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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교육의 실패를 용납할 수 있는가?
[449호] 2018년 05월 29일 (화) 한순흥 KAIST 기계공학과 해양대학원 교수 kaisttimes@gmail.com

교육도 시행착오로 진행된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수중 폭발 연구’ 과제와 ‘해양 풍력 발전’ 연구 과제에서는 실험을 위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이러한 과제를 수행할 때 가장 처음 부딪히는 문제는 축소 모형의 문제이다. 길이가 88m에 달하는 천안함의 경우 실제 크기로 상황을 재현하는 것은 폭약(어뢰)의 엄청난 폭발의 크기 등의 이유로 매우 어렵다. 또한, 2m 정도의 축소 모형과 작은 폭약으로 위의 실험을 시행하면, 획득한 결과를 가지고 88m의 실제 천안함에서 발생한 결과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상사법칙(Similitude)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실험에서 발생하는 충격과 변형을 측정하기 위한 측정 센서의 배치와 연결은 또 다른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올바른 실험값을 측정할 수 있게 된다. 한편, 5MW급의 해양풍력발전기는 날개의 직경이 100m에 달한다. 이 연구 역시 약 2m 정도의 축소 모형을 사용하여 실내수영장과 같은 수조(Water Tank)에서 실험을 진행하는데, 이 역시 실제 바다에서 관찰되는 바람과 파도를 재현하기 위해, 그리고 만족할 만한 계측값의 측정을 위해 많은 시행착오가 따르게 된다.

  독일의 제약회사 ‘베링거인겔하임’에서 8,000억 원의 기술료를 지원받을 예정이었던 한미제약의 폐암 신약 올무티닙은, 임상 2상 시험에서 심각한 부작용으로 취소되었다고 한다. 약품은 생명과 연결된 중요한 물질이기에, 직접 사람을 대상으로 수행하는 임상시험(Clinical study)을 3차례(1상, 2상, 3상) 수행한다.

  그러나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은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의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 중요한 일이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고 시행착오가 없어야 마땅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여야 한다. 하지만 더 나은 교육을 위하여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어야 할 것이고,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교육은, 조심스러운 실험을 거쳐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실험을 진행하는 데에 어려움이 큰 이유는 의약품처럼 그 영향을 직접 받아야 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 대형 여객기나 세월호 같은 여객선의 사고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크기의 문제와 비용의 문제가 여전히 있지만, 사람을 직접 대상으로 하지 않고 인공 구조물을 대상으로 실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교육 실험과 차이가 있다. 비록 교육실험이 부작용의 가능성이 있는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더라도,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대규모 시행이 불가능하기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렇다면 본교에서 진행된 러플린식 교육 실험과 서남표식 교육 실험은 실패한 실험이였는가? 아니면 미래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한 시행착오의 일부였는가? 카이스트는 앞으로 추가적인 시행착오를 염두에 두고, 이를 진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몇 가지 교육의 실패 사례
  필자 개인이 학교에서 겪은 몇 가지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선박 설계에 ICT 기술을 융합하는 분야를 연구한다. 이 때문에 다른 학과의 학위논문 심사에 여러 차례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최근에 전산학과에서 박사학위 심사를 하면서 갈수록 타 학과의 논문을 심사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느꼈다. 필자의 나이가 많아지면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감각이 둔해지는 것이 첫째 이유이겠으나, 한편으로는 분야별 전문화가 심화되는 것이 또 다른 이유라고 생각된다. 분야별 전문화는 반가운 일이고 당연히 권장해야 할 일이지만, 학과 간의 벽은 더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융합을 통한 새로운 먹거리의 창출은 전문화된 학문 분야의 높은 산봉우리들의 사이를 메우는 작업으로 볼 수 있다. 필자가 1998년의 전자거래와 2018년의 4차 산업혁명에 참여하면서 관찰한 것은, 여러 전문 분야의 학제적 융합이 새로운 산업 분야로 창출되는 모습이다. 하지만 ICT와 전통적인 산업을 융합하려는 시도는 그 자체로는 영속성이 없는 일시적인 유행이기 때문에, 별도의 학문 분야로 추구하는 것은 부족한 점이 많지 않은가? 아니면 이들 중에 일부가 과연 새로운 학문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가?

  25년의 짧지 않은 카이스트 근무를 통해 두 번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실패한 경험을 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아픈 경험이지만, 그 나름대로 교훈을 얻은 바가 있어 그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서울 분원의 4개 프로그램은 1992년 3월부터 1996년 2월까지 4년간 진행되었으며, 필자는 1993년부터 자동화설계공학과에 조교수로 근무했기에 기계공학과로의 통합에는 저항감이 상대적으로 적었었다. 하지만, 이로부터 느낀 점은 많았었다. 해양시스템공학대학원은 2008년 6월부터 2015년 2월까지 6년 8개월 동안 진행된 프로그램인데, 필자는 학과 설립 때부터 학과장으로 참여하여 다양한 경험과 교훈을 얻을 기회를 가졌다.

