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敵의 언어로 작가가 되다
아고타 크리스토프 - <문맹>
[449호] 2018년 05월 29일 (화) 하예림 기자 yerimha13@kaist.ac.kr

  문맹이 된 사람이 있다. 네 살부터 읽을 줄 알았고, 지어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짧은 연극 대본을 써서 학교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정치적 이유로 망명하게 된 그에게 모국어는 소용없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은 헝가리에서 태어나 스위스로 망명한 후 프랑스어 작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다.
  작가의 학창 시절,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고, 세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뉴스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선생님들이 러시아어를 가르치고, 러시아어로 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언어의 사보타주’라 일컫는다. 생산 설비 및 수송 수단을 파괴해 고용주를 약화시키듯, 언어의 억압만으로도 사기를 꺾기는 쉬웠다.
  망명 후, 생존하기 위해 프랑스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프랑스어로 말한 지 30년, 글을 쓴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에게 프랑스어는 ‘적(敵)의 언어’이다. 프랑스어가 헝가리어를 ‘죽이기’ 때문이다. 스위스에 발들이는 순간, 프랑스는 그의 언어적 정체성에 위협이 되었다. 헝가리어를 포기하고 프랑스어를 배워야만 했다.
  “스위스에 도착하자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은 거의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하지만 문맹 상태를 극복하고 저자는 다시 글을 쓴다. 식당에서 프랑스어 희곡을 공연하고, 라디오에서 프랑스어 방송극을 쓴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한 짧은 글을 쓴다. 두 출판사는 이 글을 거절했지만, 세 번째 출판사의 도움으로 등단하게 된다.
  “어떻게 작가가 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작가가 된다. 우리가 쓰는 것에 대한 믿음을 결코 잃지 않은 채,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쓰면서.” 크리스토프가 말했다.
  모국어를 잃은 그가 프랑스어 작가가 되기까지 걸어온 여정이 전개된다. 과장된 묘사 없이 담담하다. 지금은 외국어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도전은 언젠가 문맹이었고 문맹이 될지 모르는 우리가 생각할 거리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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