 당신 감봉이라고요!”

짜증 내는 인사과 직원의 말은 그에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고, 이윽고 한 남자의 비명이 인사과에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아악!”


10. 180.2/23

“다...다했다! 번역 끝!”

“드디어 번역이 끝났구나.”

“하아, 이번 책은 문학이어서 힘들었어. 아직도 지구인의 감정이 마음에 닿지는 않네. 머리에서만 겉돌아.”

야는 책상 위에 쌓여있는 자료를 훑어보다 그동안의 노력의 결실인 책의 표지를 보았다.

‘라덴인을 위한 불쌍한 사람들’. 루는 그 책을 보고 야에게 질문했다.

“불쌍한 사람들이라... 무슨 내용이야?”

“원어로는 Les Misérables(레미제라블)인데, 프랑스 6월 혁명에서 사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야.”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 복잡하군. 그나저나 혁명이라고? 들어본 적 없는 단어네. 시대자료도 별로 없어서 번역하기 힘들었겠다. 이 책도 무료 배포지?”

“어 맞아. 고생한 것 같아서는 200레잔 정도는 받고 싶지만, 내 자신과의 약속이니까. 전자책으로 형식 변경해 올려야지. 아 그런데 이번 책은 조금 불안하긴 한데...”

야는 전자책으로 형식을 변경하며 루에게 넌지시 말했다.

“그나저나 그거 알아? 우리 올해의 번역가 1위로 선정된 거.”

“아, 그 기사 봤어. ‘탄탄한 감정 해석을 통한 자연스러운 번역, 그 번역은 지구와 문화가 다른 라덴 인도 쉽게 이해하기 쉽다. 이 능력에 존경을 표한다...’ 당연하지. 그 논문이랑 이론을 정립하고 이해하는데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데. 그리고 이번 작품은 내 인생의 역작이니 굉장한 인기를 끌 거야. 후후... 두고 보라고.”

“너 말이야, 정말 ‘자신감이 가득 차있군’. 음, 이제 올렸다. 반응이 어떤지 살펴보자.”


11. 2154/6/22

“각하, 보고합니다.”

브라질 대통령 집무실에서 나티스 팔랑크스 장군은 군사기밀을 브라질 대통령 나느야 대타나이에게 넘겼다.

“그동안 라덴 수학교육을 집중적으로 진행한 결과, 천재 게티스 우루나이를 발굴하는 데 성공해 최첨단 라덴 무기의 작동을 실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 정말 멋진 무기들이야. 내가 아무리 무기에 관심이 없던 여자라지만 이건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어. 지구정복도 할 수 있을 것 같군.”

“맞습니다, 각하.”

“그렇다면 당장 북아메리카를 친다. 그동안 멕시코와 미국이 우리에게 한 악행을 선전포고문에 써서 공개해야겠어. 내정간섭, 대통령 암살, 침공, 국제적 압박... 이번 기회에 되갚는다. 아, 장군은 돌아가도 좋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나느야는 선전포고문을 작성하고 전쟁태세로 돌입하라는 명령서를 내려보냈다.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아메리카의 대표국이 되는 거다.”

브라질은 그동안 준비해뒀던 전쟁준비를 2주라는 시간 동안 마무리했고, 미국에 동시에 선전포고했다. 그동안 브라질에 일삼은 악행을 사회에 고발하며 나느야 대통령의 연설이 온 브라질에 울려 퍼졌다.

“그동안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당했던 아픔과 슬픔, 우리가 되돌려줄 것이다. 더는 미국은 강대국이 아니다. 라덴 수학자 생산에 뒤처진 미국은, 라덴 기술로 무장한 우리 브라질에겐 그저 날파리일 뿐이다. 모두 진격하자!”

라덴의 기술로 무장한 군대는 기존 군대와 차원을 달리했다. 단순히 라프텔리련 십여 대만 가지고 있던 다셀군도 유럽 연합군과 이집트군의 공군전력을 웃돌았는데, 브라질군은 이보다 수 배는 강했다. 애프트라흐마 돌격소총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즈키신 전략전투기와 히아덴 전차의 엄호를 받으며 멕시코로 향했다. 데페리트 강화 부츠를 신은 병사들은 산맥, 심지어 호수나 강, 바다도 평지처럼 걸어 다닐 수 있었고, 히아덴 전차의 속도와 장갑, 주포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으로 갈 길을 열어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교전 상태에 들어간 멕시코는 3일도 되지 않아 길을 열 수밖에 없었고, 브라질은 바로 미국으로 향했다. 미국은 비상이 걸렸다. 라프텔리련을 막아낼 수 있는 유일한 대공 병기인 카니시폰을 가동하기는 했지만, 라덴 수학 인재 발굴에 늦어 라덴 군수공장을 늦게 세운 미국의 카니시폰의 수는 브라질의 라프텔리련 수보다 훨씬 적었다. 즈키신이 군사기지를 폭격하기 시작했고 우월한 사정거리를 갖추고 포탄의 궤도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히아덴 앞에 미국군은 후퇴하기 바빴다. 결국, 주요 군사기지가 차례대로 파괴되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먹을!”

잭터 이글아이 총사령관은 주먹으로 탁자를 부숴버렸다. 일찍부터 라프텔리련을 배치하는 등 노력을 들였지만 가장 중요한 라덴 수학자가 적어 추가적인 연구나 대량생산 연구에 큰 어려움을 겪은 게 이렇게 아쉬웠던 적이 없었다. 미국인의 재능부족을 원망하던 잭터는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각하, 핵폭탄 사용을 허가해 주십시오.”

