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소개글에 ‘항상 말년처럼 살고 싶다’라고 쓰여있던데, 이말년이라는 필명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젊었을 때는 이것저것 역경이 많이 있지만, 그런 고비가 다 지나가고 인생의 말년이 되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어요. 말년의 여유를 느끼며 살고 싶어서 군대에서 말년생활 할 때 지은 호에요. 제 풀네임이 말년 이병건이에요. 그걸 줄여서 이말년이에요. 별 의미는 없어요. 실명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죠? 더 웃겼을 텐데.

말년처럼 살고 싶다고 했지만, 사실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어요. 단가가 싸니까 일을 많이 해야 하잖아요. 요즘 페이스 떨어지는 것도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그런 거에요. 광고만화 같은 건 수정요청도 있어요. 그런데 좋은 말로 해서 수정요청이지,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뜻이거든요. 내일분량을 올려야 되는데 수정요청 들어오기도 해요.

 

동시에 여러 개 연재하면 바쁘지 않으세요

네. 제가 손이 느려요. 저는 그림이 ‘아니다’싶으면 지우고 다시 그려요. 선 위에 덧칠하면 전에 그린 게 도움이 되잖아요. 그런데 전 새로 그리지 않으면 이상하게 껄쩍지근하더라구요.

사실 제 그림이 대충 그린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오래 걸려요. 리플을 보면, ‘내가 발로 그려도 이것보다 잘 그리겠다’ ‘살다 살다 이렇게 못 그리는 애 처음 봤다’ 등의 글이 있어요. 제 미래도 걱정해주고. 하하하. 공장이나 가라고. 직업도 알선해주고. 제가 쿨한 성격이 아니거든요. 다 신경 을 쓰다 보니까, 자꾸만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댓글 다 읽어 보시나요

전 ‘이말년’을 검색해서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오는 것까지 다 봐요. 그쪽엔 더 심한 댓글이 많죠. 악의를 담아서 말한다기보다는 냉정한 평이 많아요. 보통 네이버를 보면 재미있다, 없다, 이런 식이잖아요. 커뮤니티 사이트는 느낀 점을 그대로 적기 때문에, 반응 알아볼 땐 그쪽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야후는 대책 없이 직업만 소개해주고. 네이버는 너무 칭찬 일색. 딱히 네이버가 더 좋은 것도 아니에요. ‘너 참 잘한다’하고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같은 만화인데도, 커뮤니티 사이트 가면 반응이 확 다르거든요. ‘이말년 솔직히 이번 건 대충했네’ 하는 거, 정확하게 맞춘 거에요. 시간 없어서 급하게 한 걸. 댓글 보면 너그럽게 봐주시는 분도 있고, 까탈스럽게 보시는 분도 있어요.

 

3~40대층보다 20대층에 인기가 더 많지 않나요

나이 어린 사람들한테 인기가 많아요. 아닌가? 중1 사촌 동생이 있는데, 인기가 좋대요. 30대 중반 이상으로 가면 욕만 먹어요. 제 만화가 좀 휘발성이 강하잖아요. 웹툰 작가 주호민씨의 ‘무한동력’은 1년 후에 봐도 재밌거든요. 그런데 제 만화는 한 달만 지나도 ‘떡밥’이 다 식으면 재미가 없어요.

 

학교에 있으면 밖에 잘 안 나가게 되어서 인터넷 쇼핑을 자주 이용하는데요, 완전 공감. 조선옥션

‘조선옥션’ 상편을 연재했을 때 G마켓에서 메일이 왔어요. 직원들이 재밌게 보고 있다고. 다음 하편은 불량 고객들, 진상 손님들 다뤄 봐도 재밌을 것 같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하편 좀 얼버무리듯이 끝냈잖아요. 조선옥션은 망하고. 그다음엔 연락이 안 오더라고요. 그냥 이마에 스탬프 찍는 게 다인 만화죠.

