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신분으로 3년째 학교 행사 기획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행사 이전에 지겹도록 듣는 질문이 하나 있다. “너 축제 기획하지? 올해 가수 누구 와?”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학우들이 행사에 관심을 두는 것은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아 걱정된다. 사실 가수 초청 행사는 기획단에게 매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혹자는 무대 바로 앞에서 가수를 보니 좋겠다고 하지만, 모두의 안전을 위해 설치된 안전선 앞으로 비집고 나오는 학우들 때문에 공연 내내 소리 지르며 인상 쓰고 있기가 십상이다. 그래서인지 공연이 끝나고 가수가 탄 밴이 유유히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온몸의 진이 함께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허무한 것은 가수 공연이 끝나자마자 썰물처럼 공연장을 빠져나가는 학우들이다. 가수 공연은 피날레의 느낌도 있지만, 그 이후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것이 더 크다. 그러나 축제 분위기가 나는 것은 가수가 무대에 서는 그 한때뿐이고, 끝나고 나면 오히려 더 썰렁한 기운이 돈다.

이런 고민의 주체는 비단 우리 학교 축제뿐만이 아니다. 이제 가수 초청 행사가 없는 대학 축제는 상상할 수조차 없으며, 그것이 축제의 주요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인기 가수를 섭외하는 능력이 축제 기획단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축제 예산 문제로 이어진다. 축제의 극히 일부분인 행사인데도, 전체 행사 비용에서 가수 섭외 비용은 매우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가수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서울 대학가에 자리 잡기 시작한 일회성 놀이기구 또한 문제다. 지난 이 년 간 연세대학교 축제 기간에 설치되었던 ‘대형 미끄럼틀’은 관련 업체에서 오백만 원에 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끄럼틀을 빌리는 데 드는 비용이 우리 학교 축제의 홍보비 전액과 비등한 수준인 셈이다.

연예인 초청과 일회성 놀이기구 등의 소비 중심적인 대학 축제 문화가 시작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과거 대학 축제에는 대학생 대부분이 공유할 만한 ‘청년 코드’가 숨어 있었다. 70년대에는 통기타 문화, 80년대에는 운동권 가요 문화 등 하나의 코드를 놓고 ‘대동제’, 즉 ‘모두 하나 되는 축제’를 만들어나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의미가 퇴색하고 다양성의 시대가 열렸다. 이와 함께 아이돌 문화와 같은 대중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대학 문화는 갈 곳을 잃고 이에 편승하게 되었다. 여기에 발맞춰 대학 축제 또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다. 대학생들이 단순 문화 소비자로 전락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소비 중심적인 대학 축제 문화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기도 한다. 대부분의 대학 축제가 그러한 성격을 띠는데다, 요즘 대학생들을 묶어 부를만한 하나의 코드가 없으니 그렇게 치부할 수도 있겠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흐름’ 때문에 대학 축제가 무늬만 대학 축제이지 속은 일반 유흥 행사와 다름없이 변질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축제의 주체는 그 이름에서도 보이듯이 바로 ‘대학생’이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수의 대학생들은 그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수동적인 관람의 형태로만 축제를 즐긴다.

대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 그보다 더 어릴 때 가졌던 순진한 이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조금씩 알아나가게 된다. 따라서 때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부유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부에 치인 일상은 그들이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는 한 그저 그렇게, 무의미하게 지나갈 때가 잦다. 그런 의미에서 대학 축제는 학생들이 그러한 안이한 일상 속에서 벗어나 마음속에 숨겨둔 열정, 패기, 젊음 등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 축제는 TV의 연장선 혹은 기업들의 홍보 장소 등 일반 유흥 문화의 복사판으로 변질된 것이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당사자인 대학생 스스로 일어나, 주인 잃고 떠도는 대학 축제를 되찾아 와야 하지 않을까.

행사준비위원회 상상효과 회장
강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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