“무슨 소린가? 지금 브라질과 멕시코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자는 이야긴가?”

“예. 저희가 죽는 것보다는 나은 것 아닙니까?”

링크 호라이즌 대통령은 고심했다.

‘나라 하나 살리겠다고 환경을 파괴하고 비인간적인 일을 해야 하나?’

하지만 그 나라는 ‘내’ 나라라는 생각이 그런 이성적 판단을 공격했고, 격렬한 싸움 끈에 그 둘은 서로 타협했다.

“군사 밀집도시와 군대, 주둔지 위에만 떨어뜨려 주게.”

“...알겠습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자살 전투기 편대가 결성되었다. 온갖 미사일과 대공 무기를 옆의 비행기가 맞아주고, 핵폭탄을 실은 전투기가 목표에 근접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가짜 편대도 만들어 브라질 대공 부대를 교란했다. 미국이 보유했던 핵폭탄은 모두 107개, 그중 멕시코와 남아메리카에서 만들어진 20여 개의 버섯구름은 브라질을 전투 불능, 더 나아가서 재기 불능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말도 안 돼... 핵폭탄 110개가 어디서? 협약 때문에 모두 폐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이 비열한 것들... 크크크크크, 아하하하하,하! ...하!”

그 말을 끝으로 나느야 대통령은 페니키아 권총의 방아쇠를 당겨 삶을 마감했다. 그가 알았을지는 모르지만, 이는 라덴 기술로 이루어진 최초의 자살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브라질 군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브라질-북아메리카 전쟁. 그 결과는 남아메리카와 멕시코가 방사능 지대가 되었다는 것과 미국 또한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애꿎은 피해를 입은 과테말라나 아르헨티나같은 남아메리카 나라들은 분노를 미국에 쏟아부었고, 핵을 사용한 미국은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았다.


12. 2154/7/7

남아공의 수학자 게더 아시온이 라덴 수학에도 정통하다는 것은 국가기밀이었다. 그가 라덴 무기 배치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모든 라덴 무기 소프트웨어를 이해했고, 이를 지구의 소프트웨어로 번역하는데도 일부 성공하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는 지금 아프리카 비밀회의에 참석했다.

“브라질-북아메리카전에서 보셨듯이 라덴의 무기는 혁신적입니다. 기존 지구 무기는 상대도 되지 못했죠. 이런 무기들을 만들려면, 자원과 인력이 필요한데, 다행히도 현재 아프리카엔 인력, 즉 라덴 수학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원과 자금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게더는 지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현재 최강국은 유럽, 한국이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 위치가 바뀌고 세계질서가 개편될 것입니다. 이는 다셀에서 그 전조가 보였고, 브라질과 북아메리카의 전쟁에서 이 변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럽은 현재 라덴 무기 배치에 열심입니다. 인력과 자원이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미국은 인력이 없고 인도와 동아시아, 아프리카는 자원이 없어서 배치에 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일단 배치가 되면 전 지구적 군사력 격차가 매우 줄어듭니다. 최첨단의 무기가 전 지구에 고르게 퍼지기 때문이죠. 자, 그럼 강대국들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떻게 하려고 할까요?”

아리아드 알리 탄자니아 대통령이 답했다.

“당연히 그 전에 세계를 자신 아래 두려고 전쟁을 벌이겠지.”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 아프리카는 수많은 나라 대신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정치 체계로 통합되어 자원을 집중시키고 힘을 키워야 합니다. 강대국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죠. 각 나라들과 대치하던 병력을 ‘아프리카’ 국경으로 돌릴 수 있으니 그야말로 군대에 쓰이는 비용이 감소하고, ‘아프리카’의 인력 늘어난 자원을 이용한 합동 연구를 통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게더의 말을 듣던 아프리카의 대통령들은 이 제안을 제출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에게 물었다.

“그럼, 정치적 혼란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직 지역감정이 큰 곳도 남아있습니다만.”

“각 나라의 현 영토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하되, 그에 대한 권한을 낮추고 통합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방국이 되는 것이죠. 분리되어 있던 민족들이 다시 모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을 것 같군요. 알맞은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시야슬 아크멘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의 대답을 각국의 대통령은 분석하기 시작했다. 대체적으로 각 주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어차피 아프리카의 통합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아프리카 통합에 찬성하는 서명을 합시다.”

다음날 아프리카 연합 결성을 알리는 발표가 진행되었다. 8개월 동안 아프리카 연합 대통령 후보를 모집하고 선거 유세를 펼치게 되며, 그전까지 아프리카 연합의 통치기구는 대통령 회의로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연설문이 아프리카 전역에 벽보로 붙었고, 언론들은 이를 방송과 신문을 통해 전달했다. 그리고 전운이 전 세계에 감돌기 시작했다.


13. 14422/1/21

“하아...”

유싱스타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은 이렇게 되는 건가... 이번에도 실패할 수는 없어. 라덴 쪽은 괜찮은 것 같은데 말이지... 기술 불평등을 메우려는 노력이 이런 결말을 만들어 내다니... 젠장!”

유싱스타스는 다시 팀원들을 호출해 회의를 열었다.