  지난 2009년에 미국 MIT 해양공학전공의 학과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MIT 학과장에게 급한 일이 생겨 일정이 1시간 후로 미뤄졌고, 학과장을 기다리는 동안 학과 시설을 구경할 기회가 생겼다. 또한, 한국 출신 여학생을 가이드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그 여학생은 석사 1년 차 신입생이었고, 서울대 기계공학과 출신이지만, 당시 MIT의 항공과 소속이었으며, 지도교수는 해양공학전공 소속 교수였다. 필자는 궁금하여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책상(Space)은 어디에 있는지, 장학금(Funding)은 어디서 받는지, 졸업을 하려면 어느 학과의 수업을 들어야(졸업 요건) 하는지 등을 말이다. 한편으로는, KAIST에서 비슷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학제 간 학습과 학위 과정이 KAIST에서도 가능하게 될까를 생각해 보았다. 서남표 총장 시절에 추진했던 ‘융합 석사 과정’이 이와 비슷한 시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가 해양과로 이동하여 WCU (World Class University) 사업에 참여하던 기간에는, 본인이 지도하던 iCAD연구실 지도 학생들의 소속은 대부분 기계공학과 였지만, 5년여에 걸쳐서 차차 해양과 소속 학생들로 바뀌었다. 학과장이었던 필자의 인사 평가는 공과대학장이 하였지만, 논문, 연구비, 특허, 외부활동 등의 실적에 대한 평가는 해양과로 이동하여 학과 간 평가 시에 사용되었다. 지금도 학제 간 융합연구와 교육을 위해서 겸임교수 제도가 활용되고 있지만, 학생 TO의 배분 등 자원의 배분과 교원의 인사 평가를 어느 학과장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성과 배분의 문제가 같이 정리될 필요가 있다.

서남표식 교육 실험을 다시 시행해볼 수 있을까?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설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다. 행정적인 부담과 학생 모집, 학과목 개설, 예산 확보, 우수한 교수진의 규합 등 대형 학과에서 필요한 일들과 유사한 수준의 업무가 요구되는 일이다.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척하는 창학은 벤처기업의 창업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현재 진행되는 창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들도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2000년도의 1차 창업 붐 시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나섰고, 심지어 삼성전자나 정부 공무원 중에서도 창업에 나서서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창조경제를 내세웠던 박근혜 정부를 포함하여, 현재 추진되는 창업 프로그램에서는 직장의 경험자들이 대거 나서는 모습은 보기 어렵고, 학생들과 은퇴자들 중심으로 창업에 나서는 경향을 보인다. 현역에 있는 경력자들이 대거 창업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1차 창업 붐의 교육 효과로 보인다.       2000년도 창업 붐에 대거 참여했던 창업자들은 상당수가 실패를 맛보았다. 벤처는 90%가 실패한다는 통계는 교과서에도 실려 있을 정도이니, 그 실패 자체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의 많은 수가 신용불량자가 되어 큰 고통을 겪었고, 아직도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벤처 투자 심사 시에 비슷한 내용의 아이디어라면, 창업자의 과거 실패 경험을 추가적인 자산, 즉 기산점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한국은 투자금에 대한 미회수로 사업 실패를 마감해야 하는 주식회사 법인 제도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임원들이 대출금에 대해 연대책임을 지는 연대보증의 요구로 인해, 신용불량자가 대량 생산되는 제도적인 문제를 가졌다. 창조경제 추진과 함께 창업 붐을 다시 일으키려고 박근혜 정부가 애를 썼지만, 현재의 상황은 젊은 학생들 위주로 창업이 진행되고 있어, 젊은 신용불량자를 대거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창업처럼 창학도 어려운 일이므로,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기 위한 인센티브를 많이 제공해야 하지만, 이와 함께 예상되는 90%의 실패를 대비해 명예로운 퇴진로를 늘 열어 두어야 한다. 현재처럼 새로운 도전을 백년대계에 어긋난 부질없는 일로 여기고, 그 실패의 책임을 도전했던 집단에게만 전가한다면, 우리의 교육은, 선진국에서 충분히 실험을 하여 안정화가 마무리된 학문 분야를 의약품처럼 수입하는 교육 분야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교육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고, 세계를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그것이 아니라면, 새로운 작은 도전들을 지속해 나가면서, 동시에 교육의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학문 분야의 자율적인 생성과 소멸
  KAIST에서 그동안 진행한 새로운 학과의 설립과 폐쇄는 대부분이 톱다운으로 진행되었다. WCU사업처럼 정부의 예산지원과 맞물린 새로운 학과의 설립이 좋은 사례이다. 1971년의 한국과학원(KAIS)이나 1984년의 한국과학기술대학(KIT)의 설립도 정부의 주도적인 드라이브를 통해서 진행되었고, 수요가 부족하거나 문제점이 발견된 프로그램의 종료도, 경영진이나 정부의 판단으로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수요에 의한 버텀업 방식의 프로그램의 신설은, 취업에 민감한 2년제 대학에서 활발해 보인다. 취업 시장(Job Market)의 추이를 기반으로 다이나믹하게 변화해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은 수요와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아산병원에는 총 103개(50개의 진료과와 53개의 진료센터)의 진료 과목이 있다. 교수진이 400여 명이니 (비전임교원을 포함한 전문의 수는 2014년 8월 현재, 서울아산병원이 865명, 추가로 일반의와 전공의가 673명) 전공 분야(과)를 8명 단위로 세분화한 것이다. 아마도 병원의 운영을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세분화한 것으로 보인다.

  KAIST가 자랑하는 무학년 무학과 제도처럼 학문의 단위도 보다 유연하게 그리고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운영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학생들에게만 학과 선택권을 제공할 것이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학과 선택권이 주어져야 한다. 시대의 변화는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므로, 이에 맞춰 새로운 학문 분야를 자율적으로 시작하고 종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물론, 창업처럼 90%에 달하는 실패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작은 단위의 시도가 가능한 제도가 좋을 것이다. 예를 들면, 대학원 단위에서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고, 학사(Undergraduate) 프로그램은 대학(College) 단위의 큰 규모로 운영하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실질적인 대학원 중심 대학이라는 장점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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