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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맨 내전과 언론 보도의 실태
[450호] 2018년 08월 21일 (화) 김명섭 화학과 15 kaisttimes@gmail.com

 많은 사람들은 ‘프로파간다’ 라는 용어를 들으면 북한의 김정은이나 중국의 시진핑과 같은 독재자들과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을 떠올릴 것이다. 정권을 찬양하는 벽보들이 곳곳에 뿌려지고 정권에 긍정적인 뉴스들만이 유통되는 사회에서 사람들이 권위주의적 정권을 지지하게끔 세뇌되어짐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 벽보들과 뉴스들에 담긴 메시지와 이미지를 분석해 우리는 그 정권이 어떤 목적을 가지는지를 분석하려고 한다. 우리는 북미정상회담을 전후로 북한 내에서 반미 선전물들이 사라졌다는 뉴스를 통해 미국에 대한 북한이 태도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고, 중국 공산당의 신문인 환구시보에 올라온 사설들을 분석해 사드(THAAD)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을 파악하려고 한다.

 ‘프로파간다’라는 용어가 비정상적이고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다고 여겨지고 경멸의 대상이 되어 오늘날에는 잘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원래 이 용어는 미디어와 정보에 관해 논의에서 서구 지식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었다.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인인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은 그의 저서인 “여론(Public Opinion)”에서, 1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군의 사상자 숫자를 축소하고 독일군의 사상자 숫자만을 강조하도록 언론 지침을 내린 것을 토대로, 프로파간다를 “사건에 대한 독립적인 접근을 막을 수 있는 자들이 그들의 목적에 맞게끔 뉴스를 처리하는 행위”라고 설명한다. 리프만은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그의 행동, 노력, 감정, 그리고 희망을 결정하기 때문에, 프로파간다가 세계관을 바꿔 사회적 패턴을 바꾼다고 보았다. 

 하지만 리프만은 사람들이 세상에 대한 ‘독립적인 접근’을 해서도, 할 수도 없다고 보았다. 그는 자기중심적인 의견들만으로는 좋은 정부를 형성할 수 없음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을 ‘민주주의의 오류(the democratic fallacy)’라고 보았고, 따라서 ‘공적인 삶의 현실이 자기중심적인 의견과는 매우 다른 것임을 성공적으로 설명하는 기관들과 교육 시스템이 부재할 때, 공공의 이익은 대체로 여론으로부터 벗어나고 그것은 오로지 사적 이익의 추구를 뛰어넘은 특수 계급(specialized class)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고 기술했다. 리프만에게 ‘여론의 생산(manufacture of consent)’은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여론의 생산이 원래는 민주주의가 도입된 이래로 소멸되어야 했지만 오히려 혁명적으로 발전해 ‘정부의 의식적인 예술이자 정식의 기관’이 되었고, 따라서 그는 프로파간다 영향 아래에서 더 이상 인간사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인간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원래의 전제’를 믿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결론 내린다. 오직 ‘특수 계급’만이 그 정보를 생산할 수 있고, 정보를 다듬어 사람들에게 제공할 때에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그는 보았다.   

 리프만이 제시한 ‘여론의 생산’ 개념은 1988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허만(Edward Herman)과 노엄 촘스키(Noam Chomsky)의 저서인 “여론 생산(Manufacturing Consent)”의 모티브가 되었다(국내에선 제목이 ‘여론 조작’으로 번역되었지만, ‘조작’보다는 ‘생산’이라는 단어가 원래의 제목과 책의 주제를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그들이 제안한 프로파간다 모델(propaganda model) 따르면, 산업화된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의 기능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정부와 기업 그리고 엘리트들로 구성된 ‘특수 계급’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그들의 시각에 부합하는 방식으로만 기술된 뉴스를 생산하고 배열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CNN 같은 대형 언론사들 모두가 거대 기업이거나 거대 기업에 의해 소유되고 있으며,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광고를 통해 이윤의 창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 기사의 진짜 소비자는 그 기사를 읽는 독자나 아니라 기사 페이지에 등장하는 광고를 구매한 기업으로, 광고를 판매하는 것으로 미디어는 그들에게 충성하는 독자층을 그들의 진짜 고객인 거대 기업에게 제공한다. 기자의 선발, 편집, 정보의 출처, 서술 관점, 광고주 등 다양한 요인들이 필터(filter)로서 작동해 ‘적합한 뉴스’를 생산하고,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 같은 기관들이 자본과 정부의 군사, 외교 정책에 부합하는 어젠다를 설정하면 전 세계의 주류 미디어가 동일한 어젠다를 기반으로 뉴스를 생산한다.