“자,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일은 우리가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설계도를 나눠준 것부터 이미 간섭 수준이 위험에 도달했습니다. 더는 간섭하면 그것은 지구의 역사가 아니라 저희가 만들어낸 역사가 되어버립니다.”

제나진은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맞는 것 같아요, 위원장님. 이건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넌 조용히 해 세퀴리 위커! 디, 라덴 쪽은 문제없나?”

유싱스타스는 위커의 말을 무시하고 디에게 라덴의 상황을 물었다. 디는 슬퍼하는 위커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답했다.

“별일 없습니다만... 지구의 문학이 퍼져서 점차 감성적인 라덴인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아직은 긍정적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실패로 규정하긴 아직 일러... 좋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한다.”


14. 185/3/25

‘지구 문학 전성시대’

‘이번 달의 지구 문학’

‘지구 문학의 선구자 야와 루의 인터뷰’

라덴에서는 이러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야와 루는 전 라덴적인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구에서 번역되거나, 지구의 가치관과 정서로 쓴 문학이라는 ‘지구 문학’이라는 새로운 문학 갈래가 생겨나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있었으며, 지구 문학 번역협회가 출범하는 등 지구의 문학이 물밀 듯이 들어왔고, 그에 따라 지구의 노래와 연주 등도 라덴 문화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라덴 인과 다른 생물학적 특성과 생활양식을 가진 지구 문학은 이전의 외계인을 소재로 삼은 ‘외계인 문학’을 대체했으며, 지구학자들의 중요한 학술자료가 되기도 했다. 지구라는 행성이 있고, 그 행성에도 발전된 문명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았던 시민이 지구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창구이기도 했다. 번역서 서문에는 지구에 관한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을 위해 이 책의 배경이 어느 장소이며, 언제인지, 상상의 첨가가 어느 정도 되었는지 등이 작성되어 있었다. 야와 루의 팬 중 한 명인 샤디 신 피티오는 바로 이런 변화를 깃털로 느낄 수 있었다. 

“1년 전만 해도 티민 거리가 이렇게 변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

깔끔하고 능률만을 중요시하던 티민 거리는 점차 예술적 감수성을 자극할 수 있는 거리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 과도기에 있는 난잡함조차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름다워.”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개념을 정확히 마음에 담고 있었고, 그는 자신이 ‘아름다움’을 알고 있는 세대에 태어난 지탄이라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지금까지 번역된 거의 모든 문학을 탐독했고, 지구 문학 번역협회의 일원이기도 한 그는 이렇게 지구의 감성적 개념을 익힌 것은 물론, 인기도서인 ‘라덴인을 위한 불쌍한 사람들’에 나온 프랑스 6월 혁명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이 무엇이기에 청년들이 열광했나, 왜 왕을 몰아내자는 주장을 했는지. 또는 책의 정치적 주체에 왜 여자가 빠져 있는지. 해설에서는 가난한 현실의 책임을 왕에게 전가하고 반역을 꾀한 청년들이 벌을 받는 중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했고, 우탄, 지탄, 일리언, 노스트로가 평등한 라덴과 달리 지구의 과거에는 성이 다르게 대우받았다고 설명했다. 성 차별 개념은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혁명에 관한 설명은 개연성이 떨어졌고, 또 소설의 묘사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런 해설이 없으면 바로 번역가가 잡혀 들어갔을 정도로 라흐마를 배척하는 사상을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점이 석연치 않았다. 하느님을 받든다는 종교라는 개념도 궁금했지만, 우선 지구 문학 토론 사이트에서 프랑스 혁명에 관한 질문이 많은 것을 발견한 샤디는 질문 작성자들과 연락하여 그들과 함께 프랑스 혁명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해 전에 번역되었던 야와 루의 초기 번역 중 하나인 ‘사회계약론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가 프랑스 혁명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들은 샤디가 도전했었지만, 이론적인 내용이 다분하고 번역의 자연스러움이 떨어지는 등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초기 번역의 특징 때문에 포기했던 책이었다. 그러나 이 책의 가독성에 선전포고한 샤디는 다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할 정부가 필요하며, 이 정부는 국민이 직접 꾸려야 한다. 인간은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동시에 의무를 지게 되고, 이 권리에는 자유롭게 행동할, 생각할 권리와 전 국민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권리 등을 포함한다.’ ......? 무슨 소리냐? 사람이 왜 평등해?”

라덴인의 가치관으로써는 이해하지 못할 개념의 글을 읽은 샤디는 이런 궁금증을 가지고 민주주의가 무엇인가 토론하는 게시글을 올렸다. 처음에는 몇 명만 답하는 게시글이었다가 곧 수천, 수만 명의 사람이 접속하자 순식간에 오늘의 인기 글이 되어버렸고, 샤디는 아예 민주주의 연구 사이트를 생성했다. 그리고 매 초마다 민주주의에 대한 조사 및 해석 글이 올라왔다.

[민주주의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 와 왠지 지구 문학을 읽다보면 이해 안 되는 부분들이 많더라. 이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이 전부 같은 신분인가 궁금했지.]

[충격적인데? 세상에... 지구에는 신분제가 없어! 이 링크로 가봐 ---> 지구의 신분제 폐지]

[어라, 내가 읽은 책들에는 귀족이랑 노예가 나오던데 내가 읽은 건 뭐냐?]

