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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르자 부르타>, 폭력 아래 해방되는 인간
[451호] 2018년 09월 04일 (화) 김선규 기자 seongyukim@kaist.ac.kr

 공연 ‘푸에르자 부르타’는 폭력을 뜻한다. 언어가 아닌 폭력이 지배한 세계는 말이 필요하지 않다. 행위와 뜻이 없는 음성은 전달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러닝타임 내내 폭력적인 방식으로 참여자들의 각성을 요구한다. 이 끊임없는 폭력은 우리를 향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어느새 인간을 한입에 집어삼킨 언어의 세계에 흠집을 낸다. 그 거대한 상처 앞에서 억압되어 있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인간의 분노, 행복, 슬픔이 문장이 아닌 으르렁대는 소리로 표현될 때, 인간은 잊고 살았던 해방감에 도취될 수 있다.


무대를 허물고 직접 참여하는 관객 

 5명으로 이뤄진 소규모 악단이 타악기를 두드리며 등장한다. 극장을 채우는 웅장한 소리와 어지럽게 움직이는 빛에 둘러싸인 관찰자는 유한한 시선 끝에 놓여있는 공간을 느낀다. 반복되는 가사와 리듬은 여태껏 유지하던 시간 개념을 빼앗는다. 원형의 연극에서 관찰자는 수동적으로 이야기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포스트모던 연극 ‘푸에르자 부르타’의 관객은 움직이고 이야기에 참여해야 한다.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그들에게 남은 것은 환경과 본연의 감각뿐이다. 관객은 정적인 수용 단계를 넘어섰다. 연극에는 관객이 없고 허구성도 벗어던진다. 순간, 배우와 관객은 경계를 허물고 하나의 진실일지도 모르는 세계에 빠진다. 사람들은 동일한 흐름에 따라 움직인다. 내면 수용이 아닌 외연 확장의 순간이다.


새로운 세계가 선사하는 감각의 향연

 흰옷을 입은 남자가 나머지 모두에게 둘러싸였다. 트레드밀 위의 그는 지칠지언정 뜀박질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휴식이 필요해 의자와 책상에 앉으려 하지만, 움직이는 휴식의 공간은 잡히지 않는다. 끊임없이 달리고, 벽을 부수고, 저격당하는 그는 시간을 느낄 뿐 누릴 수는 없는 현대인의 초상이다. 죽기 전까지 멈추지 않을 그를 뒤로 한 채 꿈의 세계가 펼쳐진다. 다양한 색을 발하는 비닐막이 천장에서 수직으로 내려온다. 연달아 등장하는 두 요정은 평면의 주인이다. 둘은 술래잡기를 한다. 한 명이 붙잡으려 하면, 다른 한 명은 도망간다.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무의미할 이 반복은 평면 밖에 놓인 이들에게 새로운 무늬를 선사한다.

 중심, 측면 다음은 윗면이다. 태초의 빛이 바다를 통과하며 남긴 푸른색과 잔잔한 파도는 깊은 바다로 인도한다. 푸른 빛 아래 놓인 한 인물은 가만히 있다. 흐르는 물은 그녀를 깨운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새로운 흐름을 창조한다. 설계되지 않은 우연성, 끊기지 않는 유기성은 표면 아래에 가라앉은 창조물의 본질을 공명시킨다. 어느덧 4명으로 늘어난 창조자는 자유롭게 움직인다. 다수의 창조자는 더욱 풍요로운 세계를 형성한다. 푸른색만 가졌던 세상은 다색으로 가득 차고, 하나의 파원이 만들 수 없는 복잡한 패턴이 그려진다. 바다의 표면과 심해는 가까워지고 손에 닿는다. 창조자와 창조물은 대등한 높이에서 교감하고 온기를 나눈다.


끝나지 않는 공연,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새로운 세계의 창조자는 떠나고, 황홀한 순간은 빠른 음악과 강한 주황색 조명에 의해 전환된다. 갑자기 등장한 4명의 인물은 아무렇게나 춤추고 소리지른다. 그들은 나머지 사람들에게 한명씩 빛을 비추며, 함께 춤출 것을 요구한다. 한바탕 강렬한 축제가 지나간다.

 푸에르자 부르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실과 꿈을 여행하던 이들은 백색광 아래에서 함께 했던 경험을 이어, 다시 한번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환호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하나가 되어 어울리는 이 공간은 현실이나 환상이 아닌 환상적 현실이다. 이렇게 푸에르자 부르타는 끝나지 않는 가능성이 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푸에르자 부르타

 많은 인간은 긴 삶을 살며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이야기는 동화나 소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화는 참여자의 이야기를 매개로 하며, 인간은 혼자서도 상상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끊임없이 듣고 생각하고 경험하는 인간은 어느 순간 지루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야기는 고갈되고, 새로움의 원천은 언젠가 마른다. 다양한 매체에 둘러싸인 현대인은 쉽게 정보를 얻고, 빠르게 정보에 지친다. 21세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은 지난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 발명해야 하는 숙명에 놓였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현대인에게 주어진 찰나의 새로움이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이 그렇듯, ‘푸에르자 부르타’의 형식도 오래된 것이 될 것이며, 그리고 또 새로운 연극 혹은 다른 것이 탄생할 것이다.


장소 | 잠실종합운동장 FB시어터

기간 | 2018.07.12.~2018.10.07.

요금 | 99,000원

시간 | 70여분

문의 | 02)540-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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