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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동심을 위하여
[453호] 2018년 10월 02일 (화) 하예림 기자 yerimha13@kaist.ac.kr

 동화와 어른. 이 두 단어는 역설적인 관계에 놓여 있다. 최근 6달간 교보문고 종합 도서 판매량 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1977년의 어느 날 A.A 밀른의 동명 소설 <위니 더 푸>를 원작으로 태어난 애니메이션 <위니 더 푸>는 지난 수십 년간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행복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어린이들은 이제 어른이 되었습니다.”이는 책이 고려하는 연령층이 성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안도현 시인은 그의 책 <관계>의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여기에 묶은 글들은 소설과 동화와 에세이와 시의 중간 어디쯤을 들락거리고 있는, 그러나 그 어디에도 소속되기 싫어하는 욕심의 산물입니다. (중략)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요점은 그 상하좌우의 한복판입니다.”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말은 조금 낯설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이 동화들에 호기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감성적인 딜레마, 어른을 위한 동화

 ‘어른을 위한 동화’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다양한 잔혹 동화이다. 흔히 알려진 <신데렐라>, <백설 공주> 등의 이야기는 본래 어린이가 아닌 어른을 위한 작품이었다. 특히 그림 형제가 집필한 <그림 동화>는 독일 민담을 모아놓은 작품집이기 때문에 잔인하거나 외설적인 이야기가 여과 없이 실려있다.

하지만 ‘잔혹 동화’는 오늘날 주목받는 어른 동화와는 다르다. 최근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는 책들은 오히려 창작 동화나 에세이에 가까운 작품들이다. 1996년 발행된 안도현 시인의 <연어>에서부터 올해 발행된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까지, 약 13년간 어른 동화의 도서 시장 점유율은 점진적으로 증가해왔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비교적 최근에 화제가 되긴 했지만, 성인 독자들에게 생소한 장르는 아니다. <어린 왕자>와 같이 폭넓은 연령층에 사랑받아 온 동화들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의 서문에서 작가는 본인의 친구인 ‘한 어른’에게 헌사를 바치며, 이 동화 역시 성인 독자를 고려하고 있다. 이후에 출판된 어른 동화들과 <어린 왕자> 사이에서 쉽게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키워드로 보는 어른 동화: 그림

 어른 동화의 주인공은 글이 아니다. 글은 그저 도움을 주는 목소리로 자리할 뿐, 이야기를 눈앞에 그려내는 것은 삽화의 역할이다. 책 <연어>에서 은빛연어가 긴 여정을 떠나는 배경인 강물의 풍경화는 큰 존재감을 차지한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시리즈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 등은 각각 1970~1990년대생들이 어린 시절 접했던 애니메이션 <곰돌이 푸>와 <보노보노>의 그림을 잠언을 더해 제작되었다. 교보문고의 집계에 따르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의 독자 중 43.7%가 30대이다.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동화, 그림책이 증가했음은 아동도서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7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 출품된 조원희 작가의 <중요한 문제>는 원형탈모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는 수영강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인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담은 그림책의 등장은 동화와 그림책이 더는 아동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한다. 그림책의 수요가 증가하자 아르테 출판사에서는 톤 텔레헨의 동화 <고슴도치의 소원>에 김소라 일러스트레이터의 그림 15컷을 추가하여 출판하기도 했다.


키워드로 보는 어른 동화: 서정

 어른 동화는 단순하다. 꼬여있지 않은 구성과 담담한 문장, 잔잔한 흐름은 독자를 끌어당긴다. 독자들은 화자의 말 안에 숨은 의도를 파악하려 애쓰거나 화자가 전달하는 지식을 받아들이려 진을 빼지 않아도 된다. 흥미로운 특징은 어른 동화에 서정적인 어휘가 높은 빈도로 등장하는 것이다. “살을 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 왔다. 어린 매화나무는 너무나 추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눈물은 겨울바람에 금세 얼어버렸다.” 정호승 시인의 어른 동화 <당신의 마음에 창을 달아 드립니다>에서 인용한 글이다. 정호승 시인은 창비 출판사와의 인터뷰에서 “서정성에는 영원성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덧붙여 어른 동화는 인물들의 감정을 강조한다. 자세한 감정 묘사는 독자에게 글을 읽는 순간의 감정에 충실할 것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원재훈 시인의 동화 <만남, 은어와 보낸 하루>는 화자의 감정 변화로 상황을 설명한다.