[그거는 사극인 듯.]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국가의 일이나 어떤 단체의 의사결정을 국민이 결정하는 대표가 맡는 거라는데?]

[뭐냐... 그러면 라흐마를 부정하는 제도잖아? 이거 완전 위험한 사상이구먼. 난 나간다.]

[갈 사람은 가세요. 어쨌든 사람들이 평등하니까 어느 한 사람만이 아닌 모두가 주체가 돼야 한다는 거야?]

[그런 것이 아닐까? 음... 맞는 말이네. 라흐마께서는 정치제도를 고치고 계시긴 하지만... 우리의 요구사항이 직접 전달되진 않잖아.]

[에이, 우리 같은 사람이 어떻게 그런 짓을 해? 플레이폼 같은 귀인이나 가능한 거지.]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잘못된 거라고 주장하는 게 민주주의라는 겁니다. 선대의 공으로 특별대우를 해준다고요? 우린 연좌제도 인정 안하는데 왜 공을 세습되고 죄는 세습이 안 되나요?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요? 아 연좌제 부활시키자는 말 하지 마세요.]

[평소에 사회에 불만이 많은가 본데, 여보세요. 신분제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왜? 불편하지도 않잖아. 오히려 노력하면 신분상승도 노릴 수 있고 난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하는데? 루와 야 님을 봐. 렉실저에서 헤시달이 되셨잖아.]

[혹시 생귀말이세요? 뭐 그럼 그런 말 할 수 있죠. 나시르 돼보세요. 사람 취급도 못 받는데.]

[뭐? 나시르? 어디서 짐승이 사람 흉내를 내? 꺼져!]

[여기서 싸우지 마세요.]

[아니 그러니까 그런 짓 하지 마라니까? 에휴, 우리를 따라다니는 세 번째 이름인 생귀말, 나시르, 익셀저, 렉쉴저, 헤사딜, 야슬론, 피티오, 플레이폼, 라흐마 같은 걸 없애야 한다는 거잖아.]

[? 그거, 위험한 발언인데... 적어도 라흐마는 거기서 빼자.]

[*작성자의 온기가 남아있는 댓글입니다.*]

[이미 지구에서는 다 일어난 일이야. 민중들이 그렇게 바라던 프랑스 6월 혁명이 너희가 무서워하는 것이란 거지! 신분제가 폐지되고, 왕, 그러니까 지구의 라흐마가 폐위된 거야.]

[정말이냐? 하여튼 윗사람 밤길 조심해. 어디 끌려갈 수도 있으니까.]

[뭐야, 이 사이트 위험해.]

[그래도 우리는 지배층이 횡포 부리지 않아. 너희 너무 급진적인데?]

[신분제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라니까 그러네?]

이 사이트의 혁명주장은 대다수의 사람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현 라흐마인 리키오소 디 라흐마의 선정으로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흐마가 승하하며 문제가 발생한다,


15. 2154/8/2

아프리카 연합 결성을 경계한 유럽 연합은 전쟁을 결정했다. 전 전쟁에서 라프텔리련을 많이 탈취했기 때문에 유럽은 자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아프리카를 지배하며 수탈했던 역사가 있고, 많은 정치적 개입도 한 데다 여러 불평등 조약까지 맺은 적이 있었으므로 아프리카의 분노가 두려웠던 탓이다. 재선에 성공한 크사크니츠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명령서를 제출했다. 

[총사령관 아이히만 레프로탈츠에게. 이번 기회에 아프리카를 잡지 못하면, 우리는 아프리카 내부 국경선에 배치되었던 무기들과 풍부한 자원으로 쏟아지는 신식 라덴 무기로 유린당할 것입니다. 공격이야말로 최선의 방어. 유럽 연합 수준의 국력을 갖추기 전에 아프리카를 초토화하세요.]

인간의 이기심이 불러온 또 다른 전쟁에서 아프리카 연합과 유럽 연합은 격돌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모두 아직 완전한 라덴 무기 배치가 일어나지 않아서 기존 병력 또한 주요한 요인이 되었다. 비록 유럽이 라프텔리련 수에서 우위를 차지했지만, 아프리카 내부 국경선의 무기들이 전부 지중해 연안에 배치된 것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게다가 아프리카의 어마어마한 인구도 한몫했다. 하지만 유럽이 쏘아 보낸 라프텔리련과 미사일을 아프리카의 소량의 카니시폰은 전부 막지는 못했다. 결국, 유럽 연합군은 아프리카 상륙에 성공했고, 아프리카 연합군은 유럽 연합의 남하를 막기 위해 필사적인 항쟁을 펼쳤다. 

“젠장, 전쟁이 고착화되고 있어. 길게 끌면 우리가 점점 불리해지는데... 중앙아시아가 우리의 빈 본진을 급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유럽 연합 군사회의에서 아이히만 총사령관은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때 장군 중 한 명이었던 세리아 안달루시가 별동대를 구성해 아프리카의 왼쪽을 공격하는 전략을 세웠다. 

“좋은 생각이야, 전선에만 신경 쓰는 아프리카 연합 놈들의 허를 찔러야겠어. 당장 별동대를 구성해서 상륙작전을 펼치고 아프리카를 남북으로 분단되어 궤멸시킨다!”