 “여론 생산”에서 허만과 촘스키는 언론의 프로파간다 기능을 확인시켜주는 대 대표적인 사례로 1970년대 말의 동티모르 학살을 제시한다.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차지한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는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독립을 획득한 동티모르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면서 1975년에 동티모르를 침공하면서 제노사이드에 가까운 수준의 학살을 저질렀고, 침공이 완료된 1979년부터 1998년 수하르토가 축출될 때까지 동티모르를 점령하고 동티모르인들을 억압했다. 카톨릭 교회의 소속 기관들은 침공 2개월 사이에 6만 여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고 보고했고, 앰네스티 인터네셔널 등의 기관들은 인도네시아의 침공과 점령의 기간 동안 동티모르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육박하는 20만 여 명의 민간인들이 살해되었다고 보고했다. 인도네시아군의 학살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미국, 영국, 캐나다 등의 서방 국가들은 ‘중도적’인 수하르토 정권에 대한 지지를 표출하고, 인도네시아에 지속적으로 무기를 수출하면서, 동티모르에 대해 침묵을 지켰다. 특히 학살의 수준이 절정에 도달한 1977년부터 1978년 사이에 카터 행정부는 인도네시아와의 무기 거래를 계약과 인도네시아군을 위한 미군의 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한다. 허만과 촘스키는 1975년부터 1979년 사이의 미국의 주요 매체들–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뉴스위크–을 분석했고, 그 결과, 인도네시아의 침공 이전엔 동티모르의 독립에 관한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졌었지만, 침공이 시작된 1975년부터 동티모르에 대한 언론 보도가 완전히 실종되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동일한 시기동안 주류 언론들은 서방의 공식적 적(official enemy)이었던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 정권의 학살에 대해선 (정당하게) 자세하게 보도했지만, 서방의 동맹이었던 수하르토 정권의 학살을 보도하는 것에는 단 몇 줄이라도 소비하는 것조차 아까워했다.           

 30년 전에 출간된 허만과 촘스키의 “여론 생산”은 언론이 거대 권력으로부터 독립되었고 언제나 권력에 대항해 진실을 보도한다는, 기자들 스스로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는 미신을 깨트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그들의 연구가 인터넷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대변되는 21세기 사회의 모습을 세세하게 담아내지는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촘스키에게 이메일을 통해 인터넷의 역할과 프로파간다 모델의 관계에 대해 물어보았을 때, 그는 나에게 인터넷과 SNS가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책의 부차적인 내용일 뿐이고, 핵심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답했다. 그가 말한 프로파간다 모델을 통한 미디어 비판의 핵심은, 바로 우리가 뉴스를 소비할 때, 한 기사의 내용이 어떠한지 보다도, “어떠한 내용이 기사에서 빠졌는지”를, 그리고 “왜 그 기사가 우리에게 제공되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으로 미디어의 진정한 기능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6월 말부터 제주도에 예멘 전쟁에서 피난을 온 예멘 난민들이 도달하기 시작했다. 현재 552여 명의 난민들이 난민신청을 하고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난민 수용에 대한 반감과 난민에 대한 혐오도 증가하고 있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난민 추방을 요청한 청원은 약 2주 만에 52만 명의 서명을 받아내었으며 주말에 난민 추방을 요구하는 도심 시위가 진행되었다. 

 언론들은 예멘 난민 문제를 다루면서 난민들이 얼마나 큰 혼란을 일으켰는지, 얼마나 큰 문제가 될 것인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난민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극복할 것을 촉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민 문제에 관한 보도한 기사들과 네이버에 노출된 기사들 모두들, 난민에 대한 기사의 태도와 무관하게, 치명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결함은, 리프만이나 허만과 촘스키의 ‘여론의 생산’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결코 결함이 아니라 정치권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모든 언론들과 네이버에 노출되는 모든 기사들은 “왜 예멘 출신 난민들은 예멘을 떠났는지”, 혹은 “예멘에선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의 질문들에 대해 대답하지 않는다. “왜” 그들이 자신의 조국을 떠났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사람들은 그들이 아무 이유 없이 우리나라로 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별 특별한 이유 없이, 예멘인들은, 뭐 그냥 K팝을 좋아해서, 성산일출봉을 보러, 제주도로 왔을 수도 있다. 혹은 직업을 얻으러(사람들은 그것이 절대악인 마냥 혐오하지만), “일자리를 빼앗으러” 온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을 ‘이슬람’화 하려고 침공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난민들 중 젊은 남성들이 많기에 아이와 여자들은 강간하고 윤간하려고 한국에 온 것일지도 모른다. 이유는 없지만 이들이 서울에 폭탄 테러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기에 난민들을 전부 추방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예멘을 떠날 아무런 이유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왔다는 점은 확실하다.

