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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입다
[451호] 2018년 09월 04일 (화) 류제승 기자 ryjs9810@kaist.ac.kr

 

 전시장에 진열된 유명 패션 브랜드의 옷과 런웨이 위를 걷는 파격적인 의상의 모델들. 현대인들에게 패션은 예술의 한 분야로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 과거, 패션은 단순하게 시대 의복 양식의 흐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인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예술과 맞닿아있는 패션은 예술 작품의 소재로, 또는 전위적인 표현을 담은 예술 그 자체로 변화했다. 서로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되어주는 패션과 예술은 지금까지도 마네킹과 캔버스 위에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가, 패션을 선도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의상은 단순히 사람의 몸을 가리고 보호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의상은 계급을 표시하는 수단이자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장치였다. 귀족은 화려하고 복잡한 장식이 달린 옷을 통해 자신을 평민과 구분했다. 오랫동안, 패션은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몇몇 화가는 시대의 흐름과 양식을 화폭에 담았다. 인물을 소재로 한 많은 그림은 그 시대의 복장 양식과 유행을 보여준다. 르네상스 이후 다수의 귀족이 자신을 초상화로 남기고 싶어 했고, 그들의 의상은 많은 화가의 작품에 담겼다. 

 18세기 이전의 화가들은 곧 디자이너이자 패션의 전도사였다. 작품 속 인물의 패션은 상류층 유행의 첨단을 달렸고, 화가들은 작품을 통해 이를 널리 퍼뜨리는 역할을 했다. 르네상스 화가들은 의상의 형태는 물론 배경을 장식한 태피스트리 섬유의 패턴까지도 직접 디자인했으며, 로코코 양식의 예술가 프랑수아 부셰(Francois Boucher)는 회화뿐 아니라 자수 디자인, 무대 디자인 등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예술가들은 모더니즘 사조가 출현한 19세기 이후에도 패션에 주목했다. 패션은 더는 상류층만의 문화가 아니게 되었고, 화가들은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모델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의상 양식을 사용했다. 리얼리즘을 추구했던 화가들은 모델이 입은 의상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표현하고자 했고, 폴 세잔(Paul Cezanne), 에드가 드가(Edgar Degas)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당시 패션 잡지에 실린 포즈를 모방하는 방법으로 유행을 반영했다. 카메라가 발명되기 이전, 미술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패션을 기록하고 선도하는 역할을 했다.

 아름답게 표현해야 하는 화가에게 의상은 작품의 심미성과 직결되는 요소이자, 인물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되었다. 화려함과 섬세함이 극에 달한 르네상스 이후의 회화에서 드러나는 인물들의 의상은 작은 요소 하나하나까지도 표현하고자 했던 화가들의 패션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대중이 패션을 논하기까지

 예술가들이 패션에 주목하고 이를 소재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이지만, 패션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19세기에 들어선 후에야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패션이라는 개념은 19세기 중반부터 대중들에게 인식되기 시작했고 19세기 말에는 패션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급격한 사회적, 경제적 발전과 시민 혁명은 패션에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게 만들었고, 디자이너들의 옷으로 백화점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19세기 말 시작된 문화, 예술, 그리고 패션의 황금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기 전까지 이어진다.

 패션 디자이너와 화가가 분리되기 시작한 것도 19세기 말이다. 옷을 제작하는 것보다 디자인하는 데 중점을 두는 디자이너들이 생겨나고,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이 패션 잡지를 통해 알려졌다. 20세기 초반의 패션 디자이너들은 유명한 화가가 아닌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하여 패션 잡지에 자신들의 작품을 홍보했다. 화가들은 이제 직접 의상을 디자인하지 않고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소재로 삼기 시작한다. 광고를 위해 만들어진 패션 잡지는 예술가들의 참고서이자 소재 창고가 되었다. 동시에 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의복 양식들을 만들어낸다.