아이히만 총사령관은 즉시 세인트조지스 상륙작전을 명령했다. 세리아를 대장으로 한 별동대는 격렬한 전투 끝에 상륙에 성공했고 인천 상륙작전처럼 아프리카를 양분하려 시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아프리카 연합은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비밀리에 이뤄진 작전 속에서 아프리카 연합군은 과거 유럽에 착취당하며 뚫어놓았던 다이아몬드 광산으로 유럽 연합군을 유인했다. 그리고 준비해두었던 대량의 폭탄을 폭파해, 붕괴 위험이 있었던 갱도 속으로 유럽 연합군을 매몰시켰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 같이 진동하며 아래로 지반이 꺼졌고 이는 유럽 연합군에게 막대한 물리적 타격은 물론 심리적인 타격도 주었다. 어디에 함정이 있을 줄 몰라 퇴각하는 아프리카군을 제대로 쫓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별동대로 진격해온 유럽 연합군의 공황과는 반대로, 적의 괴멸을 지켜본 아프리카 연합군은 사기를 되찾았다.

“지금이 기회다! 이 기세를 몰아 공격을 가해라!”

아프리카 연합 총사령관 에이잔 그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공격을 명령했다. 방어에만 열중하던 아프리카 연합군은 공격도 시도했고, 몇 번의 승리를 발판으로 전세를 뒤바꾸려고 노력했다. 결국, 피해를 감수하고 정공법으로 밀어붙이기로 한 유럽 연합은 전 병력에 총공세를 명령하여 남하를 시작했다. 유럽 연합-아프리카 연합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이 기간에, 온 사하라 사막에는 밤낮없이 굉음과 섬광이 가득 찼으며, 거의 8천만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낳게 되었다. 이 기간의 처절한 사투의 승자는 유럽 연합이었다. 유럽 연합은 사하라 사막 대부분을 점령하는 데 성공했고 아프리카 연합은 위기에 봉착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유럽 연합에 지는 건가? ...연합 결성 소식을 비밀로 해야 했어. 그래야지 유럽 연합의 선전포고 시기를 늦출 수...”

“총사령관님!”

에이잔 총사령관은 좌절에 빠져 있다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병사를 보고 놀랐다.

“무슨 일인가?”

“세리아 안달루시 장군의 정보입니다! 유럽 연합군의 식량 보급선 호위작전 계획을 빼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사실 유럽 연합군은 식량 부족 문제가 있었다. 아프리카 연합은 후퇴 시 모든 식량과 물자를 처리하는 청야전술을 이용해 유럽 연합은 현장보급을 할 수 없었다. 사막에서는 고기는커녕 빵도 생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 연합은 점점 더 군대의 보급에 힘을 기울여야만 했다. 

“좋아, 재빨리 잠수함들을 대기시켜서 레이더에 안 잡히는 보급선들을 눈으로 보고 처리해!”

에이잔의 명령을 받은 스텔스 잠수함부대가 유럽 연합군의 보급선을 파괴하는 데 성공하자 유럽 연합군의 문제점은 점점 커져갔다. 게다가 다른 문제점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프리카 연합이 적대시한 것도 아니고 왜 선제공격을 했고, 이토록 피해가 큰데도 전쟁을 계속하느냐에 대한 국민 여론이 일었다. 또한, 인구손실이 컸다. 아직 고령화 초기 사회에 접어들고 있는 아프리카 연합과 비교하면,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 점차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유럽 연합에서는 이 인구 손실의 손해가 더 컸다. 결국, 유럽 연합은 휴전을 선택했다. 아프리카도 동의했다. 이대로 가다간 두 대륙이 공멸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유럽 연합은 수에즈 운하를 포함한 사하라 사막의 3분의 2를 가지게 된다는 조건하에 종전 선언으로 두 대륙 간의 전쟁은 끝나게 된다.


16. 193/4/32

“루 선생님, 야 선생님.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루와 야는 자신들을 부르는 한 청년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따라갔다. 청년이 한 방으로 들어가라고 할 때 잠깐 망설였지만 그대로 따라갔다. 청년은 문을 잠그고 루와 야에게 질문을 던졌다.

“두 선생님께서는, 현 라흐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루와 야는 이 당돌한 질문을 듣고 잠시 당황했다.

“안심하고 말씀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경찰도, 또 특수 요원도 아니고, 여긴 도청장치도 없습니다. 그저 민주주의를 저희에게 전파해주신 두 분의 의견을 듣고 싶은 겁니다.”

후와 야는 이해했다. 그리고 야 핌 ‘헤사딜’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부정적일세. 자네는 어찌 생각하나? 혹시 민주주의 결사단에서 온 건가?”

청년은 활짝 웃더니, 네 번째 손가락을 접어 보였다.

“맞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저희 부류에 속하시는 분입니까? 아니면 개인적으로 라흐마를 싫어합니까? ‘라덴인을 위한 불쌍한 사람들’이나 ‘사회계약론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 같은 책은 반 라흐마 도서이지만 그 해설들 때문에 저희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이번에는 루 후프 ‘헤사딜’이 답했다.

“나는 전자에 해당해. 이 친구도 마찬가지이고. 라흐마의 표적이 될까 걱정한 것뿐. 그래서 ‘라덴인을 위한 불쌍한 사람들’을 번역할 때 이상한 해설을 달 수밖에 없었지. 이거 자기 자랑이 될 줄 모르겠지만 우린 너무 유명해서 소문 잘못 나면 라흐마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순식간이라고.”

