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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발전은 효용성에 의한 것인가 호기심에 의한 것인가.
[453호] 2018년 10월 02일 (화) 오범석 수리과학과 17학번 kaisttimes@gmail.com

 인간은 어떤 것을 만들 때 목적을 갖기 마련이다. 그 목적이라는 것은 다양한데, 예를 들어 가위를 만든 목적은 무언가를 자르는 것이고, 테이프를 만든 목적은 무언가를 붙이기 위함이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목적을 판단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과학이다. 인간에 의해 정의되고 발전되어 왔음이 분명한 과학은, 어떤 이유 때문에 처음 시작되었고, 또 발전해왔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효용성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했다는 것, 두 번째는 호기심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전했다는 것이다.

 과학이 왜 만들어지고 왜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대해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양이 너무 많아 모든 것을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수많은 과학 중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평가받는 때와, 발전되었다고 평가받을 때의 과학들을 살펴보려한다. 그것들을 분석하면 왜 과학이 시작되었고 왜 만들어졌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과학이 왜 시작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해보자. 우리는 과학이 시작되었다고 평가받는 때가 언제인가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것에도 많은 주장들이 있지만, 사람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과학과 수학의 시작이 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가  서로의 발전에 큰 몫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갈릴레이의 사고실험 같이 직관만을 사용하는 것도 과학의 큰 부분이지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개념적인 것에서 시작하더라도 결국 분석을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어떠한 수학적 관계식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전자기의 예를 들어보면 자속을 단위 영역을 지나는 자기력선의 수에 비례하는 양이라 정의하고, 자기장을 자속에 영역넓이를 곱한 값으로 정의하는 등 수식을 통해 정의를 하게 된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개념적인 것에서부터 도입이 되더라도 정확한 정의를 위해서는 수학이 필요하기 하며, 이는 수학이 갖는 객관성 때문이다. 그러면 수학이 시작된 때는 언제일까? 숫자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아라비아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사고 팔 때라고 한다. 하지만 단지 수를 기록했을 때가 수학이 시작된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같다, 크다, 작다 같은 수학적 개념들이 생겨났을 때가 수학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수학적 개념들은 사유재산이 생겨나 양을 측정하고 거래가 필요해졌을 때 처음 등장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 시기가 대략 청동기 시대이기 때문에, 과학이 시작된 때는 청동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청동기 시대의 과학들에 대해 살펴보자. 가장 먼저 한 시대의 이름이기도 한 ‘청동기’가 있다. 다시 말해 ‘주조과학’이다. 주조를 과학이라고 하는 데에는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원래 있던 물질들로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점이다. 청동이라는 것은 구리와 주석을 섞어 만들어진 새로운 금속이다. 청동을 만드는 작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둘을 섞을 때의 비율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동기 시대 사람들은 가장 적절한 비율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을 것이고, 그 과정 중에서 필요에 따라 어떤 비율이 가장 단단한 청동기를 만드는지, 어떤 비율이 가장 광택이 나는 비율인지 등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단단한 청동기는 무기에, 광택이 나는 청동기는 거울에 사용했을 것이다. 이런 비율들을 찾기 위한 과정들이 모두 과학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또 주조를 위해서는 거푸집과 도가니가 필요한데, 이런 도구의 개발 또한 과학의 일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조를 과학이라 말한다. 다음으로는 농사가 있다. 농사는 자연적으로 자란 작물을 먹는 채집과는 달리 인위적으로 먹기 위해 작물을 키우는 것이다. 이는 씨앗에서부터 작물이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한 이후에도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단순히 물을 주면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얼마를 주면 잘 자라는가, 물가 주변에서 더 잘 자라는가, 언제부터 먹을 수 있는가 등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탐구의 과정들이 모두 과학이고, 따라서 농사도 과학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별자리가 있다. 이집트에는 나일 강의 범람시기를 별을 보고 판단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과정에서 행성과 별의 발견, 행성과 별의 이동 등 여러 과학적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의미에서 이것 또한 과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말한 청동기 시대의 과학 세 가지는 청동기 주조, 농사, 그리고 별자리 관측이다. 물론 그 외에도 많은 과학이라 사료될 만한 것들이 있지만, 우선 이 세 가지만 고려하자. 우리는 청동기 시대의 과학으로부터 과학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청동기 주조, 농사, 별자리 관측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과학이 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농사는 필요에 의해 시작되었다. 농사가 시작된 이유는 왜 작물이 자랄까라는 호기심이 아니다. 인류는 식량을 채집이나 사냥이 아닌 더 안정적인 방법을 통해 얻으려고 했다. 그 결과 농사라는 방법을 만들게 된 것이다. 따라서 농사는 효용성에 의해 시작된 것이고, 발전되었다. 청동기 주조는 돌을 이용하다가 다른 물질이 필요한 인류가 청동기라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혹은 우연히 청동기가 발견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만드는 방법, 어떤 비율로 만들어야 하는가 등은 효용성에 의한 발전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별자리 관측은 호기심에 의해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별의 위치가 매일매일 조금씩 다르다는 것에 호기심을 느껴서 말이다. 다만 그 후에 별자리를 관측하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이 아니라 별자리를 통해 자연환경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과학을 통해 본 과학이 생겨난 목적은 효용성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이 처음 만들어진 목적이 효용성인 이유가 뭘까? 그것은 과학이 만들어졌을 시기가 청동기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는 생존이 눈앞에 있는 가장 큰 문제였고, 그렇기에 당장 필요한 것들에 대한 탐구가 먼저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크게 발전했던 이유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겠다.