 UN 사무총장 안토니오 구테레스가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라는 표현하는 상황에 처한 나라를 떠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5천 여 명의 사망자와 8천 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참혹한 내전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대범함과 대담함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다. 예멘은 2014년과 2015년 사이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방을 지지를 받는 대통령 하디(Hadi) 정권을 반대한 예멘의 무장 파벌인 후티(Houthi)파와 전 대통령 살레(Saleh) 지지 세력을 중심으로 한 반-하디 동맹이 하디 정권을 축출한 이래로 내전 상태에 놓여 있다. 하디는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Riyadh)로 피난을 갔고, 2015년 3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아랍에메리트, 바레인, 쿠웨이트, 요르단 등의 걸프 왕국들과 미국과 영국을 포함하는 사우디 동맹(Saudi-led coalition)이 하디 정권을 지지하며 예멘을 침공했고(Operation Decisive Storm),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무분별한 폭격을 가해 왔다. 유엔인권이사회가 2017년 9월 발표한 보고서와 다양한 언론 보도들에 따르면, 사우디 동맹은 시장과 농장을 비롯한 민간인 거주 구역을 폭격하고, 장례식과 결혼식 등의 일상적인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조차 폭격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불균형적이고 무분별한 공격을 감행하는 것으로 국제법을 위반해 왔고, 이로 인해 사우디 동맹의 폭격 작전이 ‘민간인 사상자 발생의 주된 원인(the leading cause of civilian casualties)’으로 작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한 예멘의 현재 인도적 위기 상황을 ‘완전히 인위적인 재앙(entirely man-made catastrophe)’이라 평가하는데, 이 재앙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우디 동맹의 예멘에 대한 봉쇄(blockade) 작전이다. 2015년부터 사우디 동맹은 바다와 하늘을 봉쇄해 예멘으로 들어오는 연료, 식품, 의약품을 비롯한 모든 물자들을 차단해 왔고, 예멘의 수도인 사나(Sanaa)의 공항을 폭격하고 예멘의 민간인들을 위한 적십자와 국경없는의사회 등의 국제기구의 인도적 지원조차 막고 있다.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물자의 공급이 중단되면서 전체 인구의 75%인 2200만 명의 예멘인들은 인도적 지원과 보호를 필요로 하고, 인구의 73%가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730만 명 이상이 기근을 겪기 일보직전에 놓여 있으며, 부족한 재정과 폭격으로 인해 전체 의료시설의 45% 미만만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하수 시설의 붕괴, 식수의 오염, 그리고 매우 기초적인 의약품의 부족으로 인해 2017년부터 지금까지 백만 건 이상의 콜레라가 발견되었고 콜레라로 인해 2천 여 명이 사망하면서 예멘의 콜레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콜레라 사태로 기록되었다.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 사태’를 피해 예멘을 떠난 500여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것에 경악하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예멘 난민들이 고향을 떠나 실제로 어디에 도착했는지 주목하면 흥미로운 정보를 얻게 된다. 터키와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이동할 수 있었던 시리아 난민들과는 달리, 예멘을 폭격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군대를 맞닥뜨리면서 아라비아반도를 통과해 유럽에 도달하는 것은 예멘 난민들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유럽에 도달한 예멘인의 1/4 이상이 난민자격을 거부당하고 있는 점도 작용할 것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의 보고서와 팩트시트에 따르면, 예멘 난민의 절대 다수인 200만 명의 난민들은 예멘 내부에서 이동(internally displaced)되었고, UNHCR에 의해 집계된 자료에 따르면 예멘을 떠난 17만 명의 난민들은 아라비아반도 예멘과 붙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4만 명)나 오만(5만 천 명)으로 이동했고, 아덴만을 건너 소말리아(4만 명), 지부티(3만 7천 명), 그리고 수단(7천 명)으로 이동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FT)의 브라이언 해리스(Bryan Harris)가 제주도의 예멘 난민을 인터뷰한 것을 보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애당초 이들이 예멘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예멘에서 부유층이었기 때문이다. FT가 인터뷰한 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는 다른 난민들처럼 지부티로, 지부티에서 말레이시아로,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제주도로 이동하는데 필요한 항공료를 지급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기에 제주도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GDP 순위가 140위, 160위 정도가 되는 국가들이 수 천 에서 수 만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것을 고려했을 때, GDP 순위 11위인 국가가 550 여 명의 난민을 수용하는 것은 당연히 경악스런 일일 수밖에 없다.