 대부분의 예술 사조와 마찬가지로, 패션계 역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는다. 전쟁터에 동원된 남성들을 대신하여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는데, 코르셋 등을 이용하여 곡선을 강조한 기존의 여성복은 불편하게 여겨졌다. 이에 따라 여성복에서 점차 코르셋이 사라지게 되고, 미적 가치뿐 아니라 활동성과 편의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복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코르셋의 해방기는 예술적인 가치를 가지면서도 의복으로의 기능을 잃지 않는 많은 디자인의 시도와 함께 이어진다.

 ‘패션의 왕’이라 불리는 폴 푸아레(Paul Poirt)는 20세기 초반 코르셋의 해방기를 주도한 디자이너로, 기존의 곡선을 강조한 아르 누보 스타일에서 여러 이국적인 스타일로의 변화를 이끌었다.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이전부터 터키, 러시아,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20세기 초반 예술적 패션을 이끈 디자이너로 인정받는다. 푸아레는 엠파이어 스타일 드레스,  호블 스커트, 기모노 스타일 드레스 등 당시 시도되지 않았던 파격적인 양식의 의상을 디자인한다.

 한편,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가브리엘 샤넬(Gabrielle Chanel)은 폴 푸아레와는 반대로 심플한 여성복을 내놓는다. 수많은 예술가와 교류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샤넬은 정장 형식의 여성복을 디자인하고, 저지 소재를 사용하는 등 불편한 의복 양식에서 여성의 해방을 이끌었다. 편리함과 아름다움을 모두 잡은 샤넬의 디자인은 현대 여성 복식의 시초로 불리며 이후 패션계의 주된 흐름 중 하나를 주도한다.

 문화와 예술, 패션은 모두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20세기의 급변하는 사회는 여성의 지위 상승, 문화의 보급과 소비 사회의 확립 등의 변화를 가져왔고 이는 패션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고급스러운 패션을 추구했던 유럽과는 달리, 미국에서는 대량생산된 기성복의 시대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비교적 저렴해진 기성복의 유행과 더불어 대중 매체와 지면 광고를 통해 퍼진 아름다운 모델의 모습은 더욱 많은 대중이 패션에 관심을 두게 했다. 이후 패션계는 수많은 예술적, 파격적 시도들과 함께 지금의 발전을 이루게 된다.


마네킹, 예술의 새로운 캔버스가 되다

 패션 디자이너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예술과 패션은 서로 많은 것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패션디자이너들은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한 디자인을 만든다. 디자이너의 손에서 재탄생한 예술 작품들은 모티브가 된 작품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보이며 그 디자이너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간다.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잔니 베르사체(Gianni Versace)는 화려함과 관능미, 쾌락주의로 대표된다. 여성의 성적 매력을 드러내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베르사체의 디자인은 수많은 예술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고전주의 예술의 열렬한 팬이었던 그의 디자인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 조각의 우아함과 바로크 예술의 화려함이 함께 담겨 있다. 베르사체는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현대 미술의 화려한 색채가 담긴 원단, 금속 망사 직물, PVC 원단 등을 사용하며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더했다. 또한 그는 팝아트당시의 포스트 모더니즘 사조와 그의 예술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작품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무늬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미적 관점을 현대적 관능미로 녹여낸 베르사체의 작품은 성공과 자부심의 상징이 되며 그의 고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었다.

 베르사체가 화려함과 관능미의 끝을 쫓았다면, 같은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는 절제를 추구했다. 프라다는 미니멀리즘 사조에 가장 어울리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심플한 디자인과 소재의 기능성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했다.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최대한 단순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옷들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베르사체의 옷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프라다는 자신의 디자인은 보통의 여성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나일론 재질의 편한 의상과 무릎 길이의 스커트, 깔끔한 여성 정장을 선보이며 평범한 여성을 위한 특별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비록 그녀는 자기 자신을 미니멀리스트로 칭하지 않지만, 의복과 여성의 본질에 관점을 둔 프라다의 디자인은 미니멀리즘과 맞닿아있다.

