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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을 찾아서"를 읽고
[448호] 2018년 05월 15일 (화) 오범석 학우 (수리과학과 17) kaisttimes@gmail.com

  이 책의 도입부를 읽으며 소설에 쓰인 가상의 설정이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느냐 죽지 않았느냐의 한 가지 일을 가지고 현실과 가상이 어떻게 달라질지를 서술하는 것이 논리 있게 진행되었고 또 ‘이토 히로부미가 만약 죽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았을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그 후의 국제사회는 어떻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생각까지 이르는 사람은 더더욱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치적 분열과 같이 현실과 비슷한 부분도 많아서 설정을 잘한 것 같다.
  가장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주인공인 히데요가 공항에서 검문에 걸린 후에 감옥에 보내져 취조를 당하고 교육을 받은 내용이다. 놀랍게도 그를 교육한 것은 조선인이었다. 그의 이름은 하꾸야마로, 그 또한 조선인 지식인으로써 과거에 사상범이 되어 감옥에 온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사상범을 교육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가 히데요에게 교육을 하는 내용에 따르면, 이미 조선은 너무나도 일본과 많이 동화가 되어있고, 또한 과거의 히데요처럼 조선인들은 모두 그들의 뿌리를 이미 잊었다. 그래서 조선인들이 조선인으로 돌아가기는 너무 늦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상황에서 누구라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비록 우리의 조상들은 현실에서 끊임없이 저항을 하고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사실과 역사를 잊지 않았기에 독립을 한 후에도 우리 민족끼리 살아갈 수 있었지만, 이 소설 속 가상의 상황에서, 누구도 한반도의 역사를 모르고 자신들과 일본은 한 민족이라는 생각이 만연한 사회에서, 독립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한 가지 슬펐던 점은 우리가 흔히 ‘독립’이라는 글자를 들었을 때 생각하게 되는 민족적 가치관은 이상적인 것이고, 하꾸야마가 히데요를 교육하며 주장한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라서 이상과 현실을 모두 고려할 수 없다는 점에서 조금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런 것은 앤더슨이 그에게 건넨 국제신문에도 잘 나와 있는 내용이다. 신문에 따르면 “(중략) 이미 너무 많이 동화되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는 식민지들도 있다. (중략) ...일본의 조선이 그것이다” 라고 나와 있다. 또 하나 슬프다고 생각된 것은 이런 체제를 아예 바꾸기 위해서는 첫 발을 내딛을 사람의 용기가 필요한데, 사실 히데요처럼 조선의 역사나 일본의 왜곡에 대해서 사실대로 안다고 해도 이 체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그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의 가정, 직장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더군다나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는 조선인들은 대개가 지식인들일 것인데, 아마 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 중 누구도 그 편한 생활을 내버릴 용기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것도 현실과 이상에서 나오는 거리감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을 알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그리고 사실 어떻게 보면 지금 조선-내지의 일본 사회는 안정되어 있다. 정치적으로는 아닐지 몰라도, 사회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다. 이 평화를 깨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비록 거짓된 평화라 해도, 평화는 평화기 때문에 말이다.
  한편 책을 읽으며 좀 괘씸했던 내용도 있었다. 책의 도입부에 보면 회식자리에서 다나까 부장이 “조선은 일본이 지닌 십자가”라는 표현이 있었다. 참 웃긴 표현이다. 소설에서는 내지인과 조선인들이 모두 실제 일본과 조선 사이에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지(한일강제합병등)를 모른다는 가정을 한 것 같지만, 이렇게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과연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저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그런데 또 역사를 안다고 생각하고 저 표현을 봐도 참 화가 난다. 일본이 자신의 이익을 채우기 위해 강제로 합병을 하고서 마치 자신들이 희생을 하는 것처럼 표현을 하는 것은 정말 듣기 싫은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소설에서의 일본과 지금 이 현실에서의 일본은 그들의 성격상 다른 점은 없는 것 같다.
  작가가 재밌게 표현한 부분이 있었는데, 소설의 도입부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다면 어떻게 세상이 변했을까‘라는 책이 있었다며 소개를 하는데, 사실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 회식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조선과 내지가 떨어져 있고, 조선이 독립한 국가라는 소설의 얘기를 들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재미는 있다’고 평가한다. 마치 작가가 독자들에게 “물론 말도 안 되지만 재밌는 소설이다”라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주석 뒤에 *표시를 한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든 주석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없는 책을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책으로 해서 달았다는 것이다. 이것도 상당히 재밌는 소재였는데, 각 책의 부분에 알맞은 글들이 담겨서 좋았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에서 히데요가 임시 정부를 찾아 상해로 떠난다는 계획을 세울 때 약간 아쉽다고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히데요가 ‘조선인’이 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아니라 아오끼라는 헌병 소좌를 죽인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그런 용기는 아니더라도, 온 민족이 진짜 조선인이 되는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 자기 자신만은 조선인이 되기 위해 떠나는 것조차 아니라는 사실이 아쉽다. 물론 히데요가 아오끼를 죽인 후에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상해로 떠나자는 생각이 히데요가 조선인이 되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하긴 하지만, 그것이 직접적인 계기로 비추어지지 않은 모습이 아쉽기도 했다.
  끝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된 책의 제목, ‘비명을 찾아서’의 의미는 비명이 가야마의 믿음을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히데요가 끝부분에서 우리민족의 정신을 찾아 떠나는 것과도 연관되는 것 같다. 비록 가야마가 하꾸야마의 말대로 나중에는 조선 독립이 아니라 조선인들에게 ‘황국 신민’이 되라고 말했지만, 나는 하꾸야마가 “자신의 믿음을 가슴에 안고 부대낀 사람이 쉴 곳은 무덤 뿐이다”라는 하꾸야마의 말에서 가야마의 믿음이, 어쩔 수 없이 말한 ‘황국 신민이 되어라’가 아닌 조선 독립에 대한 믿음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제목인 비명을 찾아서의 의미는 작게는 히데요가 우리민족의 정신을 찾아 떠나는 것이고, 크게는 조선인 전부가 언젠가는 히데요와 같이 우리민족의 정신을 찾을 것임을 말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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