 난민들에 대한 태도와 상관없이 예멘 난민사태를 보도하는 모든 국내의 언론사들이 암묵적으로 제시하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바로 한국이 예멘의 전쟁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비록 한국은 무고하고 예멘에서 일어나는 사태와는 우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난민들에 대한 동정심을 바탕으로 그들을 받아들이고 혐오와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고, 황금 시간대의 뉴스 앵커들과 수많은 칼럼니스트들은 역설한다.  

 예멘 전쟁과 사우디 동맹의 봉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지속적으로 예멘을 폭격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들은 스스로 무기를 생산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따라서 서방으로부터 각종 무기를 수입한다. 미국은 지난해에만 6억 5천만 달러 이상의 무기를 사우디와 UAE에 판매했고, 3월 사우디 국왕 모하메드 빈 살만(Mohammed bin Salman; MBS)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미 국무부는 추가적으로 10억 달러를 초과하는 규모의 무기 판매를 승인했다. 영국은 사우디 동맹의 침공이 시작된 2015년부터 40억 파운드에 해당하는 무기를 사우디아라비아에 판매했다. 서방의 지원은 단순한 무기 판매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멘 봉쇄가 시작된 이래로 미국은 사우디 전투기들에게 공중급유를 제공해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위치들을 폭격할 수 있게 하고 있고, 정보기관들을 통해 수집된 정보를 제공해 폭격 위치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영국의 장교들은 리야드에 위치하면서 사우디 군대를 훈련시키고 폭격 작전을 설정해주고 있다.

 

 프랑스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막대한 규모의 무기를 사우디와 UAE에 판매하고 있고, 유럽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국제기관들이 사우디 동맹의 전쟁범죄에 침묵하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걸프 왕국들은 자신들의 막대한 자금력과 로비력을 이용해 국제무대에서 예멘이 거론되는 것 자체를 막고 있다. 2015년 사우디 동맹의 범죄에 대한 UN 보고서를 근거로 당시 UN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은 사우디아라비아를 블랙리스트에 등록시켰지만, 걸프 왕국들의 협박에 못 이겨 사우디를 리스트에서 제외했다(작년 대선 기간에 반기문에 대한 평가로 언급되기에는 부적절한 이슈였음이 분명하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의 UN 대사였던 사만사 파워(Samantha Power)는 예멘 문제에 끝까지 침묵을 유지하면서 사우디 동맹의 전쟁범죄를 사실상 옹호했고, 현 UN 대사인 니키 헤일리(Nikki Haley)는 후티파에 제한적인 수준의 지원을 해 온 이란만을 비난하고 있다. 

 