 또 다른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로랑(Yves Saint Laurent)의 스타일 속에도 수많은 예술 작품이 녹아있다. 그는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을 그대로 담은 드레스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팝아트에도 많은 영향을 받아 팝아티스트의 작품이 그려진 컬렉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고흐, 마티스, 브라크 등의 많은 예술가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의 작품에는 다른 디자이너들과는 다른 색채와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누구보다도 유행에 민감하면서도 언제나 자신만의 색채를 잃지 않은 이브 생로랑의 작품은 그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 이름으로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패션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예술가들

 모델의 아름다움은 많은 예술가를 매료시켰다. 현대의 패션 디자이너들의 작품은 의상만 부각하기보다 모델의 아름다움과 공존하는 패션을 창조한다. 현대 예술가들은 이런 의상과 모델의 조화를 자신의 작품에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작품에서 의상의 분위기나 색은 모델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대적 의미를 담기도 한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은 패션 아이템과 그것을 입은 모델들의 이미지를 수집, 재생산하여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만들어냈다. 워홀은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와 교류를 나누었고, 그의 작품을 모티프로 한 디자인 역시 수없이 만들어진다. 또 한 명의 예술가 알렉스 카츠(Alex Katz)는 모델의 서로 다른 스타일들로 시대의 특징과 모델의 개성을 표현해냈다. 예술 작품이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패션디자이너의 작품 또한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뮤즈가 되고 있다.

 사진 예술은 패션에 가장 민감한 예술 분야이다. 패션 사진가들은 판매를 위한 사진을 넘어 모델의 아름다움과 깊은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낸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중 한 명인 미국의 사진가 어빙 펜(Irving Penn)은 강한 명암 대비를 준 인물 사진을 주로 찍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모델부터 평범한 일상복이나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까지 폭넓은 인물을 다루는 펜의 사진은 순간적인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빠짐없이 드러낸다. 펜은 미국의 패션 브랜드 <보그(Vogue)>에서 일하며 많은 작품을 남겼다. 흰색 또는 회색 배경에 섬세하게 표현된 모델은 상업적 작품임에도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닌다.

 또 다른 사진작가 리처드 아베든(Richard Avedon)은 정적인 사진을 주로 찍은 어빙 펜과 다르게 움직임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었다. 마치 모델 몰래 찍은 듯한 아베든의 작품은 찰나의 자연스러운 표정과 움직임을 표현해낸다. 어빙 펜과 마찬가지로 아베든 역시 오랜 기간 패션 사진가로 일했다. 밝은 조명으로 둘러싸인 스튜디오 속 역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델은 화려한 의상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다.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표정, 생동감이 느껴지는 아베든의 작품은 마치 연출되지 않은 순간의 모습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상업과 예술 사이에서

 현대 패션 산업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성복이 지배하고 있다. 고급 기성복, 또는 프레타 포르테(Pret a porter)는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과 실용성을 지닌 옷으로 대부분 브랜드에서 주력 상품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패션쇼에서 마치 하나의 조형예술과도 같이 보이는 옷들을 볼 수 있다. 오트 쿠튀르(Haute couture)라고 불리는 이 의상들은 실용성과 대중성을 포기하고 작가의 개성과 예술성을 한계까지 보여준다. 패션디자이너들이 기성복에서 보여주지 못한 자유와 예술 세계를 맘껏 표현한 오트 쿠튀르들은, 패션이 예술의 한 장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해체주의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Martin Margiela)는 거부감이 들 정도로 파격적인 오트 쿠튀르를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파괴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마르지엘라는 패션의 고정관념을 모두 해체하며 의복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모델에게 전혀 맞지 않는 사이즈의 옷이나 심하게 낡아 보이는 옷부터, 옷 대신 사이즈만 적힌 사진 패널을 입고 등장하는 모델이나 스타킹으로 얼굴을 가리고 가발을 입고 나온 모델까지. 마르지엘라의 오트 쿠튀르는 의복의 아주 기본적인 부분도 남지 않았다. 항상 새로운 자극과 변화로 세상에 없는 옷을 만들고자 하는 그의 예술 세계는 난해하지만, 가치 있다.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장폴 고티에(Jean-Paul Gaultier)는 패션계의 악동으로 이름난 디자이너이다. 마돈나의 세계순회공연 의상인 ‘콘브라’를 만들어 준 디자이너로 유명한 고티에는 특유의 유머와 기상천외한 상상력으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부수고자 한다. 고티에는 해체주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지만, 그의 오트 쿠튀르는 해체주의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매우 이질적인 요소들을 조합해 의상을 만드는가 하면, 성적 고정관념과 같은 어떤 대상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깨부수는 의미를 담은 의상을 발표하기도 한다. 또한 고티에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배척당하는 사람들에 대한 메시지를 담는 등 미적 가치 이상의 의미를 포함한다. 평범함의 재구성으로 항상 새로운 작품을 보여주고자 하는 그의 파괴적인 상상력은 유쾌한 악동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의상을 통해 패션 이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자 한 디자이너도 있다. 후세인 샬라얀(Hussein Chalayan)은 이전까지의 패션 지식을 배제한 자신만의 예술을 만들어냈다. 설치 예술에 가까운 그의 패션쇼는 의상을 선보이는 자리 이상의 쇼를 제공한다. 런웨이에 놓은 테이블과 소파가 옷으로 변하거나, 비행기 날개와 닮은 판을 옷에 달아 리모컨으로 조작하기도 한다. 패션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는 샬라얀의 도전 정신은 퍼포먼스 이상의 가치가 있다.


