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운치가 살아 숨쉬는 전주한옥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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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운치가 살아 숨쉬는 전주한옥마을
  • 황선명 기자
  • 승인 2010.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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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한옥군락, 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에서는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다. 지금 어느 시대에 있는지를 착각할 정도로 고풍스럽다. 700여 채의 한옥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전주한옥마을은 전주 풍남동 일대에 자리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한옥촌으로 전국 유일의 도시 한옥 군이다. 오목대와 이목대, 경기전 정전, 향교 등 중요 문화재와 문화시설이 산재한 전주한옥마을은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공간이다. 전통문화를 체험하며, 옛 선비들의 멋과 풍류를 느낄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전주한옥마을이다.

 

전주한옥마을의 도시한옥은  1910년대부터 산업화 사회로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우리나라 주거문화 발달 과정의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경기전, 향교, 학인당 등은 19세기 이전 조선시대의 역사성과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다. 한옥마을 내의 사옥들을 통해서는 근대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가옥구조의 변화, 해방 이후의 한옥으로의 변천 등을 엿볼 수 있다.

 

이성계의 발자취가 살아 숨쉬는

이목대와 오목대

전주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십분 남짓한 거리, 한옥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가면서 전주한옥마을이 나타난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은 오목대와 이목대다.

 

오목대는 고려 우왕 6년(1380년) 운봉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른 이성계가 개선 길에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한제국 광무 4년에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는 ‘태조고황제주필유지’라는 비문이 적혀 있는데 이는 태조가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며, 고종이 직접 쓴 친필을 새긴 것이라 의미가 남다르다.

 

이목대는 이성계의 4대 할아버지인 목조의 출생지며, 그 후 전주 이씨들이 줄곧 산 곳으로 전해진다. 이목대 역시 ‘목조대왕구거유지’라는 목조가 살았던 터라는 뜻의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이목대에서 본 전주한옥마을의 전경

이렇게 조선시대 왕족의 자취가 남아있는 오목대와 이목대는 전주한옥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운치있는 전망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곳에서 바라본 전주한옥마을은 살아있는 우리의 전통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또한, 그 주변에는 제법 커다란 평상이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된다.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많이 낡기는 했지만 반듯한 기둥에 아름다운 기와로 수놓아져 있는 그 풍채는 가히 우리를 압도했다.

 

외세에 굴하지 않은 경기전 정전

다음으로 우리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경기전 정전이다. 경기전 정전은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곳으로, 태종 10년(1410년)에 세워졌다. 원래 태조의 초상화를 보관하는 건물은 개성, 영흥, 전주, 경주, 평양 다섯 곳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당시 경기전을 제외한 모든 곳이 불타버렸다. 경기전 정전도 정유재란때 불에 탔으나 광해군 6년(1614년)에 다시 세워졌다. 이때, 회랑을 두어 최고의 사당임을 나타냈다. 또한, 경기전은 말에서 내리는 곳을 나타낸 하마비, 붉은 색칠을 한 홍상문, 그리고 내삼문과 외삼문, 초상화를 모신 전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기전 정전 내의 굽은 물결무늬 매화나무가 유명하다. 그 이유는 물결무늬의 나무 모양은 이제껏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 하얀 꽃봉오리가 맺힌 정도였지만 매화 그 자체보다 휘어진 나무의 생명력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매화나무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전주사고가 나타나는데, 전통서적이 온건히 보관된 사고로 이러한 경우는 국내에 유일하다. 또한, 전각을 들어서면 한눈에 태조의 초상화가 보이는데 그 옆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등 조선시대의 유명한 위인들의 초상화가 있다. 국사 책 속에서나 보던 초상화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니 위엄이 남달랐다.

 

체험으로 느끼는 한지만들기

전통 사옥 안으로 들어가면 분주히 한지를 만드는 집들이 상당히 많다. 전문적으로 한지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을 위해서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체험의 장도 마련되어 있다. 우리는 친절한 아주머니의 설명을 들으며 한지만들기 체험을 했다.

