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대비하는 일은 꽤 어렵습니다. 예고된 비일지라도 별로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정신없는 이른 아침, 졸린 눈으로 기상 예보를 확인하고도 우산을 깜박하기가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면 덜렁대던 아침의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우산이 늘었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방에 도착하자, 수많은 우산이 어김없이 찾아온 새 가족을 환영합니다.

 다들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필자의 이야기입니다. 비가 내릴 때마다 우산도 하나둘씩 늘어가기 십상입니다. 게다가 우산 값은 여간 비싼 것이 아닙니다. 우산 덕에 비어가는 지갑을 지켜볼 때면 마음 한 켠이 아려옵니다. 이러한 우리들의 고충에 공감하였는지, 교양분관(N10)에 우산 대여 서비스가 이번 가을 학기에 새로이 등장했습니다.

‘우산 빌려드립니다. 필요 시 사용하시고 반납해 주세요. -교양분관-’

 약 한 달 전, 교양분관 정문 출입 게이트 옆에 위치한 우산 박스에는 위의 문구와 함께 십여 개의 우산이 담겨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일까요. 글을 쓰는 9월 29일 현재, 우산 박스에는 단 하나의 우산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산을 빌려 갔던 학우들이 미처 다시 가져다 놓지 못한 것일까요? 의문만 남습니다.

 지난 이 주일간 매일 교양분관에 들려 우산 박스를 유심히 관찰해 보았습니다. 이주 전에도 텅 비어있던 박스에 우산이 돌아올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동안 비가 거의 오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개인정보를 활용하여 대여 및 반납 여부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도서 대출 서비스나,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공용자전거 무인대여 시스템 ‘타슈’와는 극명하게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예고 없이 반납이 미루어질 시 벌금을 지불해야 하는 이러한 시스템의 경우, 이용자들은 대여한 물품을 소유하지 않고 정해진 시일 내에 반납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단지 학우들의 양심(良心)에만 반납 여부를 맡긴 ‘우산 빌려드립니다’ 사업은 위와는 다른, 아무도 반납하지 않았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습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내리지 않은 비에 우산을 빌렸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죠. 우산이 제자리를 되찾고 새로운 학우들이 다음 갑작스런 비를 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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