키워드로 보는 어른 동화: 위로

 어른 동화의 화자들은 역경을 극복하여 승리를 얻어내지 않는다. 이야기 내에서 인물들은 성장을 거듭하지만, 그 끝에는 자아의 발견과 감정에 대한 솔직함만이 자리한다. <곰돌이 푸,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와 같은 작품은 오히려 사회가 강요하는 성공을 일구어내지 못해도 ‘괜찮다’라는 위로를 건넨다. 어른 동화 중 ‘위로’, ‘치유’를 강조하여 홍보하는 작품이 다수라는 점은 성인 독자들이 특히 따뜻한 이야기의 동화를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린 왕자>, <나는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의 화자는 바쁘게 일하는 인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본다. 독자들은 여유롭게 움직이는 주인공을 보며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다.


자라는 어른, 그들의 시간을 잠시 멈추다

 어른 동화는 소설, 시, 산문, 수필, 각본 등으로 명확히 구분되던 문학 장르의 벽을 허물고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높은 효율을 향해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른 동화의 등장은 역행으로 보일 수 있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은 성인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가 크다는 점을 암시한다. ‘순수하지 않은’, ‘철들고 성숙해진’ 어른이 된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함으로 마주했던 세상은 동화 속에는 여전히 남아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동화 속 아름다운 왕국은 그 자리에 멈춰 어른을 기다려줄 테니까.


<어린 왕자> - 생텍쥐페리

 2011년 기준 2억 부 이상 판매된 책으로, 가장 대표적인 어른을 위한 동화책이다. 비행기 조종사가 어느 날 불시착한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순수한 시각으로 질문하는 어린 왕자와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감동을, 때로는 깨달음을 준다. 국내에서는 다양한 번역본, 필사책, 컬러링북, 한영 합본 등의 형태로 출간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연어> - 안도현

 강물을 거슬러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알을 낳는 연어의 특성을 주제로 ‘은빛연어’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다른 연어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는 ‘은빛연어’, 그를 유일하게 사랑해주었던 ‘누나 연어’, 은빛연어에게 사랑을 깨닫게 해준 ‘눈맑은연어’, 강으로 향하는 길에 마주한 ‘빼빼마른연어’, ‘등굽은연어’, ‘족집게연어’ 등 의인화된 다양한 연어들을 보며 독자는 연어와 주변 인물을 대응시켜 이입할 수 있다.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 - 외르그 슈타이너

 겨울잠에서 깨어난 곰은 숲이 있던 자리에 생긴 공장과 파괴된 자연을 마주한다. 사라진 보금자리에 대한 걱정도 잠시, 공장의 사람들은 곰을 데려와 일하지 않는다며 타박한다. 졸지에 ‘게으름뱅이’가 되어버린 곰은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일자리를 찾아 헤맨다. 다시 돌아온 겨울,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던 곰은 하얀 눈 속에서 모습을 잃는다. 독자들은 곰에게서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의 현실과 그 속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을 발견한다.


<에드워드 툴레인의 신기한 여행> - 케이트 디카밀로

 한 소녀에게 사랑받던 도자기 토끼 인형이 바다에 빠지면서 겪게 되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어부에 의해 구출되고, 다시 버려지고, 스스로 세상의 왕이라 칭하는 어니스트를 만나고, 노숙자와 함께 떠돌아다니고, 아버지로부터 폭행당하는 소년의 집에서 지내는 등 다사다난한 여정을 겪은 후 인형 수선공을 만나 주인을 기다리던 중 자신의 원래 주인이었던 소녀와 재회한다. 처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에드워드가 모험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 독서 포인트이다.


 어른이기에 확신이 있고 능숙해야 하는 사회인들에게, 어른 동화는 그 짐을 잠시 받쳐주는 친구이다. 읽는 순간에는 나를 정의하는 무거운 이름표들을 하나하나 떼어내고 온전히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 기분이 가장 중요하고 나라는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에, 지친 마음들은 어른 동화를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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