머릿속에서 생각할 때는 진짜 빵 터져요. 그런데 제가 실력이 안되니까 이미지로 정확한 동작 묘사를 못 하는 거에요. 보다 보면 아주 뜬 거 말고 재미없는 게 끼어 있잖아요. 원래 머릿속에선 다 빵빵 터졌던 거에요. 연출 같은 걸 제대로 못 했어요. 시간에 쫓겨서 제대로 못 한 것도 많고요. 전 독자 생각 안하고 그냥 제가 재밌으면 그려요. 그런데 제가 그려놓고 재미가 없으면 그냥 부끄러워요.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무척 좋아하세요. 집에서 노는 것보다야 낫잖아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적성에 안 맞아서 졸업하고서 뭘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심지어 공장 다니라는 얘기도 하셨어요. 저는 입시를 그리는 걸로 했으니까 당연히 시각디자인 하면 고상하게 일러스트를 그릴 줄 알았어요. 그런데 디자인은 예술이 아니잖아요. 작가주의적으로 할 수도 있겠지만, 보통 회사에서 콘텐츠 만드는 거 배우니까. 대책 없죠. 그럼 편입을 했어야 하는데, 게을러서 그건 또 안 했어요. 불평불만만 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노력 같은 건 없었어요. 그렇게 시간은 흘러 흘러. 졸업할 때가 되고. 하하하. 하지만 지금은 교수님도 자랑스러워 하시죠. 사실 뭐 자랑스러워 하는 건 아니고, 옛날의 한심한 놈이라는 인식이 좀 사라진 것 같아요.

 

기승전병의 대가라고 불리시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말년에게 ‘병맛’이란

병맛이라고 따로 정의를 내리지 않아요. 평소 개그만화 스타일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나쁜 건 아니에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칭찬의 의미로 말하는 거잖아요. ‘빵 터졌다’ 이런 식으로. 그런 걸 알기 때문에 그냥 좋은 뜻인가 보다 하는데, ‘오늘도 병맛 두 개 성공했어!’ 하면서 좋아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사실 별생각은 없어요. 병맛? 그때그때 물어볼 때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해서 대답이 달라요. 저만 병맛이 아니고, 병맛은 그냥 유행하는 코드잖아요. 어쩌다 보니까 그 분류에 제가 포함된 것 같아요.

 

개그만화 작가로서 힘든 점은 없나요

저는 만화 ‘멋지다 마사루’ 작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후속작 ‘삘릴리 불어봐 재규어’보다 마사루가 훨씬 좋았어요. 개그들이 러프했기 때문에 호소력이 있었는데. 짙은 눈썹, 굵은 선 이런 거요. 요즘 재규어는 하나의 정착된 그림체라 깔끔하게만 그려지죠.

마사루 작가가 쓴 후기가 있어요. 데뷔하기 전엔 1년에 한두 편? 하늘에서 소재가 떨어질 때까지 계속 놀다가 생각나면 그때서야 그리는 타입이었대요. 어느 날 출판사에서 한 번 해보겠느냐고 해서 아무것도 준비한 것 없이 시작한 거에요. 프로는 마감 때문에 억지로라도 짜내야 하는데, 5화까지 그리고 나니 바닥났대요. 마사루가 좀 일찍 끝났잖아요. 1년 3개월? 끝이 좀 흐지부지했어요. 자기에게 대성공을 준 동시에 실패를 맛보게 한 작품이래요. 만화 자체가 실패했다는 게 아니고, 자기 벽을 느낀 거죠. 지금 그만 안 두면 나중에 더 정신을 못 차릴 것 같아서 그만둘 수밖에 없었대요. 그걸 보면서 ‘아, 어쩜 이렇게 나랑 똑같을 수가 있을까. 게으른 것부터 해서’라고 생각했죠.

저도 사실 ‘밀덕’에서 끝났어요. 보통 제일 재미있었던 거 말하잖아요? 그럼 초반 한 20화까지 많이 나와요. 요즘은 두덕리 온라인 말고는 변변한 게 없어요. 이제 1년 좀 넘었죠? 슬슬 한계를 느끼는데, 그 작가는 그만둔다는 선택을 했잖아요.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계약 끝나면 이걸 내려야하나 하고 고민해요. 더 하면 추한 꼴만 보여줄 것 같고.

