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겨울방학 중 진행되는 SK 하이닉스 인턴십에 지원하기로 했다. 지원서에는 이런저런 말들을 갖다 붙이고 조금 부풀려서 썼지만, 실제로 지원한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겨울방학 동안 마땅히 할 일이 없었으며, 해외여행 비용을 월급으로 충당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뿐이었다. 별 것 아닌 이유로 신청한 것과는 반대로, 막상 출근 날이 다가오면서 속으로는 ‘괜히 신청했나?’ 하는 후회가 들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짜고짜 찾아가서 월급도둑 짓을 하는 것이 양심에 찔리기도 했고, 낯선 환경에서 한 달간 생활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래서 인턴 생활에서 조금의 의미라도 남기고 싶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로 불편한 환경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며 한 달간 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출근 바로 전날이었다. 쉽게 잠이 들지 못했고 귀찮은 짓을 괜히 했나 같은 잡생각과 새로운 경험을 해본다는 기대감이 머릿속에서 대치하기를 몇 시간, 누워있다 보니 어느새 잠들었고 출근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첫날부터 늦잠이었다.

  사내 분위기는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상명하복, 딱딱한 분위기, 이런 것들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조금 놀랐던 것 같다. 물론 인턴이 배정받는 팀에 담당 멘토를 배정하는 등 인턴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엿보였지만, 아무튼 굳이 억지로 조성하지 않아도 좋은 분위기였던 것은 사실이다. 며칠 동안 안전교육과 보안교육 등을 진행했고 3일 후에야 분당으로 출근을 하게 되었다.

  나는 분당의 FW 차세대 Tech 팀으로 배치를 받게 되었는데, 어떤 업무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름이어서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팀원들과 이야기 할 때 들어보니 팀원들도 팀 이름이 헷갈리는 난해한 이름이었다. 대체 누가 이런 이름을 지은 건지 궁금하다며 시시덕거리곤 했던 이름이었지만, 아무튼 Enterprise SSD, 즉 기업/서버용 SSD와 관련된 일을 하는 팀이라고 했다. 그래서 학점교류 인턴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발표 과제도 이와 관련된 주제로 잡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는 SSD와 관련된 지식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부끄럽지만 사실상 멘토 분께서 차린 밥상에 내가 숟가락을 얹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발표 준비와 발표 과정은 아쉬운 점이 많았고 스스로에게 부족한 점들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즐거움을 느낀 부분은 발표 준비보다는 회사 생활 부분이었다. 특히 인턴 생활을 하면서 평소에 먹지 않던 커피를 배가 터지도록 마시게 되었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팀원들과 잡담을 하고,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러 나가며 잡담을 하고, 점심시간이 끝나기 직전에 조금이라도 늦게 들어가려고 친구들과 커피 한 잔 마시기도 하고, 같이 카이스트에서 온 친구들이나 처음 본 인턴들과 커피를 마시며 잡담을 나누는 것이 회사 생활에서 즐거움이었다. 이런 것들이 즐거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내가 회사 일을 하게 되면 하루 24시간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 빼면 즐거울 일이 없는 건가?” 하는 씁쓸함이 생기기도 했지만, 아무튼 길어야 한 달인 인턴 생활에서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을 벗어나 소소하게 농땡이를 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정든 회사를 떠나 지금에서야 되돌아보면, 인턴 발표 자체는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인턴 생활만큼은 즐거웠고 좋은 추억이었으며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만약 다시 작년의 그때로 되돌아가서 인턴을 신청하는 순간이라면, 그때에는 인턴을 가는 것에 그 어떤 망설임이나 걱정도 떨쳐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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