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과학 그 발자취를 되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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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과학 그 발자취를 되새기다
  • 강재승, 박진현 기자
  • 승인 2010.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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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국가 조선, 과학에 길을 묻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사농공상(士農工商). 이 두 말만 보더라도 조선이 얼마나 농업을 숭상했는가를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농업은 국가의 근본이었으며, 가장 많은 백성이 종사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 및 기술 발전이 농업과 관련된 분야에 치중되어 있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런 경향은 과학동산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전시된 기구의 상당수가 시간과 날짜를 표시하거나 날씨를 나타내는 등 농사짓기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농업에 매우 중요한 날짜와 시간, 그리고 날씨와 천문은 조선 조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일 중 하나였다. 지금이 어떤 절기인지 아는 것은 씨를 뿌리거나 모를 내는 시기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강우량 등의 날씨 역시 한 해 농사의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였다. 별이나 행성의 운행과 모양은 농사의 성공이나 조정의 길흉화복을 말해 준다고 생각되었고, 별을 관측하는 기관은 점을 치는 역할을 같이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의 과학은 이런 일에 어떻게 관여했으며, 정보들을 어떻게 측정하고 표시했을까.

시간을 알리는 데 자연의 힘을 이용하다
조선시대 시계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해시계이다. 해시계는 인류가 가장 먼저 사용하기 시작한 시계로, 그림자를 만들 수 있는 물체와 그림자의 위치를 나타낼 눈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나 영국의 스톤헨지 유적 역시 해시계의 흔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조선의 해시계는 이보다는 좀 더 발전한 것으로, 정오에 가까워질수록 느려지는 태양의 하늘에서의 움직임을 고려해 시간별로 간격이 다른 눈금을 사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조선시대 해시계는 앙부일구다. 조선 세종 16년(1434년)에 처음 설치된 이 해시계는 오목한 반구형으로, 이전까지 쓰이던 평면 해시계를 개량, 보완한 것이다. 24절기를 나타내는 가로 눈금과 12시를 나타내는 세로 눈금이 반구형 표면에 새겨져 있다. 세로 눈금은 시간에 따라 태양의 위치가 동에서 서로 움직이는 것을 나타낸다. 가로 눈금은 계절별로 태양의 남중 고도가 달라지는 점을 이용해 24절기를 알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글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12지신 그림을 그려 시각을 표시했으며 혜정교(지금의 광화문 광장 자리)에 처음으로 설치해 많은 백성들이 보고 또 만드는 법을 알게 했다. 다른 해시계로는 현주일구가 있는데, 들고 다니면서 시간을 측정할 수 있도록 한 기구이다.

한편, 일성정시의라는 시계도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태양뿐 아니라 별의 움직임으로도 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밤에는 시간을 알 수 없었던 해시계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다. 별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 적도의식 망원경의 원리와 비슷하다. 시계의 중심을 북극성을 향해 맞추고 나서 기준이 되는 별을 찾아 움직인 각도를 관측하는 것이다. 실제 크기는 손바닥만 해 움직이면서 시각을 관측할 수 있도록 했으며, 현재 과학동산에는 약 7배 크기로 확대 복원되어 있다.

이렇게 천문 현상을 이용한 시계들은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늘이 흐리거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을 때는 시간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바로 물시계인 자격루이다. 자격루는 여러 개의 그릇과 맨 밑의 물받이 통으로 되어 있으며, 큰 물통에서 작은 물통을 거쳐 물받이 통에 물이 점점 차오른다. 일정한 높이에 물이 다다르면 수면이 지렛대 장치를 건드리고, 장치는 끝에 있던 쇠구슬을 밀어 구멍 안으로 넣는다. 구멍을 따라 쇠구슬이 이동해 다른 장치를 건드리면 더 큰 구슬이 떨어지게 되고, 이 구슬은 십이지신 모양 인형의 팔과 연결된 지레를 건드려 인형이 종을 치게 한다. 서울 곳곳에 집을 지어 자격루 소리를 듣고 북을 쳐 시간을 알리도록 하기도 했다.

농경사회, 하늘의 뜻을 알아야 한다
요즘에는 지구온난화나 이상기후 때문에 달라진 면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계절에 따른 기상 현상도 예측 가능한 편이다. 여름에는 장마가 지고, 가을에는 태풍이 오는 등의 현상이 대표적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합성 비료나 비닐하우스 등의 보조 장비가 없었던 과거에는 태풍의 세기나 강우량이 농사의 성패에 큰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날씨나 기후의 정보를 정확히 관측해야 했다.

