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 <어느 가족>

 아버지와 아들이 가게에 들어간다. 아들은 물건을 고르는 척 생필품을 책가방에 몰래 담는다. 아버지가 점원의 시선을 가리고 아들은 물건과 함께 도주한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일하지만, 둘의 일당만으로 생계를 꾸리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이 가족에게 도둑질은 일상이다.

 아버지 오사무와 아들 쇼타는 훔친 물건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아파트 복도에 쭈그려 있는 어린 여자아이를 보게 된다. 어느 추운 날, 오사무는 여자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어머니 노부요는 여자아이에게 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쇼타도 언젠가 그렇게 ‘구해진’아이였다.

 노부요는 식구가 느는 것이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린을 원래 있던 곳으로 데리고 가던 중, 린의 친엄마가 ‘낳고 싶어서 낳은 게 아니다’라며 다투는 소리를 듣고 돌아온다. 린과 목욕을 하던 중, 노부요는 자신의 흉터 이야기를 꺼낸다. 린이 내보이는 닮은 학대의 흔적을 마주하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아이를 진정한 딸로서, 자신을 닮은 아이로서 대하게 된다. 

 노부요 가족은 할머니 하츠에와 그 손녀와 함께 산다. 실상은 할머니의 집과 연금에 얹혀 사는 것이다. 할머니는 남편에게 버려졌고, 지금은 옛 남편의 자식에게 위자료를 뜯으며 살아간다. 혈연이 아닌 인연으로 맺어진 이들이 진짜 가족보다 낫다는 노부요의 말에 하츠에는 괜한 기대를 하지 않아 좋다고 답한다. 얼마 뒤, 하츠에가 죽자 가족들은 연금을 계속 받기 위해 하츠에의 죽음을 숨기고 그녀의 시신을 집 뒤뜰에 묻는다.

 가족들의 눈으로 그들을 관찰하던 시선은, 쇼타가 도둑질을 하다 잡힌 후, 가족들의 여러 위법 행위가 밝혀지면서 사회로 옮겨간다. 그리고 사회와 가족 양측의 관점은 스스로 모든 죄를 뒤집어쓴 노부요의 취조 과정에서 첨예하게 대립한다. 시신을 묻은 것은 맞지만, 하츠에를 버린 사람은 따로 있지 않냐고, 아이를 낳는다고 모두 엄마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노부요는 관객을 응시하며 반문한다. 결국 가족은 해체되고 모두 원래의 위치로 돌아간다. 영화는 흩어진 개개인을 조명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취조실에서 노부요는 자신이 한 번도 엄마라고 불린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고, 오사무도 쇼타에게 이제 자신은 아저씨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지만, 버스를 타고 떠나는 쇼타의 입 모양은 ‘아빠’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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