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없는 손에 카드가 생겨나고, 손수건이 비둘기로 변해 날아간다. 불타는 상자 속에서 사람이 나타나거나 단단히 잠긴 자물쇠를 풀고 탈출하기도 한다. 마술사의 손에서 탄생한 환상은 관객에게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마술사는 아름답고 우아한, 또는 우스꽝스럽고 즐거운 공연을 통해 관객을 자신만의 세계로 초대한다. 함께 울고 웃으며 공감하는 마술의 세계는 어느새 단순한 오락거리를 넘어 종합예술로 발돋움하고 있다.


초능력 혹은 악마의 장난

 마술은 인간의 초자연적인 믿음에 기원한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설명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현상들을 주술로 칭해왔다. 마술사는 그런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사람들을 칭하던 말로, 주술사나 사제, 점성술사 등이 포함되었다. 마술사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2700년의 이집트 벽화에 나타나 있으며, 기원전 1700년에는 공연 내용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의 마술은 손안의 공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눈속임부터, 동물의 머리를 잘랐다가 다시 붙이는 마술까지 다양한 형태였다. 이후 마술은 하나의 오락거리로 자리매김했고, 궁정 마술사가 배치되기도 했다.

 중세는 마술의 쇠퇴기였다. 종교가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은 사회에서 마술은 이단의 상징이자 마녀의 전유물이었다. 대대적인 마녀사냥 속에서, 마술은 떠돌이 재주꾼들의 손에서 그 명맥을 겨우 이어가게 된다. 이런 탄압 속에서 중세의 마술은 서커스의 곡예와 가까운 방향으로 변화한다. 한편, 그 근간이 되는 주술적 상상력은 연금술의 기본 정신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TV 화면에 마술사가 등장하기까지

 마술은 18세기에 이르러 다시 양지에 나온다. 마술은 귀족 등 상류층들을 중심으로 하나의 공연 형식으로 유행하였고 프로이센에서 활동했던 마술사 조셉 피네티(Joseph Pinetti)로 대표되는 몇몇 마술사들은 이름을 날렸다. 당대 마술사들은 쇼맨십과 박학한 지식으로 무장한 고급스러운 재주꾼이었다. 조셉 피네티 등의 인기에 힘입어, 마술은 18세기 후반부터 연극과 서커스를 밀어내며 공연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마술에 쓰이는 속임수나 무대 장치에 대한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 시기이다.

 19세기, 시계공 출신 마술사 로베르 우댕(Robert Houdin)이 정교한 기계장치를 마술에 적용하기 시작하면서 마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근대 마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베르 우댕은 정교한 무대 장치를 사용한 수많은 트릭을 개발한다. 이후 20세기까지 해리 후디니(Harry Houdini), 다이 버논(Dai Vernon), 그리고 데이비드 카퍼필드(David Copperfield)로 이어지는 마술사의 계보는 마술의 대중화, 세분화를 이끌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해리 후디니는 온갖 수갑과 자물쇠를 풀고 탈출하는 탈출 마술을 수없이 개발하고 발전시켰으며, 후디니를 속인 유일한 마술사로 유명한 다이 버논은 현대 카드 마술의 기초를 마련했다. 후디니와 다이 버논에 의해 마술은 커다란 무대에서 이뤄지는 스테이지 마술과 작은 테이블을 두고 관객과 호흡하는 클로즈업 마술로 나눠진다. 좀 더 감각적인 접근을 추구하는 일루젼 분야의 대가 데이비드 카퍼필드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통하거나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등 거대한 규모의 그랜드 일루젼을 선보인다. 이 외에도 멘탈리즘, 팔러 마술 등으로 세분된 마술은 창의적인 발상과 체계적인 형식을 토대로 종합예술로 발전한다.

 현대 마술은 미디어를 통한 관객과의 적극적인 접촉을 추구한다. 오늘날 마술은 대중에게 거부감없이 다가가는 예술 분야 중 하나이며, 마술사들은 TV 방송과 인터넷 등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한다. 영상 기술을 포함한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카메라 트릭과 같은 새로운 장르의 마술이 등장하는 한편, 전통적인 마술 분야는 여러 예술적, 실험적 시도를 통해 발전해나가고 있다. 마술은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연구와 창작이 이어지고 있는 분야이다. 과거보다 관객들의 기대가 높아졌기 때문에, 마술사들은 관객들에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려 더 지능적이고 아름다운 연출을 개발한다.


예술로 마술을 완성하다

 마술은 음악과 같은 다른 예술적 요소와 결합하며 완성된다. 음악은 마술 공연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되는 요소이자 연출을 위한 가장 중요한 장치이다. 18세기 말부터, 음악은 마술 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관객을 집중시키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음악은 관객들이 마술사의 감정에 이입하도록 도왔다. 또한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효과음을 사용하는 등 연출의 다양성을 더하기도 한다. 적절한 음악과 조명, 무대 장치의 조화는 다른 대부분의 공연 예술이 그렇듯, 마술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연출의 완성을 위해 음악, 영상 등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예술 작품은 마술 공연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마술이 단순한 트릭을 넘어 마술사의 이야기를 전달하게 되면서, 마술은 영화나 소설 등에서 영감을 거부감없이 수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데이비드 카퍼필드는 자신의 마술이 많은 영화와 영화감독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말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마술사 최현우는 유명한 추리소설 <셜록 홈스 시리즈>를 모티프로 한 마술 공연을 오랫동안 진행하고 있다. 일루셔니스트 이은결 또한 매년 공연을 통해 자신의 작품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는데, 그림자 연극이나 뮤지컬 등에서 영향을 받은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마술의 상상력, 예술에 녹아들다