그러자 청년의 얼굴색이 밝아지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다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아이슈발데 7지구장인 사라 판입니다.”

야는 놀란 표정이었다.

“아니 벌써? 기껏해야 40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나이에? 대단하군 자네!”

“하하, 그래 봬도 실제 나이는 64랍니다.”

야가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안인 거구먼. 그나저나 소문대로 계급명을 떼는군.”

“그것이 저희 집단의 목표이니까요.”

“그렇지... 그래. 우리도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야 핌, 이 친구는 루 후플세. 아 그리고 민.결(민주줒의 결사단) 간부를 만난 김에 질문 하나지. 현재 민.결 세력 규모가 얼마나 되나?”

“하하, 저희의 정신을 이해해주시니 기쁘군요. 그리고 그 질문에는 자세한 답변을 해 드릴 수 없지만, 라트칼파 지역을 거의 장악했다는 것 정도는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크잖아? 라트칼파는 구 상업중심지잖아. 성장속도가 상당히 빨라. 열심히 일했네.”

루는 감탄했고 사라는 말을 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무리가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가 선생님들을 부를 이유는 이런 선생님들의 입장을 알고 싶은 개인적인 호기심이 아니라 부탁을 할 게 있어서입니다.”

사라는 잠시 뜸을 들였다 다시 말했다.

“지구인의 감정, 문학, 사상, 정치체계를 번역해 오신 선생님은 잘 아실 겁니다. 지금 라덴의 제도의 불합리함을. 게다가 현 라흐마를 보십쇼. 저런 인물이 라덴의 수호자이며 세르겔의 가장 충실한 종입니까? 선 라흐마의 휘광을 등에 없고 수탈과 폭정을 일삼는 자가? 아닙니다!”

사라는 주먹을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저희와 함께 싸워 주십시오. 선생님들의 번역 활동으로 라덴인들은 이런 불합리한 정치체계를 직시할 수 있게 되었고, 지구의 다양한 종교를 접함으로써 세르겔 신앙을 ‘종교’로써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이런 지배체계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세르겔의 은총을 받는다는 라흐마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현 라덴의 제도가 불합리함을 다시 한 번 설파하시고,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구심점이 되어주십시오.”

루는 야와 잠시 서로 눈빛을 교환했더니 말을 이었다.

“아까 말했잖아. 우리가 의견을 밝히면 유명세 때문에 분명 바로 라흐마의 표적이 될 거야.”

사라는 예상했다는 듯이 말했다.

“저희가 그 어떤 위협에도 선생님들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장악한 라트칼파 지역으로 피신하는 것도 좋고요. 그리고 실명을 사용하지 않고 원고만 작성해주셔도 좋습니다.”

“...잠시 생각할 시간을 줘.”

루는 위와 같은 말을 내뱉더니 야와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5분쯤 지났을까? 야는 사라에게 대답을 전했다.

“좋네. 다음 주 이 시간에 내 서재로 와줄 수 있나?”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이 대화는 비밀인 것 아시죠?”“당연하지. 그럼 다음 주에 보세.”

일주일 후, 전 라덴에 조직적으로 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벽보로, 현수막으로 번져갔다. 디지털 시대에 붙어있는 벽보가 신기했던 라덴인들은 벽보를 유심히 보게 되었고, 민.결을 지지하는 라덴인들의 수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원래 지역 하나를 세력권에 둘 정도로 큰 세력이었던 민.결의 가입자가 늘어가는 것을 본 크샤트 디 라흐마는 이들을 탄압하기로 결정, 전성(星) 체포령과 계엄령을 내렸지만 이는 사람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혁명과 자유, 그 순간을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명작을 통해 수없이 읽어왔다. 처음에는 머릿속에 입력된 낯선 개념들일 뿐이었지만, 시간이 점차 흘러 그 개념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자, 점차 자신을 탄압하는 현 정부에 맞서고 민.결을 수호하려 반군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세르겔의 의지는 군대 조직을 막기 위해 힘을 기울였지만 이미 각종 서적을 통해 개념들이 많이 퍼졌기 때문에 반군에 동조하려는 것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라흐마는 물러가라’

‘신분제를 폐지하라’

‘민주주의를 실현하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라’

이런 표어들이 라덴에서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공화국, 또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반정부를 세우는 것을 고려할 수준까지 반군의 세력이 커지자 정부는 응징을 시작했다. 전쟁이었다.


17. 2161/4/20

현 지구 최강대국, 한국. 다른 두 강대국, 미국, 유럽 연합은 각각 브라질, 아프리카 연합과의 전쟁 피해로 국력소모가 커 현재 회복에 힘쓰고 있었다. 사실 미국은 강대국이라고 불릴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핵을 전쟁에 사용했다는 사실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 배척받는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이 두 나라와 다르게 한국은 근 100년간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6년 전 라프텔리련 탈환 전쟁에서 발생한 사상자 5만여 명밖에 없었다. 꾸준히 힘을 키워왔던 한국은, 라덴 수학의 선구자 박형섭의 존재로 라덴 무기마저 빠르게 연구했다. 

“이제는 우리의 시대다. 늘 당하기만 하던 우리가 이제 세계를 주도하는 거야!”

