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 총학생회 <받침>이 며칠 전 사퇴했다. 회장단은 지난 8월에 재신임 정책투표를 할 것이라는 약속을 충실하게 지켜 투표를 진행했으나, 유효투표수의 과반을 넘기지 못하고 투표 결과에 따라 사퇴를 선언하였다. 자신들이 약속했던 재신임투표를 원칙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 그 결과에 승복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또한,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려 했던 일들의 배경에 있는 철학과 노선, 그리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에도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재신임 투표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사실 명확하게 잘라 규정하기 쉽지 않다. 재신임 투표의 정확한 명칭은 ‘하반기 총노선 인준 정책투표’였고, 회장단은 이 결과를 자신들의 재신임과 연결시키겠다고 약속하였다. 상반기와 하반기를 떠나서, 학생회의 총노선은 회장단이 선출되었던 총학 선거를 통해 이미 지지를 받았던 것이 아니었는가. 중간에 논란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을 지지했던 표를 회수하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잘못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같은 투표 방식이라 하더라도 회장단 선출을 위한 투표와 정책투표는 적어도 앞으로는, 그리고 필요하다면 학생회칙상으로도, 명확하게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이번 정책투표에서 여전히 참여율이 저조했던 것도 생각해 볼 점이다. 총투표 수가 635, 총투표율이 15.4%로 유효투표는 되었으나, 전체 학생 수에 비하여 매우 적은 수의 학생들만이 투표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학생 자치가 집행부의 선출로만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진정한 자치를 원만하게 이루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렵겠는가. 학생들이 자치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손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만 학부 총학생회에 소소한 요구를 하는 것은 학생들의 소중한 자치기구인 총학생회를 포퓰리즘으로 빠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어떤 사회 집단에서든, 자치에는 책임이 따른다. 리더들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밑으로부터의 책임, 즉 참여할 책임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대학의 구성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지 않으면 대학 자치가 실현될 수 없는 것처럼, 학생 자치도 하나 하나의 구성원들이 무관심하여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는다면 가능하지 않다. 형식적으로 집행부를 선출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겉모습만 가진 허울 뿐인 자치가 되어버릴 것이다. 총학생회 뿐만 아니라 대학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만드는 여러 자치 기구, 그리고 대학 자치의 핵심 기구인 대학 평의회에도 이 원칙은 적용되어야 한다. 어떤 기구의 권한이 명확한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도 분명히 있어야 하고, 그 책임은 몇몇의 리더로 구성된 리더들만이 아니라 공론장에 참여할 책임을 가진 모든 구성원들이 나누어 가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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