 예멘 내전에 대한 전 세계 주류 언론들의 보도는 많은 점에서 1970년대 말 주류 언론들의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침공에 대한 보도를 연상시킨다. 예멘 내전을 보도하면서 언론들을 ‘사우디 동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강조하면서 전쟁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주도함을 암시한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의 학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우디와 UAE의 잔학 행위들은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들의 지지와 지원이 있기에 가능하다. 사우디와 UAE가 예멘을 상대로 참혹 행위를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서방이 무기를 수출하고, 군사 훈련과 공증급유와 타격 정보를 제공하고, 국제무대에서 그들을 비호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반대로 말해, 인도네시아의 경우처럼, 서방이 그들에게 무기 수출을 비롯한 각종 지원을 중단한다면, 사우디와 UAE의 악행은 종료될 것이지만, 서방은 ‘인권’과 ‘원조’같이 공허한 단어들만을 이야기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주류 언론들은, 70년대 말의 언론들처럼, 예멘 내전에 대해 침묵하거나, 내전에 대해 보도하더라도 서방의 지원의 측면에 대해선 철저하게 침묵한다. 미국의 언론감시가관인 FAIR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트럼프에 대한 저항(resistance)세력임을 자처하는 케이블 뉴스 채널 MSNBC는 2017년 7월부터 1년 동안 단 한 번도 예멘 내전에 대해 보도하지 않았고, 동일한 기간에 트럼프와 포르노 배우인 Storym Daniels의 스캔들에 대해 455번을 보도했다 (8월 9일 사우디 동맹이 폭격으로 29명의 아이들을 살해한 이후에야 MSNBC의 프로그램인 “All In“의 Chris Hayes가 (정당하게) 예멘 내전과 미국의 책임에 대해 보도하게 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의 전쟁범죄에 한국이 과연 아무런 관련이 없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산업연구원이 작년 12월 29일에 발간한 ‘2018 KIET 방산수출 10대 유망국가’라는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 사이에 한국은 UAE에 10억 달러 이상의 무기(대전차무기 등)을 판매했고, 사우디아라비아에 8천만 달러의 무기(탄약 등)을 판매했다고 한다. 또한 지난 1월 이명박 정부의 원전 수출과 연계된 UAE와의 비공개 군사협정의 존재가 밝혀졌을 때, 정의당의 김종대는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국방부 자료를 검토한 결과 박근혜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로 탄약 180억 원어치가 유출한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에 위치한 무기 판매 감시 기관인 Pax for Peace에서 아랍에미리트의 무기 수입을 조사해 온 Frank Slijper는, 이메일을 통한 대화에서, 이러한 한국의 무기 수출이 사실이라면 수출된 무기들 중의 일부가 예멘에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그는 지난 3년간 한국 정부가 UN에(UN Register of Conventional Arms) 무기 수입, 수출에 대한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았고, 무기 무역 조약(Arms Trade Treaty)에 작년에 가입했지만 역시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한국 정부의 무기 수출에 대한 불투명성을 지적했다.

 

 한국과 UAE와의 비공개 군사협정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임종석이 급작스런 UAE 방문으로 시작되어 UAE와의 원전 수주에 대한 이슈로 이어진 이 정쟁에서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얼마나 이 원전 계약이 비효율적이었는지, 비공개 군사협정이 국회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기에 얼마나 이 조약이 반헌법적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애초에 왜 대한민국 군대가 UAE에 주둔해야 하는지, 주둔하는 군대의 역할이 무엇인지, 대한민국이 UAE에 개입하게 강제하는 ‘위기 상황’의 정의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군대 주둔의 예상되는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질문할 생각조차 가지지 않았다. 2011년 1월부터 총 1600 여 명의 장병들이 UAE의 특수부대에 ‘훈련’과 ‘보호’를 제공할 목적으로 아부다비의 아크부대에 배치되어 왔다는 사실은 언급될 가치도 없었다. 아랍에메리트의 재정청장 칼둔 알-무바라크가 서울을 방문하고, 이후 문재인이 아부다비를 방문하면서 갈등은 해소되었고, 임종석이 자유한국당을 찾아 김성태와 악수하면서 ‘국가적 신뢰와 국익적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발표한 이래로 그 누구도 군사협정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6월 28일 최신장비로 무장한 125명의 장병이 UAE로 떠났다는 것이다. ‘반헌법적’인 군사 협정을 지속하는 것이 ‘국가적 신뢰와 국익적 차원’에서 필요한 것임에 틀림없다. 

 

 예멘 난민을 동정하고 그들의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 때문에 고통 받고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완전히 인위적인 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근원을 파악해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를 비롯한 사우디 동맹국들에게 무기를 판매하는 것을 중단하고, UAE에게 ‘훈련’과 ‘보호’의 목적으로 군대를 제공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방안들은 토론의 적절한 주제가 아니고, 따라서 언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리야드의 방산전시회에 참가해 우리의 무기를 홍보하고, 비록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국가 차원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인 와하비즘(Wahhabism)을 전파하고, 알카에다, 탈레반, 그리고 IS 등 다양한 테러단체들을 지원할지라도, 외교부가 밝히듯이, ‘테러리즘을 극복하기 위한’ 우리의 ‘안보 파트너’들의 노력을 칭송하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표현처럼, 고부가가치 방위 산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미래 성장 동력을 개발하는 것뿐이다.