세종 이전에는 땅을 파서 구덩이에 고인 빗물의 높이를 재는 방법으로 강우량을 측정했다. 조선왕조실록(이하 실록)세종 23년의 기록을 보면 이미 당시에 이 방법의 문제점을 알고 측우기를 만들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소에 따라 흙의 무르기가 달라 자를 꽂았을 때 기준점을 잡기 어려우며, 흙으로 스며든 물의 양 역시 각각 달라 정확한 강우량을 알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따라 금속으로 측우기를 만들어 설치하고 관청의 관원이 고인 빗물의 깊이를 재 보고하게 했다. 지방 곳곳의 고을에도 도자기나 기와로 측우기를 만들고 고을 수령이 관측,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비가 오면 그날의 날짜와 비가 온 시간, 강우량을 측정하고 기록해 나중에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오늘날 기상청이 일기 자료를 보관하는 것과 같은 일을 했던 것이다. 만들어진 측우기는 높이가 2척, 직경은 8촌인 원통형 금속제 그릇으로, 화강암으로 만든 직육면체 모양의 측우대에 올려 관상감에 설치했다.

수표는 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만든 기구로, 최초의 수표는 세종 때 청계천과 한강에 설치된 것이다. 청계천에 있던 수표는 낮은 돌기둥을 강바닥에 설치하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물의 높이를 표시했으며, 한강에 있던 것은 물 위로 드러난 바위에 눈금을 새겨 수위를 알 수 있게 했다. 이 역시 조정 관원이 때로 살피고 왕에게 보고해 홍수나 가뭄을 대비할 수 있도록 했다. 과학동산에 복원되어 있는 수표는 성종 때 화강암 기둥에 눈금을 새겨 만든 것으로, 강바닥까지 닿도록 바닥돌을 깊이 박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뒤 연꽃 모양 머릿돌을 올렸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도록 만들어진 풍기대는 보물 제846호로, 현재 창경궁에 보관되어 있다. 화강암으로 만든 받침과 깃대, 깃발로 구성된 단순한 구조로, 육안으로 깃발이 휘날리는 방향과 세기를 보고 풍향과 풍속을 가늠하도록 만들어졌다.

이 별은 왕의 별, 이 별은 조선의 별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오장원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제갈량이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는 장면을 알 것이다. 이처럼 옛 사람들에게 별은 현재를 나타내는 거울이자 미래를 보여주는 지표였다. 조선의 조정에도 별을 관측하고 점을 치는 기구인 관상감(세종 7년까지는 서운관)이 따로 있었다. 세종실록을 보면 ‘요순시대부터 한나라, 당나라에 이르기까지 천문을 중요히 여기고 관측 방법이 알려져 있었으나, 시간이 많이 흘러 그 방법이 자세하지 않아 혼의, 혼상, 규표, 간의 등을 제작했다’라는 말이 있다. 옛 조선의 우주관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각지다는 말로 요약된다. 동서남북으로 네모난 땅에 돔 모양의 하늘이 씌워져 있으며, 그 하늘에 별이 박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는 태조 4년에 제작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석각(石刻])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혼상은 이런 ‘둥근 하늘’ 개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구로, 구면에 별들을 표시해놓은 것이다. 관상감에서 혼상은 낮밤의 시간과 계절을 측정하는 데 사용했다. 또한, 우주의 구조나 행성의 운동 등을 교육하고 설명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마치 현대의 천체투영관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혼천의는 조선 전부터 천문 관측에 쓰여 온 기구로 주로 천문관청에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설치했다. 가운데 지구의를 두고 눈금이 새겨진 적도, 황도, 백도환 등의 고리를 설치해 기준점을 삼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기구는 사람이 직접 조작하면서 눈으로 위치를 확인해야 하며, 시간에 따라 손으로 회전시켜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세종 20년(1438년) 장영실은 흠경각이라는 천문관측시설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비치된 혼천의는 시계장치에 연결되어 하루에 한 바퀴씩 자동으로 회전하도록 만들어졌다. 오늘날의 망원경에 달린 별 추적기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왕조 500년, 과학자는 장영실뿐?
안타깝게도 조선시대 과학기구를 복원해 한 곳에 모아 전시한 곳은 이곳 장영실 과학동산과 여주 영릉의 야외 과학기구 전시장뿐이다. 이들 말고는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과학 역사를 다루는 다른 유물 유적도 미비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조선의 과학기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아 친숙하지 않을 뿐이다.