 다음으로 이제 과학이 왜 발전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과학이 효용성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해서 과학이 발전한 이유도 그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바로 앞에서 말했듯 생존을 위한 것들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호기심이 있었더라도 그것을 해결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동기 시대가 지남에 따라 어느 정도 생존이 보장받을 수 있어지며 해결할만한 여유가 생겼다. 이제 과학이 왜 발전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 흔히 큰(혹은 엄청난) 과학 발전이라고 불리는 과학, 혹은 기술들이 생겨난 이유를 파악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흔히 큰 과학발전이라 불리는 것들은 과학혁명 시대에 나온 것이 많다. 과학혁명은 16, 17세기를 거치는 동안 그리스 시대의 과학을 뛰어넘어 새로운 과학의 토대가 만들어진 것을 의미하며,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부아지에의 산소의 발견, 뉴턴의 운동법칙,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미적분학, 패러데이의 전자기 유도법칙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과학혁명 이후에도 다윈의 진화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많은 과학적 발전이 있었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살펴보며 우선 각각 왜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과학혁명 시기들의 과학 중 미적분학을 먼저 살펴보자. 미적분의 개념이 처음 도입된 곳은 이집트라고 알려져 있다. 나일 강이 범람한 이후에 주변 땅의 모양이 바뀌어 정확한 땅의 넓이를 잴 수 없어 땅 주인들끼리 싸우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다툼을 없애기 위해 어떤 모양의 땅이든 넓이를 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그 과정에서 미적분학이, 정확히는 적분이 도입되었다고 한다. 한편 그런 미적분학을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과학 혁명 시기에 미분을 정의하였고, 후에 리만이 적분의 정확한 정의를 세우는 등 점점 발전해나갔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도입한 이유는 무엇일까? 뉴턴은 물리 법칙을 설명하고 수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뉴턴이 만든 운동 법칙은 세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외부 힘이 가해지지 않을 경우 질량중심이 등속도로 움직인다는 관성의 법칙, 두 번째는   로 표현되는 가속도의 법칙, 세 번째는 물체 A가 물체 B에 힘을 가하면 물체 B도 물체 A가 같은 크기의 힘을 가한다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뉴턴이 제시한 이 운동법칙들은 각 순간순간의 물체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그래서 직선이 아닌 곡선을 따라 움직이는 물체들에 대해서 속도와 가속도를 표현하기 위해 미분을 도입해야 했다. 한편 라이프니츠는 함수의 성질을 보다 잘 파악하기 위해 미적분을 도입하였다. 둘의 목적은 분명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미적분학을 도구로써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즉, 미적분학을 하나의 학문으로써 보다는 각각 물리법칙을 위한, 함수의 성질을 알아보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미적분학은 효용성에 의해 발명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으로는 결국 각각 물리 법칙과 함수의 성질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는 점에서는 호기심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리드리히의 플로지스톤설을 반박하는 라부아지에의 산소발견 또한 과학혁명 시기의 큰 과학발전 중 하나다. 산소 뿐 아니라 많은 원소들을 구분해낸 라부아지에는 화학의 업적에 큰 공헌을 한 사람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라부아지에가 산소에 대해 연구하게 된 원인은 프리드리히가 플로지스톤설에 대해 발표하는 내용을 듣고 나서이다. 프리드리히는 물질이 연소하는 것은 플로지스톤과 결합하는 것이고, 그렇게 때문에 무게가 무거워진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금속이 연소한 후 오히려 가벼워지는 것을 잘 설명하지 못해 금속에 대해서는 음의 무게를 갖는 음의 플로지스톤이 결합하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라부아지에는 이를 듣고 설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연구를 진행하게 되어 현재 산소라 불리는 원소를 정확히 규정해 내었다. 라부아지에는 프리드리히를 반박하고 싶어서 연구를 진행한 것일까? 아니다. 그는 프리드리히의 설명을 듣고 정말 그럴까라는 호기심을 갖고 연구를 진행했을 것이다. 따라서 산소의 발견 또한 호기심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지구가 돈다는 태양중심설은 당시 중교가 지배하던 때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위대한 발견이라 할 수 있다. 과학혁명 시대보다 50-100년 정도 전 사람인 그는 태양중심설을 주장한 것 외에도 물리법칙을 제시해 후에 뉴턴이 물리법칙으로 정리하기도 하였다. 공을 굴리면 다시 원래 높이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움직일 것이라는 사고실험에 관한 일화 또한 유명하다. 그가 이런 많은 연구들을 진행했던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어떤 효용성을 위한 것이 아닌 그의 호기심 때문이다. 따라서 갈릴레이가 연구를 하게 된 이유는 호기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과학혁명 이후에 뉴턴의 물리법칙에 이어지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보자.