 

한지는 닥나무 안 껍질을 물에 불려 잘게 간 입자들을 체로 걸러낸 다음 뜨거운 온도의 열판에 말려서 만들어진다. 만드는 과정이 쉬워 보이지만, 너무 두꺼우면 한지의 은은한 멋이 살지 않고 너무 얇으면 쉽게 찢어지기 때문에 한지의 두께를 조절하는 일이 관건이다. 아주머니의 친절한 설명에도 닥나무 입자를 체로 걸쳐낼 때 신중하지 못해, 결국 우리가 만든 한지는 투박하게 두꺼워져 버렸다.

한지만들기 외에도 전주한옥마을에서는 탈 만들기, 그릇 만들기, 한지 공예 등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에는 걷는 맛과 체험의 즐거움이 있다. 700여 채의 전통가옥이 밀집된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지붕 처마의 나지막한 담 너머 장독대 등 소박한 풍경들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판소리, 춤, 전통혼례 등 전통 문화공연을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고, 은행로를 따라 걸으면 전통 차와 술, 놀이 등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다양하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색소폰 연주 등 이색적인 길거리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어 눈과 귀를 쉬게 놔두지 않는다.

여행의 묘미 중 하나는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는 군밤, 전통과자 등 많은 음식을 먹었는데, 그 중 유자전병과 모주가 특히 맛있었다. 유자전병은 전병의 고소함에 유자의 상큼한 맛이 더해져 먹는 내내 손을 뗄 수 없었다. 모주는 계피 맛과 향이 나는 전주의 전통 술로 알코올 도수가 높지 않아 누구나 즐겨 마실 수 있다.

 

말은 달라도 문화는 하나

시기만 잘 맞춰간다면 전주한옥마을에서는 다양한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권위와 위상이 매 해 높아지고 있는 전주국제영화제부터 시작해 전주단오제, 전주대사습놀이, 전주한지문화축제, 복숭아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열려 여행의 재미를 더한다. 우리가 찾은 지난 달 27일에는 ‘2010 전주 아시아태평양문화무형문화유산축제’가 진행 중이었다. 길거리를 거닐다보니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리는 낮에는 송파 산대놀이와 남사당놀이를 보고, 밤에는 인도네시아 인형극을 보았다. 그중 송파산대놀이가 제일 이목을 끌었다. 송파 산대놀이는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재담, 춤, 노래, 연기를 하며 벌이는 전통적인 연극 놀음이다. 두 명의 놀이꾼이 나와 춤을 추고 입담을 주고받으며 공연 했는데, 그들이 하는 말은 우리네 세상살이를 풍자해 재밌기도 했지만 사색에 잠기게도 했다.

 

맛의 고향 전주의 맛집, 한국관

버스터미널 주변에는 ‘한국관’이라는 음식점이 있다. 1971년부터 2대째 고장의 전통음식을 만들어 온 전주의 소문난 맛집이다. 우리는 육회 비빔밥과 함께 파전을 먹었는데, 육회 비빔밥이 일품이었다. 비빔밥은 특별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굉장히 특별한 맛을 내었다. 그 비법은 바로 고춧가루이다. 전통적으로 전주는 고춧가루를 잘게 갈아 사용하는데, 이러면 매운맛이 한층 부드러워지면서 달콤함이 더해진다고 한다.

 

음식을 즐기려면 예약은 필수

전주한옥마을 내에는 개인 가정집처럼 보이는 음식점들이 상당히 많다. 마을 내에서 음식을 먹으려면 예약이 필수다. 전주한옥마을 내에 있는 음식점들은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뤄 보통 3~4일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헤메다 갈비찜을 먹었는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이 괜찮았다.

 

저녁을 먹고 나니 해가 뉘엿뉘엿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집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발걸음을 옮겨 다시 대전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기숙사에 도착한 후 여행의 즐거움에 미소를 지으며 깊은 단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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