 

다른 장르에 도전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이말년 씨리즈 연재가 끝나고 만약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존 스토리가 있는 장편을 제 시각으로 해석해보고 싶어요. 등장인물이 고정된 상태에서 시트콤 형식으로. 옴니버스라고 하나요? 이말년 씨리즈는 매번 설정을 짜야 하는데, 머리 아프죠. 하다가 재미없으면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게 좋지만요.

 

이말년이 생각하는 만화란

만화는 가볍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거운 건 많잖아요. 영화도 있고, 소설도 있고요. 만화 같은 건 가볍게 보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대책 없이 시작했어요. 만화 자체를 우습게 봤죠. 하하하.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창작 자체가 굉장히 괴로워요. 물론 재미있어서 시작한 것이지만, 의무적으로 기한 내에 결과물 하나, 그런 식으로 주어지게 되면 힘들어요. 연재 시작하기 전에는 제가 다른 만화에 주는 평이 엄청 짰어요. ‘연재중단 안 하고 뭐하냐. 쓰레기네.’ 그런데 제가 막상 그 입장이 되어서 짜내고 악플 먹고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 재미없는 게 올라오면 많이 힘들었나 보다. 시간이 없었나 보다. 그렇게 되더라고요. 뭔가를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계약기간이 끝나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스토리를 미리 짜놓고 시작하나요

개그물이니까 어떤 주제만 생각하고 일단 그려요. 그리다가 막히면 그만두고 또 다른 걸 생각해서 그려요. 그럼 짤막짤막하게 여러 개가 나와요. 그리고 공통된 게 있으면 엮어요. 두세 개 생각했던 걸 꿰는 거에요. 예를 들어 이발사 이야기랑 청소부 얘기가 나왔어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여도 연결고리가 있으면 억지로 엮어요. 그래서 제 만화엔 뜬금없이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어요. 어쩔 수 없이, 등장해야 했기에, 그가 필요했기에. 의도하지 않은 웃음이에요.

 

오히려 허를 찌르는 게 더 재밌는 거 같아요

스토리텔링의 부재죠. 막히면 ‘드립’같은 거 하나씩 넣고. 사실 제가 ‘떡밥’패러디로 끝내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마무리가 생각이 안 나서 넣는 건데. 처음부터 그 패러디를 위해서 그리는 게 아니고, 하다가 보니까 할 게 없어서 ‘요즘 ‘떡밥’ 뭐 있지?’ 하고 넣는 거에요.

‘비트박스’나 ‘올림포스 스쿨’같이 여운 있게 끝내는 게 좋아요. 그런데 항상 그렇게 그려지지는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남발해요. 대폭발, 가스폭발, 지구폭발. 그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최고예요. 분량이 한 열 컷 정도 남잖아요? 그럼 폭발이 들어가는데, 너무 많이 쓰니까 물려서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해요. 요즘엔 ‘웃음장례식’ 이후로 폭발을 좀 줄였어요. 너무 터뜨리니까, 저도 그렇고 보는 사람도 그렇고 면목이 없더라고요.

 

결국 기승전병은 작업을 하다보니 결과물이 그런 식으로 나오게 된 건가요

그렇죠. 만화를 보면 보통 결말, 반전을 생각해놓고 앞을 구성하는데, 전 그걸 생각 안 하는 거죠. 가끔 생각하고 그리는 것도 있지만 몇 개 안돼요. 그러면 그냥 재미없게 되는 거에요.

제 만화에서 상하 편 나뉘는 화가 재미없는 게, 그리다가 시간이 없잖아요? 그럼 ‘상’하고 그냥 끊어요. 그다음에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식이에요. 그래서 별로 재미가 없어요. 상하로 끊어서 성공한 게, 제갈공명전 정도예요. 그건 미리 생각해놓고 들어간 거라서 매끄럽게 진행이 되지만, 다른 건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패러디가 많은데, 웹툰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나 독자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야후를 절대 대충 하지 않는다는 거? 하하. 시사성 있는 만화가로 인식되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되는대로 유행하는 ‘떡밥’을 넣은 거예요. 딱히 날카로운 눈을 가지고 어떤 대상을 비판하고자 무겁게 접근하는 것은 아니고, 뉴스 봤던 것을 생각나는 대로 그리는 거예요. 그럼 사람들이 알아서 해석을 잘해줘요. 저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요.

