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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소멸의 경계에서
한강 - <작별>
[455호] 2018년 11월 13일 (화) 하예림 기자 yerimha13@kaist.ac.kr

 어느 평범한 겨울날, 난처한 일이 생겼다. 깜빡 잠들었다 깬 그녀는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유 모를 변신을 했지만, 그녀의 몸은 여전히 일상 속에 놓여있다. 그녀는 평소처럼 남자친구와 아들을 만난다. 그러나 일시적 변신을 통해 영웅이 되던 영화 주인공과는 달리, 그녀는 돌아갈 수 없었다. 왜 눈사람이 되었는지,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고민할 여유가 없다. 몸 깊숙한 곳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한 그녀는 소멸하기 전 삶을 정리한다.

 이 변신은 그녀가 꿈에서 보던 갑작스러운 죽음과 유사하다.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죽은 노동자, 사고로 죽은 아이들 모두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예견하지 못했다. 다만 그녀는 눈사람이 된 순간부터 죽음이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알았다.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는 죽음을 그녀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녹아내리는 동안에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겁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소멸에 이르는 한 걸음 한 걸음을 고스란히 느끼며 묵묵히 정리할 뿐이다. 아들을 안심시키지만,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차분하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점점 사라져가는 그녀의 인생 속에는 세상에서 조금씩 지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후 유년의 기억으로만 남은 그녀의 오빠, 대우받지 못하고 퇴사한 현수 씨 등. 어쩌면 그녀의 상황은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이 자신을 지워버려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다. 살기 위해 버티어 온 나날이지만 소멸 앞에서는 어떠한 항변도 하지 못한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그녀는 어떠한 후회도 없었다고 되뇔 뿐이다.

 마침내 그녀의 시신경까지 모두 녹아내린다. 볼 수 없지만, 그녀는 온 힘을 다해 뒤를 돌아본다. 살아남기 위해 앞만을 바라보며 왔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만큼은 돌아보는 것이 허락된다. 그녀는, 그녀가 아닌 누구라도, 성찰하기에는 너무 늦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력을 다한 반성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롯이 ‘나 자신’만의 것으로 인정시킨다. 그 순간을 위해, 무엇을 돌아보는지조차 모르는 채 녹아내린 눈사람은 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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