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때보다 많은 혁신이 일어나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도 혁신하기 어려운 요즘이다. 스티브 잡스를 필두로 한 몇몇 융합의 아이콘들이 부상한 이후 혁신의 실마리를 융합에서 찾고자 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 학교에서도 이에 질세라 자연과학 및 공학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융합기초학부를 신설하겠다고 예고한 상태이다.
  그러나 학우들의 반발이 거세다. 작년 총학생회가 실시한 융합기초학부 2018년 설치 연기에 대한 정책투표에서는 연기 찬성 의견이 무려 89%로 압도적이었다. 과연 융합기초학부 설립 계획의 어떠한 부분이 학생들을 우려스럽게 했던 것일까.
사실, 공과대학교가 혁신을 추구하며 융합에 힘을 주는 모습이 전혀 새로운 모습은 아니다. 국내에서만 해도 2009년 서울대학교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을 설립한 바 있고, 2014년에는 DGIST가 4년 무학과 학부 과정을 선보인 바 있다.
  언뜻 우리 학교의 융합기초학부 설치 움직임도 기존의 움직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실지로 융합이 중요한 가치인지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 학교 학생들이 이리로 압도적으로 융합기초학부 설치 연기를 요구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우리 학교의 계획은 다른 학교의 사례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 융합 과정을 누구에게 적용하느냐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 앞서 언급한 두 학교를 보면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의 경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대학원 과정일 뿐 학부생에게 적용되지 않고, DGIST의 경우 학부생에게 융합 교육 과정을 제공하지만 정보통신융합전공, 뇌·인지과학전공 등 매우 융합적인 목표를 설정한 대학원 과정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으므로 학부에 국한된 융합 교육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에 반해 우리 학교의 경우에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명분 아래 대학원으로 연계되는 융합 과정이 아닌 학부 교육만으로 완성되는 융합 교육 계획을 보유하고 있다.
  대학원에서와 학부에서 융합을 추구하는 것은 일견 속성이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질이 전혀 다르다. 대학원은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는 곳이므로 학문 생산의 장소로 볼 수 있다. 곧, 대학원에 설치된 융합 과정은 말 그대로 여러 학문 간의 학제적(transdisciplinary) 연구를 통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도출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하지만 대학원보다는 학부에 초점을 둔 융합을 추구할 경우에는 생산보다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라는 특성상 실제 융합을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학제적 영역에서의 교육을 진행하려면 실제로 여러 학문을 융합하는 모습 자체를 보여 주어야 하는데, 서로 내용이 겹쳐 융합이 이루어지는 경우보다는 오히려 내용의 확장을 위해 타 영역의 도입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아 내용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 학부의 특성에 합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부 중심의 융합 교육에서 학제적인 시도가 이루어지기보다는 각 학문의 내용을 고루 가르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따라서 우리 학교는 미래를 위한 준비로 학교에서 실제적인 융합 자체를 수행하기보다는 이를 수행할 수 있는 학생을 길러내겠다는 선택을 한 것으로 읽을 수 있다. 바로 이 부분이 우려스럽다. 융합기초학부의 알파이자 오메가요 최고의 명분이라고 할 수 있는 융합의 실현이 과정을 이수함을 통해 확실히 성취될 수 있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기존의 대학원 차원의 융합 과정은 실제 융합 연구 주제를 다루고 그에 관한 연구 결과를 생산하므로 설립 목표가 확실히 달성된다고 볼 수 있지만. 새로 설치될 융합기초학부는 필연적으로 융합 자체보다는 융합 대상을 탐구하는 것이 핵심이므로 우리 학교에서 일어날 융합 시도와 연계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반발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융합기초학부가 어떻게 학교 내외의 실제적인 융합의 발생과 연관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해 보인다.
  transdisciplinary는 학문의 영역을 뜻하는 라틴어 disciplina에 ‘너머’라는 뜻의 접두어 trans-를 붙여 만들어진 단어이다. 그런데 disciplina는 ‘공부하다’라는 뜻의 동사 disco(discere)에서 파생된 단어이므로 학문의 영역 이외에도 학문 자체를 뜻하는 단어로도 쓰일 수 있다.
  융합기초학부는 영어로 ‘the School of Transdisciplinary Study’라고 쓴다. 지금까지 제시된 설립 계획대로라면, 융합기초학부 또한 어원 격인 단어 disciplina가 그러하듯이 학문의 특정 영역 너머 융합이 넘쳐흐르는 꿈을 꾸지만 학문 너머 완연한 불능(不能)의 어딘가를 헤매기도 하는 이중적인 곳이 되어 버리고 말 것이다. 이름에마저 새겨진 이러한 이중성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보다 확실하고 탄탄한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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