제가 뭐 좌파적인 입장에서 저 우파 것들, 저 쥐새끼, 이런 건 아니에요. 그냥 재미있는 개그만화가로 인식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스스로 만화가, 작가라고 말하기가 좀 부끄러워요. 작품이라고 말하기도 조심스러워요. 제가 알아서 주눅이 드는 편이긴 하지만, 실제로도 부족한 걸 많이 느껴요. 그림이나 연출이나 아마추어 티가 너무 많이 나니까요. 뭐 그게 강점이기도 하죠.

 

지금의 작화가 정립된 계기나 이런 화풍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만화가 최불암 씨 아시죠? 그 사람 영향을 좀 받았어요. ‘노이트노라’라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제가 그 사람이랑 같은 게시판에 만화를 올렸거든요. 처음으로 만화를 올린 데가 거기에요. 최불암 만화를 재미있게 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았어요. 대본소만화 아세요? 눈매가 독수리오형제 같고, 진지한 그런 거 있죠. 최불암이 그런걸 잘 그려요. 제 진지한 눈빛이 그 영향을 좀 받은 것 같아요. 어쩌다 보니 그게 정착이 되었는데, 작화가 굳어지면 또 안 좋을 거 같아요. 그래서 옛날 건 재미있는 것만 가끔 보거든요. 재미없는 건 부끄러워서 못봐요. 다른 사람이 보기엔 몰라도, 제가 느끼기엔 예전 그림체가 더 느낌이 살아요. 그렇게 다시 그리라면 못 그려요. 저는 보면서 ‘아, 이 진지한 표정을 왜 지금은 못 그리지?’하고. 지금의 진지한 표정은 틀이 잡혔는데, 옛날엔 모르니까 진짜 이상하게 그려도 이상해서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봐도 만족스러운 작품을 고르라면

이말년 만화의 정수? 다 고만고만해요. 굳이 고르자면 ‘불타는 버스’? 그거 진짜 욕 많이 먹었어요. 사람 죽는 게 재미있냐고 야후 베스트 리플에 있죠? 그런데 그게 제일 재밌었어요. 가장 생각 없이 그렸고, 아마추어일 때 그냥 찍찍 그려서 올렸는데 제일 반응 좋았어요. 지금 봐도 이상하게 매끄럽고. 지금에 비해선 약간 분량이 적은데도 그런 임팩트가! ‘불타는 버스’ 이전에는 그런 그림체가 아니었어요. 그냥 특집으로 한 번 한 건데, 그게 굳어버린 거에요.

 

여가시간에는 무엇을 하시는지

야구게임 ‘마구마구’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해요. 굉장히 심심하게 살아요. 영화도 귀찮아서 잘 안 봐요. 뭔가 하나를 계속 봐야 된다는 게 너무 지루해서. 가만히 있는 건 못 견디지만, 그렇다고 많이 움직이는 것은 또 싫어해요. 하는 건 집 앞 산책 정도? 서울도 잘 안 가요. 잘 안 가니까 애들도 잘 안 만나고. 친구도 없고. 그래서 더 만화 줄거리 짜기가 힘든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이런 걸 많이 봐야하는데. 인풋(input)이 있어야 아웃풋(output)이 있잖아요. 예전에 있었던 건 예전에 다 나갔으니까, 이제 충전해야 되는데.

게으름은 인류의 가장 큰 적이에요. 오, 이거 괜찮다, 그죠? 게으름 때문에 인류가 멸종될 위기에 처한 거에요. 보통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요. 이런 상황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안 나온 게 한 몇백 개 되요. 어떨까 생각만 하고 게을러서 또 안 해요.

 

사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어우, 다크서클이 인중까지 내려와서. ‘뽀샵’ 다 해주시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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