조선 전기의 활자 개량과 인쇄술 및 제지술은 오늘날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천문을 관장하는 기관인 관상감은 조선시대의 기상청으로서 천체관측을 통한 비교적 정확한 일기예보로 나라 전체의 농사일에 큰 도움을 주었다. 임진왜란 전후로는 전쟁의 여파로 비격진천뢰, 화차, 거북선, 신기전 등 파괴력이 상당한 신무기들이 개발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실학의 발달로 의학분야와 농업분야가 크게 발전했다. 허준은 최고의 동양의학서로 평가 받는 <동의보감>을 집필했고,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에서 체질에 따른 예방의학인 사상체질의학을 정리했다. 또한, 실학의 발달로 농업, 어업, 축산업 등이 새로운 기술의 도입으로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이와 더불어 시장이 크게 형성되면서 조선시대의 신분사회도 변화했다.

사농공상이라는 신분사회의 현실에 밀려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기술을 개발했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는 전쟁과 일제강점기 같은 국난을 겪으면서 많은 사료를 잃었기 때문이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와 홍보가 따른다면 대중들도 과거 과학기술에 대해 쉽게 알게 될 것이다.

민족의 슬기와 전통을 알리고 계승해야
최근 들어 과거 과학기술의 역사를 연구하고 알리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작년 7월에는 판 모양의 석재를 겹쳐 쌓는 건축기술로 온전한 왕릉의 모습을 유지한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11월에는 세종대왕을 ‘2009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국립과천과학관에 소재한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은 큰 업적을 남긴 과학기술인의 발자취를 소개하고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어 현재까지 장영실, 우장춘, 최무선을 비롯한 26명이 헌정되었다.


* 진태양시와 표준태양시
해시계가 나타내는 시간은 기본적으로 진태양시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태양시와는 차이가 있다. 진태양시란 말 그대로 태양의 움직임을 시간의 기준으로 삼는 것으로, 태양의 남중부터 다음 남중까지의 간격을 하루로 정의한다. 진태양시의 장점은 태양의 움직임과 시간이 완전히 일치하며 계절이나 절기 역시 날씨나 온도 변화와 잘 맞는다는 것이다. 다만, 진태양시를 사용하면 하루의 길이가 계절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현대 사회에서는 표준태양시를 사용하고 있다.

진태양시에서 하루의 길이가 계절별로 다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것이다. 타원형 궤도 때문에 태양과의 거리가 가까운 점과 먼 점이 있게 되고, 위치에 따라 공전 속도가 달라진다. 지구가 공전 궤도를 움직인 위치만큼 더 자전해야만 태양을 마주 볼 수 있게 되는데, 공전 속도가 계절에 따라 달라진다. 이에 따라, 태양을 다시 마주 보기 위해 돌아야 하는 각도가 다르고, 따라서 하루의 길이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구가 똑바로 서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진 만큼 황도, 즉 태양이 움직이는 궤적이 적도와 어긋나게 된다. 때문에, 지구에 있는 관측자에게는 태양이 적도 근처에 있을 때 느리게 움직이고, 적도에서 멀어질수록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진태양시의 하루는 남중과 남중 사이의 시간 간격이므로, 여름에는 하루가 길어지고 겨울에는 하루가 짧아지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평균태양시가 만들어졌다. 평균태양시는 하늘에서 항상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가상의 태양을 기준으로 한 시간으로, 계절 변화에 따른 하루의 길이 차이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평균태양시는 계절에 따라 진태양시보다 14분까지 빠르거나 16분까지 느리다. 현재 평균태양시는 1세기에 1.4ms씩 느려지고 있는데, 달과 지구 사이의 조석력에 따라 지구의 자전이 느려지는 현상 때문이다.

*장영실 과학동산 탐방하기
장영실 과학동산은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작년 6월에 복원을 시작해 11월에 복원을 완료했다. 다양한 해시계와 혼천의, 측우기와 측우대 등의 조선시대 천문기기 18종 19점의 복원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 관람이 가능하며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위해 전통 과학문화 해설자가 천문기기의 원리와 의미에 대해 전문적인 해설을 제공한다.

장영실 과학동산을 관람했다면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동산 바로 뒤편에는 동래읍성 북문과 복원해놓은 성곽이 있다. 동래읍성 역사관에서는 읍성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읍성 서쪽에는 사적 제273호인 복천동 고분군과 가야 유물ㆍ유적을 전시하는 복천박물관이 있다. 시내 쪽으로 내려오면 근대 농업의 부흥을 이끈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기념관도 있다. 부산지하철 1호선 동래역에서 내려 4번 출구로 나와 동래읍성 북문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장영실 과학동산을 비롯한 복천동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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