 마술이 음악, 문학과 같은 다른 예술 분야의 영향을 받았듯이, 다른 많은 예술 분야도 마술 또는 마술적 상상력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20세기 라틴 아메리카의 주된 문학 사조 중 하나인 마술적 사실주의는 현실과 비현실의 혼합으로, 사실과 마술이 얽힘을 당연하게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과테말라의 소설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Miguel Angel Asturias)로 대표되는 마술적 사실주의 작가들은 완전히 현실적인 설정 아래 일어나는 환상적인 사건들로 마치 꿈과 현실이 겹쳐진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넓은 의미의 마술적 상상력은 전설이나 신화, 초자연적인 믿음을 모두 포함한다. 예술가들은 마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가상의 존재를 창조해내거나 그들의 신앙을 표현한다. 신과 신의 사자들을 그려낸 많은 종교적 작품은 마술적 상상력에 기초하며, 신앙을 더 널리 전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미 그들의 생활에 깊게 자리한 종교뿐 아니라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이 예술가들의 주된 영감이 되기도 한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그림 속 비너스 여신과 요정들,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천지창조 등의 작품들은 마술적 영감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현대 예술가 중에는 마술적 상상력이 아닌, 마술 그 자체에 영향을 받는 경우도 있다. 미국의 예술가 마크 왈러(Mark Olivier Waller)는 전시회 <Transported Man>을 통해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마술을 제시했다. 마크 왈러는 예술가가 자신의 세계와 생각을 그림 등의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과 마술사가 속임수를 통해 환상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같다며, 마술을 통해 예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술 공연의 한 장면을 조형물로 표현하는 등 마술에서 영감을 받은 여러 작품을 전시했다.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마술 공연

 18세기 이후 마술이라는 장르가 공연장에 자리 잡으면서, 마술은 공연 예술로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마술사의 쇼맨십과 대사들은 잘 짜인 한 편의 희극을 이룬다. 음악은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마술사들은 음악에 맞추어 대사를 읊거나 춤을 추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신비로움을 극대화하기 위해 문학적, 극적 요소를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마술사들이 개발한 정교한 무대 장치들은 현대 연극, 뮤지컬과 같은 공연 예술 분야의 발전에 기여했다.

 20세기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한 마술은 하나의 복합 예술 분야로 인정받게 되었다. 다양한 규모의 공연에서 많은 클로즈업 마술사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기 시작했다. 스테이지 마술사들은 말 대신 음향과 연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아름다움, 즐거움, 슬픔과 같은 가치를 고스란히 전달했다. 20세기 후반부터 데이비드 카퍼필드 등에 의해 시도되었던 일루젼 분야의 마술은 관객들에게 환상을 현실로 만든 것 같은 경이로움을 선사하기도 했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미디어와 공연 기술의 발달로 이전까지 없었던 수많은 시도가 이뤄져 왔다. 대부분의 마술사들이 자신의 예술 세계를 공연을 통해 표현하고, 미디어를 통해 관객들에게 직접 다가간다. 때로는 교훈적인, 때로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메시지를 담은 마술은 또 하나의 예술 분야로 관객 앞에 성큼 다가서고 있다.

 마술은 관객의 존재에 의해 다른 예술과 차별화된다. 마술사는 항상 관객과 함께 소통하고, 관객의 반응을 이용하여 마술을 만들어간다. 마술은 마술사 한 사람만의 예술이 아니다. 관객들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작품이다. 관객의 눈앞에서 비현실적인 것을 재현하고, 그 불가능을 목격하면서 관객은 지적, 시각적 즐거움을 느낀다. 뛰어난 스토리와 연출과 함께할 때 마술은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며, 마술사의 메시지를 공유한다. 마술의 가장 큰 예술적 가치는 관객과 함께할 때 만들어진다.


마술 공연 즐기기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우리는 주변에서 마술 공연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과 TV, 또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마술사들은 우리에게 마술을 보는 그 순간을 즐겨 달라고 당부한다. 잠시 현실에서 멀어져도 좋으니, 마술 그 자체와 공연에 담긴 메시지에 집중해 달라며 부탁한다. 속임수를 알아내고 분석하려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여기저기 두리번대는 시선은 한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기 쉽다. 물론, 즐기는 방법에 정해진 것은 없기에 각자의 방식대로 마술을 즐기면 된다.


 우리나라의 한 유명한 마술사는 자신의 공연을 어른이 되어버린 어린아이를 위한 공연이라고 소개한다. 마술은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쯤 꿈꾸었을 환상의 세계를 다시금 눈앞에 보여준다. 이미 나이 들어버린 우리는 그것이 현실이 아님을 잘 알고 있지만, 마술을 즐기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있는 그대로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을 바라볼 때, 진정한 마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


자문 | 마술 잡지 아르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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