한국 대통령 안기혁은 세계질서를 개편해 전 세계를 한국의 영향권 아래 두려는 계획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도 멸망과 함께 새로 건국된 마하마, 델라이 같은 나라들과 아프리카 연합이 동맹을 맺고 대항하였으며, 미국은 살기 위해 유럽 연합도 동맹을 맺었다. 유럽 연합은 미국과 손을 잡기 꺼림직했지만 미국은 아직 군사력만은 강한 축에 들었고, 같은 악의 축이기에 거리낌없이 동맹을 맺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한국은 미국령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흡수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대통령님! 한국이 중국을 침공하고 있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비서의 소식에 미국 대통령 아틀라스 폰테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망할! 아직 본토 복구가 우선이라 중국 쪽에는 라덴 무기가 없는데!” 

폰테인 대통령은 잠시 고민하다가 결정을 내렸다.

“당장 유럽 연합에 연락해서 한국과 싸워달라고 전하게! 한국이 이 기세로 중국, 티베트, 중앙아시아까지 밀고 들어갈 수 있다고!”

유럽 연합도 이 급보를 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협정에 의해 한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것은 물론, 러시아를 끌어들여 같은 편에 서 달라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2050년 이후로 계속 중립을 지켜 온 러시아는 이 요청에 답하지 않았지만, 위협을 느꼈는지 전쟁 준비로 나라를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전쟁 당사자인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아프리카 연합에 연락해 군대를 끌고 오라고 연락하게! 우리의 전력으로는 한국을 도저히 막을 수 없어!”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앙아시아 국가들 중 하나인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우믿 존은 아프리카 연합에 파병 요청을 전함과 동시에 중앙아시아의 서쪽 경계인 카자흐스탄과 함께 한국을 막는 역할을 수행하겠다고 자청했다. 이로써 한국은 유럽 연합과 중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아프리카 연합과 싸우게 되었다. 한편, 마하마와 델라이는 한국과의 완충지대인 중앙아시아가 점령될 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고려해 한국에 조건부 선전포고를 했다. 중앙아시아 절반 이상 점령시 세계 정복을 위한 움직임으로 간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코웃음칠 뿐이었다.

“전쟁할 용기도 없는 것들이 입만 살아서 떠드는군. 계속 진군한다! 서둘러. 이번 달 안으로 중국과 카자흐스탄은 점령해야한다.”

안추국 총사령관은 오히려 전쟁에 박차를 가했다. 한국의 공격은 매서웠다. 미국령 중국을 점령한 후 진군하던 한국군은 라덴화된 편이었던 중앙아시아의 군대를 손쉽게 무력화했다. 중앙아시아는 긴밀한 협력 체제 형성이 되어있지 않을뿐더러,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서로를 죽여 가며 싸웠던 유럽 연합과 아프리카 연합은 합동 작전은커녕, 전투가 일어나 전쟁으로 번질 뻔한 사건까지 발생했다. 연합이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친한 세력인 베트남과 미얀마, 티베트 공화국은 한국과 맺은 군사동맹에 의거해 전쟁에 참여하여 한국에 큰 힘이 보태었다. 결국 한국은 중국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점령했고, 티베트 공화국과 미얀마, 베트남에게 일부 영토를 할양해 주었다.

“한국에 경고했던 바와 같이 선전포고를 한다. 세계정복에 대한 야욕을 버리고 침략 행위를 즉각 멈출 것을 요구한다.”

결국, 마하마와 델라이는 선언문과 함께 참전했고 중립국이었던 러시아까지 참전을 선언하면서 세계의 모든 세력이 참전하는 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선이 한국 국경 전체로 크게 늘어나고, 참전국이 늘어나면서 한국에도 점차 부담이 가기 시작했다. 결국, 전쟁은 장기전으로 치닫는다.


18. 196/4/31

세르겔의 의지와 라덴 민주주의공화국의 교섭장.

“하! 이 몸은 라흐마의 충실하고 미천한 종이자, 정부의 개로 통하는 통칭 ‘그림자’ 아델 토 수전사 라오.”

이를 바라보며 철학자 레프 로탈리는 한데 쏘아붙였다.

“그렇게 시끄러우면서 ‘그림자’라고? 누가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작명 솜씨 참 좋구먼.”

“호오, 본인은 300년의 지혜를 지닌 당신에 감탄했소!”

“됐고, 아델 토, 그리고 레이...”

“아델 토 ‘수전사’요, 이 미개한 것! 이 몸의 자랑스러운 계급명을 떼는 불경한 짓은 이곳에서 그만두시오!”

아델은 레프의 말을 끊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 아델을 옆의 레이 판 아시모가 제지했다.

“...사과부터 하죠 레프. 우선 아시겠지만 소개할게요. 레이 판 아시모입니다. ...레이라고 부르시죠. 이름만 부르는게 그 어느 진영의 신경에도 거슬리지 않겠군요.”

레프의 시선이 레이에게 옮겨졌다.

“본론부터 말하지. 포로교환을 요청하고, 2개월간 휴전을 요청하러 왔네.”

레이는 생각도 않고 바로 답했다.

“싫어요.”

“...뭐라고?”

레프는 말문이 막혔다.

“제가 이 회담장에 온 이유는 당신 쪽의 그 말도 안 되는 불경한 사상을 집어치우고 항복하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예요. 아무리 지금 그쪽의 기세가 맹렬하고 전투를 이기고 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진실한 쪽이 승리하는 법이니까요.”

옆의 아델은 레이에게 부리가 틀어막힌 채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안 된다면?”