패션,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예술

 현대에 이르러 예술은 과거보다 훨씬 많은 방법으로 대중에게 소비된다. 우리는 이제 미술관을 찾거나, 비싼 돈을 내고 작품을 구매하지 않고도 화가들의 작품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소비 방식의 변화는 미디어가 발달하고 팝아트가 출현하면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리고 미술관 액자를 벗어나 대중에게 직접 다가가기를 택한 미술에 패션은 매우 훌륭한 캔버스가 되었다.

 패션 디자이너가 예술 작품에서 영감을 얻는 것을 넘어 예술가와 직접 협업하는 형태의 아트 콜라보레이션은 브랜드 가치의 상승과 예술의 실현이란 두 요소를 모두 충족시킨다. 각각의 패션 브랜드는 자신들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또는 이미지를 바꾸어 줄 예술가와 함께 작업해 새로운 상업적, 예술적 가치를 창조한다.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Louis Vuitton)>이 콜라보레이션한 많은 예술가 중 무라카미 타케시는 브랜드에 젊은 이미지를 주어 상업적 이익을 이끌었다. 또한 쿠사마 야요이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그녀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제품에 녹여내며 마치 하나의 설치 예술과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오늘날, 많은 패션 브랜드가 예술가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서로 활발한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패션 그 자체, 또는 패션에 녹아든 예술 작품들은 항상 상업과 예술의 경계에 서 있다. 예술가로 인정받은 많은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고 있으며,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패션 아이템에 자리 잡은 예술가의 작품도 누군가에게 팔려나간다. 대량생산을 통한 보급, 미디어를 통한 빠른 전파는 패션의 특성이자 순수 예술과 노선을 달리하는 점이다. 옷이란 누군가에게 입혀질 때 빛나는 것이기에, 패션 디자이너들은 상업적인 가치와 예술적 도전 사이에서 항상 고민한다.


 예술의 뒤를 따르던 패션은 어느새 그 자체로 훌륭한 예술 작품이 되었다. 패션 디자이너들은 자신만의 작품을 통해 입는 이를 돋보이게 한다. 다시금 모호해진 패션 디자이너와 예술가의 경계 위에서, 사람들은 예술을 입고 전시장에 걸린 옷을 즐긴다. 패션은 인간의 몸이라는 또 하나의 전시장에 새로운 아름다움을 더하여 발전해나갈 것이다.


참고도서 |

<패션이 사랑한 미술>, 김정혜, 아트북스

참고논문 |

패션과 예술의 관계에 대한 이론적 고찰 - 화가와 패션, 패션디자이너와 예술의 관계를 중심으로, 신주영,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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