 

 

 외국인, 난민, 그리고 무엇보다 무슬림에 대한 혐오가 네이버 뉴스 댓글창이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그리고 오프라인을 통해 표출되고, 재생산되고, 전파되는 방식은 과거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홀로코스트를 정당화하는데 사용된 유대 볼셰비즘(Jewish Bolshevism)이나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황화론(Yellow Peril)과 같은 인종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각종 음모론들이 확산된 방식을 연상시킨다. 사회적 소수가 차별당하고 희생당한 끔찍한 역사가 벌어진 사회적 여건이 한국에서 반복될 수 있고, 이러한 여건 속에서 이미 소수에 대한 차별이 정당화되고 제도화되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스럽다. 무엇보다도 한국일보의 여론 조사가 보여주듯이 가장 ‘진보적’이고 ‘개방적’이라는 20대와 여성이– 거센 반발 속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보호와 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난민 수용을 가장 거세게 반대하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넘어서 전 세계 18억 명의 무슬림을 ‘본질적으로’ 폭력적이고, 배타적이며, 저능하고 열등한 종족으로 규정하는 이슬람포비아(Islamphobia)를 수용하고 전파하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울 뿐이다. 

 아이리시 타임스(The Irish Times)의 핀탄 오‘툴(Fintan O’Toole)에 따르면, 유럽인들이 인식하는 유럽 각국의 인구 중 무슬림의 비율이 실제 비율에 비해 매우 과장되어 있듯이, 이민에 대해 비이성적이고 과장된 공포를 조장하는 것은 이민 그 자체가 아니라 반이민과 반이슬람적 메시지들이다. 유대 볼셰비즘과 황화론을 소환했던 동일한 주술사(necromancer)들이 이슬람포비아를 소환해 공포를 조성하고 있고, 이들에겐 이민자들의 존재 자체가 의미가 중요하지 않다고 오‘툴은 분석한다. 한국의 주술사들이 예상하지 못한 한 가지 결과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의 반이민, 반이슬람적 메시지들을 뉴욕타임스나 Foreign Policy 등이 보도하면서, 한국인들이 ‘본질적으로’ 배타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존재들이라는 세계관을 리버럴한 엘리트 독자들에게 제공하면서 그들의 시각을 충족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대한민국 사회의 공포뿐만 아니라 유럽의 각종 극우정당의 득세부터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까지, 현재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 세계의 많은 혼란들은 신자유주의의 도래 이후로 지속된 민주주의의 축소와 시민 사회의 붕괴를 반영한다. 거대 자본과 소수의 기업들이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들이 결정되는 사회, 경제의 장에서 시민들이 차지했던 공간을 빼앗아 그들을 방관자들로 전락시켜버린 이래로 독점 기업들에 지배하는 ‘자유 시장’에서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물가는 오르며, 경제적 불평등은 악화되면서 우리의 삶은 더욱 각박해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시스템이 자신들을 대변하지 않음을 확인한 사람들은 자연스레 시스템을 불신하게 되고, 사회의 모든 부조리에 대해 책임을 지울 희생양을 찾게 된다. 오‘툴의 표현처럼, 이민자들은 불평등, 긴축, 그리고 미래가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의 실종으로 인해 발생한 모든 분노와 근심을 위한 피뢰침(lightning rod)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민주주의 회복이다. 거대한 자본이나 권력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의 삶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를 대변하는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리프만이 말한 ‘민주주의의 원래의 전제’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민주주의를 통해 우리 스스로 시스템을 규율하고 삶을 결정할 수 있을 때에만 수 백 명의 난민 때문에 우리의 삶이 초토화되고 대한민국 사회가 붕괴될 것이라는 공포와 절망의 메시지를 인간에 대한 믿음과 연대 의식을 바탕으로 현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가 무찌를 수 있다. 민주주의의 시스템에서 우리를 대표하도록 선출된 권력자들이 ‘가짜 난민’ 등의 정치적 카나르(canard)를 되새김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믿음을 줄 때에만 끔찍하고 사악한 이념들이 우리 사회를 잠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550 여 명의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한국 언론에선 지금처럼 예멘에 대한 제한적인 수준의 보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 특수 계급에 의해 결정되는 리프만의 민주주의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원래의 전제’를 믿는다면, 예멘 난민들에 대해 보도하면서 그들이 왜 자신들의 나라를 떠났는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누가 누구와 싸우고 있는지, 그리고 한국이 왜, 또 어떻게 분쟁에 개입하고 있는지를 시민들에게 정확히 설명해야 한다. 언론이 진정으로 권력에 적대적인 독립적인 주체라면, 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주도하는 테러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와 UAE가 9-11을 일으킨 테러단체인 알카에다와 동맹을 맺고 함께 후티파와 싸우고 있다는 AP의 탐사보도를 정확하게 번역해 사람들이 중동의 정치적 역학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우리의 ‘안보 파트너’들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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