“모조리 사살할 겁니다.”

“...네 동생 사라도?”

자신의 동생의 이름을 들은 레이가 반응했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말을 계속했다.

“아이슈발데 7지구장이요? 네, 그럴겁니다.”

레프는 괴로웠다.

“제발이다 레이, 이제 라흐마제를 포기해.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니? 나는 내 조카인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그 행복했던 시절을 부순 건 부모님에게 라흐마 추종자라고 누명을 씌워 죽인 민.결 놈들이에요.”

레프는 잠시 말을 잊지 못했다. 

“...그건 유감이다. 하지만 전쟁의 혼란 속에서 일어난 일이야. 그쪽에서도 일어나는 일 아니냐! 이리 돌아오너라!”

레이는 눈빛을 욕을 퍼붓는 아델을 뒤로 하고 말했다.

“그럴 순 없어요. 애초에 공화국 놈들이 반란을 일으키지만 않았어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 부모님은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에요. 라흐마님이야 말로 우리가 진실하게 섬겨야 할 분입니다.”

레프는 안타까운 눈빛을 숨기지 못했지만 이내 표정을 바로잡았다.

“그쪽이 이런 인원으로 협상단을 구성했다는 건 협상을 하기 싫다는 이야기겠지. 좋아, 너희가 원한다면야. 계속하지 이 전쟁. 수많은 시체와 고아를 생산보자고. 어느 쪽이 쑥대밭이 될 때까지.”

레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 그대로 걸었다. 그리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물론 그쪽은 너희 쪽이겠지만.”

그리고 다음 날, 세르겔의 의지와 라덴 민주주의공화국은 다시 전쟁을 재개했다. 전 라덴에 고르게 퍼져있는 무기 밀도 때문에 고착화되던 전쟁이 다시 시작한 것이다. 라덴이 통일된 이후의 196년 만의 전쟁의 행방은 또다시 알 수 없는 진흙탕 속으로 빠져들었다.


19. 14434/5/7

“...쳇.”

제나진은 체념했다. 옆에서는 상실감에 빠진 유싱스타스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말 이게 이렇게 되다니...”

유싱스타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기술적 격차가 너무 컸어. 그래서 직접적인 기술 교류를 막았지. 그러면 문제가 해결돼야 될 텐데 왜 이렇게 된 거지?”

유싱스타스는 위커를 보더니 마치 원수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그 도청만 아니었어도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야.”

“...”

위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확실히 라덴의 전개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어. 후, 현재 라덴의 상황은 어떻지?”

제나진이 보고했다.

“세르겔의 의지가 52%, 라덴 민주주의공화국이 41%, 중립이 7%를 장악 중입니다. 매일 사상자 수가 넘쳐 흐르고요, 대륙 손실이 없이 전쟁이 끝나야 할 텐데... 시뮬레이션 결과상 다시 많은 영토가 유실되고 행성급 오염이 진행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방사능 정화 기술이 있어서 전쟁 복구까지는 생각보다 큰 시간이 걸릴 것 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영토 유실은 간척사업으로 어떻게든 될 거고요.”

“지구는?”

“현재 한국이 연합군에게 밀리고 있기는 합니다만... 슈우젠을 모함으로 하는 함대 하나가 움직임이 이상해 조사해보니 라프텔리련과 이리사 미사일 300문을 운반하고 있더군요. 전세가 뒤집힐 듯 보입니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결전에서 한국이 지고 본국까지 침략당하지만, 최후의 선택으로 브라질에 핵을 쏜 미국처럼 전 지구에 핵을 사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까... 지구 문명이 망한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하아... 젠장. 미개한 놈들 같으니라고!”

유싱스타스는 허탈감과 분노, 답답함에 목소리를 높였다.

“겨우 그 따위 기술력에 압도되서 행성 질서가 아작나? 우리 기술력을 보면 그냥 미쳐 버리겠네 그래? 어?”

유싱스타스는 분노의 고함을 내질렀다. 이번이 벌써 26번째 실험이었다. 적합한 실험체를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자신에게 주어진 예산과 지원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실험이 실패해나가는 것을 유싱스타스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위커 이 자식아!”

유싱스타스의 분노는 그것이 마땅히 그래야 하는 방향으로 향했다.

“너만 아니었으면 지구는 성공했을지도 모르잖아! 다음에도 실수하면 해고할 테니 알아서 해!” 

위커는 새하얗게 질린 채로 서 있었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싱스타스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실패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완벽한 실패로군. 그렇지?.”

유싱스타스는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완벽한 실패, 하지만 그는 이것을 딛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맹세했다.

“다음 실험대상으로 준비된 사카르토와 호사리타스에 각 행성의 존재를 알리고 정보들을 공개해. 이 둘도 기술적 격차와 문화, 철학적 격차가 있으니까 기술 유출되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쓰고. 그나마 이 두 행성은 수학 체계가 비슷해서 지구와 라덴보다는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후우...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해보자. 너희 승진이랑 이 실험이 직결되어 있다는 건 알지? ...그럼 가서 일 봐라.”

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실험을 준비하기 위해 서둘러 사무실로 향했다.

‘다음 실험에는 꼭 성공해야해. 이 나이 되고서도 이 직급일 수는 없다고.’

행성과 별을 이용해 실험하는 자, 시허자 유싱스타스(using stars)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다시 한 번 굳게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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