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법칙이 틀렸다고 생각하여 새로운 물리법칙의 이론을 내놓았고, 실제로 그의 이론이 잘 맞아떨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예시들이 많이 나와 그의 이론을 증명해주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무엇 때문에 나온 것일까? 아인슈타인은 그의 상대성 이론을 어딘가에 쓰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다만 과연 뉴턴의 이론이 과연 옳을까라는 호기심 때문에 그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공부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옳지 않다는 것이었고, 상대성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상대성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은 호기심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중세 시대에도 과학발전이 이루어진 부분이 하나 있는데, 바로 연금술이다. 연금술은 다양한 물질들을 결합해 금을 만들려는 노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금을 만들면 부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한 연금술은, 근대 화학자들의 시초가 되었고, 그들이 사용한 실험 도구와 실험 결과들이 후대에 큰 도움이 되었다. 연금술은 금이라는 목적을 갖고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용성 때문에 연금술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금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 그 후에는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연금술이 시작한 이유고 발전한 이유이다. 따라서 연금술 또한 호기심 때문에 발전했다고 할 수 있겠다.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연구가 시작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의 할아버지에게서부터 진화론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그의 할아버지인 에라스므스 다윈은 칼 랭노의 식물도감을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았고, 그래서 그의 집에는 많은 도감들과 표본들이 있었다. 다윈은 그런 그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생물의 분류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또한 그는 시계공 이론을 듣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여 다른 이론을 생각하게 되었고, 갈라파고스 섬으로의 탐험을 토대로 진화론을 만들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나오게 된 것일까? 그것은 효용성이 아니라 호기심에 의해서이다. 그의 경험에 기반한 호기심에 의해서 진화론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보면 과학의 발전은 호기심에 의해서라고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는데, 증기기관이 그것이다. 증기기관은 제임스 와트가 발명하기 이전에도 많은 이들이 발명하였는데, 이는 호기심이 아니라 효용성에 의해서 발명된 것이다. 또 증기기관의 발명이 과학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고, 과학 원리도 많이 사용되었다. 따라서 증기기관은 효용성에 의해 만들어진 과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과학의 부분들을 살펴봤는데, 대부분이 호기심에 의한 과학인 것을 알 수 있다. 증기기관을 효용성의 예시로 들었지만, 사실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기관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호기심을 갖고 만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여기까지의 예시를 살펴보고 난 후 나의 결론은 과학은 호기심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이다. 비록 효용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그 시작은 호기심이라는 것이다. 그 원리를 완전히 생각하고 발명한 게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방향을 잡는 데에서, 무엇을 사용할지 판단하는 데에서 이미 호기심이 들어있는 것이다. 나만 보더라도 그렇다. 시간이 흘러 내가 과학발전에 이바지한 때가 되면 기억이 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내가 이룰 모든 성과들은 처음 공부를 시작하게 된 호기심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결국 모든 과학발전은 호기심에 의한 것이다.


 과학발전이 호기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단지 그 자체의 의미만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앞으로 인류는 계속해서 과학을 발전시켜 나갈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이 긍정적 의미인지 부정적 의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인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궁금해 할 것이고 그것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할 것이며, 그에 따른 과학발전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서 호기심으로부터 과학발전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통해 우리는 인류의 과학기술은 절대 멈춰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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